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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구 장관에 대한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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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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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대선을 목전에 둔 겨울. 사당 역 근처에서 저와 소주잔을 기울이던 당시 한민구 예비역 대장은 대뜸 도발적인 문제제기를 했습니다. "5·16이 쿠테타가 아니라면 뭐가 쿠테타냐?" 당시 박근혜 후보 캠프에서 한 인사가 "5·16은 쿠테타가 아니다"라고 말을 한 걸 지칭하며 몹시 마음이 상했던 것이지요. 고등하교 선배인데다가 한말 의병장 손봉수 독립지사의 손자라는 점이 더해 저는 한민구 장군에 각별한 호감을 갖고 있던 터였습니다. 그는 이후 5·16을 미화하는 박근혜 캠프에 발길을 끊었습니다. 그래서 그 캠프에 영입된 장군들 중에서 박근혜 후보의 얼굴을 본 적이 없는 유일한 장군이었습니다.

그랬던 그가 대선이 끝나고 박근혜 당선자가 국방장관 후보자로 낙점한 김병관 예비역 대장이 갖은 구설수로 장관직에서 낙마하고 난 다음 장관 후보로 거론되기 시작했습니다. 2014년 6월에 그는 국방장관 후보로 발표되었는데, 이 당시에 야당은 장관 후보자들에 대한 일체의 인사청문회를 거부하였으나 유독 한민구 장관 후보자에 대해서만 청문회 일정을 잡아주었습니다. 성품이 강직한 의병장 손자라고 대단한 배려를 한 것이지요. 물론 저도 야당에 적극 한 장관을 추천하고 청문회를 잡아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막상 청문회가 열리자 야당 의원들이 일제히 질문했습니다. "5·16은 쿠테타인가, 아닌가?" 한 장관 후보자 왈, "쿠테타가 맞습니다"라는 시원한 답변이 나왔습니다. 다른 장관 후보자들은 뒤에 열린 청문회에서 "역사적 관점에 따라 다르다", "5·16은 쿠테타가 아니라 혁명"이라는 아부성 발언을 늘어놓을 무렵에 유일하게 소신 있는 답변을 한 것이지요.

청문회가 끝난 다음날은 장관 취임식 날입니다. 국방부 연병장에 귀빈이 초청되고 곧 성대한 취임식이 개최될 오전에 어쩐 일인지 취임식이 열리지 않았습니다. 보통 장관이 청와대에 가서 대통령에게 임명장을 받아야 하는데, 청와대로부터는 오라는 소리도 없고 임명장도 내려오지 않았습니다. 전날 청문회에서 5·16 발언이 문제가 되자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이 몹시 화가 나서 이런 일이 벌어졌다는 겁니다. 심지어 "장관을 바꾸겠다"는 이야기까지 나왔다는 겁니다. 초청한 귀빈들도 다 가고 연병장의 병사들은 밥도 굶고 마냥 기다리는 희한한 풍경이 펼쳐졌습니다. 결국 김장수 안보실장과 박흥렬 경호실장 등 군 출신 인사들이 총동원되어 간신히 김기춘 실장을 설득하고 임명장을 내려 보내자 오후에서야 장관 취임식을 겨우 개최하였다고 합니다.

이 이야기를 전해 들으며 저는 한 장관의 앞날에 평지풍파를 예상했습니다. 아무쪼록 장관으로서 성공하길 바랐습니다. 그런데 23일 한 장관이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에 서명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이미 이 일을 예상하고 야3당이 한민구 장관 해임 건의안을 제출하기로 예정된 마당이지만, 막상 서명 소식을 듣고 허탈감을 금할 수 없습니다. 결국 한민구 장관도 권력의 압력을 이기지 못하고 저렇게 허물어지는 건지, 아니면 일본의 손을 잡아야 한다는 생각을 가진 확신범인지는 명확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예전의 한민구 장군이었다면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지금은 어떤 권력의 힘이 저토록 한 장관을 변하게 했는지 알 수 없는 일입니다. 한 장관 해임 건의안을 작성하고 발의하는 데 주역이 된 저 자신도 참으로 기구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정말 하고 싶지 않은 일이지만 "5·16은 쿠테타"라고 믿는 저의 관점에서는 이 해임 건의안을 제출해야만 합니다.

* 이 글은 필자의 페이스북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