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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에서 국방부가 기득권을 유지하는 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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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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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그레이엄 엘릭슨의 명저 <결정의 엣센스>에 나오는 한 대목입니다. "미국 군부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영어단위의 이니셜, 즉 첫 자만 따서 부르는 경향이 강하다. 일상용어에서 대한민국을 말하는 Republic of Korea의 약자를 따서 ROK라고 쓰고 '롹'이라고 읽는다. 외부사람들은 무슨 말인지도 모르면서 무식하다는 말을 들을까봐 그 뜻을 묻지 않고 넘어 간다. (쿠바 미사일위기 당시에) 터키와 관련하여 군인들이 흔히 쓴 이니셜은 「긴급방위계획」(Emergency Defense Plan) 또는 「유럽방위계획」(European Defense Plan)을 의미하는 EDP와 「신속대응태세」(Quick Reaction Alert)를 의미하는 QRA였다. (케네디) 대통령도 그와 같은 이니셜 언어 앞에 당황할 때가 있었다. 바로 10월 21일 케네디가 그 짝이었다."(253~254P)

불필요한 군사 약어의 남발은 우리 군도 예외가 아닙니다. 지난 6월 30일 국회 국방위 비공개회의에서 벌어진 일입니다. 합참이 북한 핵에 대한 킬체인(kill-chaine)과 한국형미사일방어(KAMD), 맞춤형 억제전략에 대해 의원들에게 배포한 비밀자료를 보니 온통 약어투성이였습니다. 사실은 이미 언론에 다 공개된 평이한 내용이었는데 막상 이니셜이 자주 등장하니까 마치 대단한 비밀인 것처럼 착시현상이 일어났습니다. 맞춤형 억제전략을 설명하는 부분에 'DIE 요소'라는 용어와 'M 요소'라는 용어가 나오는 겁니다. '죽음'을 뜻하는 '다이'(DIE)라는 용어가 나오니까 무엇인가 대단한 공격수단인 것처럼 느껴집니다. 실제로는 외교·정보·경제(Diplomacy, Information, Economy)의 약자일 뿐입니다. 그냥 '비군사적 요소'이라고 간단하게 표현해도 됩니다. 물론 M은 군사(Military)를 뜻하는 것이구요. 이 둘을 합쳐서 '다임(DIEM)'이라고도 합니다.

그런데 이 용어의 뜻을 어떤 국회의원도 물어보질 않는 겁니다. 회의가 끝나고 점심을 먹으면서 제가 김영우 국방위원장에게 "군 관계자들이 약어를 남발하는 걸 경고하셔야 한다"고 권유했습니다. 아무것도 아닌 내용이 마치 대단한 내용인 것처럼 착시현상을 불러일으킬 뿐만 아니라, 그 뜻을 물어보기를 망설이는 국회의원들에게 공연한 혼란을 불러일으킴으로써 군이 위신을 세우려한다는 이유에서였습니다. 실제로 자리에 참석한 의원이 제 말을 듣고 "다이(DIE)가 그런 뜻이었냐?"며 허탈해 하더라구요. 여기에다 방사청 용어 중에 E/L(Export License)라는 약어가 있는데 그냥 '수출 허가'라고 하면 되는 걸 꼭 약어로 씁니다. 한 야당 의원은 그게 물건 이름인 줄 알고 질문을 이어 가더라구요. 당연히 질문은 초점을 잃어버렸지요.

실제로 쿠바 미사일 위기 당시에 케네디 대통령은 국방부가 "전략적 접촉"이니 "EDP"와 같은 자기들끼리만 통용되는 용어를 남발하니까 소통이 어려움이 배가되었습니다. 케네디 대통령이 터키 주둔사령관에게 "핵무기는 사용하지 마라"는 특별 명령을 하달하려고 하니까 국방부 차관보 폴 니체가 "그건 EDP의 문제가 있습니다"라고 답변하자 알아듣지도 못한 참석자들이 '합참에 그런 게 있겠지'라며 넘어가려는 분위기였습니다. 케네디가 이를 제지하고 "EDP가 뭐요?"라고 물어보니까 터키군사령관이 대통령 재가 없이 소련에 핵무기를 사용하는 계획임이 밝혀졌습니다. 케네디가 물어보지 않았더라면 대통령은 자신도 모르게 터키군사령관이 핵무기를 사용하게 되는 상황을 맞이했을 겁니다.

이것이 바로 군부가 문민통제에서 벗어나 자신의 자율성을 과도하게 행사하는 경로입니다. 제가 국방위에 와 보니 이 문제가 아주 심각합니다. 잘 모르는 의원일수록 더 물어보지 않는 겁니다. 이래서야 어떻게 군에 대한 문민통제를 구현할 수 있겠습니까?

* 이 글은 필자의 페이스북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