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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을 미룬 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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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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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일병 사망사건으로 나라가 발칵 뒤집히던 2014년 여름. 자살 우려자 수용소라고 할 수 있는 전방 군단의 그린 캠프를 방문했을 때의 장면을 아직도 잊을 수 없습니다. 입구에는 심신을 쉬게 하는 '옹달샘 같은 곳'이라고 적혀 있지만 막상 입소자를 보면 심신이 회복될 것 같지 않은 지치고 슬픈 청년들의 군상들이 눈에 가득 찹니다. 완전히 눈동자가 풀려 뭘 물어도 제대로 대답조차 못하는 고개 숙인 청춘들. 동행했던 사단장 출신의 한 예비역 장성은 자신이 근무했던 사단에서 운영했던 그린 캠프 분위기와 유사하다며 혀를 찹니다. 그나마 여기에는 부모 동의가 있어야 입소하는 병사들이고 아직도 야전에는 "내 자식을 그런 캠프에 보낼 수 없다"고 하여 버젓이 근무하고 있는 비슷한 병사들도 많다고 합니다. 그린 캠프에 입소하는 숫자는 자꾸 늘어나 작년에 3000명을 넘어섰습니다. 눈여겨볼 대목은 그린 캠프에서 교육을 마쳤다 할지라도 다시 부대로 돌려보내는 비율이 계속 낮아지고 있다는 겁니다. 한 군단장은 이들을 "걸어 다니는 시한폭탄"이라며 "부하 지휘관들에게 그 시한폭탄을 돌려보낼 수 없지 않느냐"고 말합니다. 이들의 시각으로 보면 그린 캠프는 인간불량품의 분리수거장인 것입니다.

이들을 만나고 돌아오는 날. 반짝반짝 빛이 나야 할 청춘의 한 시절을 깊은 어둠 속에서 보내야 하는 이들의 슬픈 사연들에 가슴이 미어졌습니다. 지난주에 국방부가 "2023년까지 병역 대체·전환 복무제도를 폐지하겠다"고 했다가 반발이 심하니까 "정식으로 결정된 안은 아니다"라며 말을 바꿨습니다. 그러더니 이번에는 "징집 대상자의 현역 판정률을 90%까지 늘리겠다"며 또 새로운 말을 하고 있습니다. 2015년 현재 87%인 현역 판정률을 더 높여서 이제는 병역면제에 해당되는 신체허약자의 현역 입영을 더 늘리겠다는 발상입니다. 2015년에 대한민국 21세 남자는 36만 명인데 2022년이면 11만 명이 더 줄어들어 25만 명이 됩니다. 인구 절벽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내후년부터는 서서히 병역자원 부족사태로 진입하여 다음 대통령 임기 중반쯤이면 군의 존립이 위협받는 초유의 비상사태가 온다는 이야기입니다. 딱히 새로울 것 없이 이미 20년 전에 다 예견되었던 일입니다. 징집률 90%란 게 무엇을 의미하는 겁니까? 병역특례 고학력자의 병역부담을 정신적·신체적 병역 부적합자에게 전가하겠다는 이야기 아닙니까? 이미 이런 사태를 예견하고 역대 정부는 2000년대 국방개혁안을 준비해왔지만 오직 박근혜 정부에서만 국방개혁이란 말이 사라지고 병력감축과 부대구조 개편과 같은 국방개혁은 다음 대통령에게 떠넘겨졌습니다.

김대중 정부는 2015년까지 50만으로 감군하겠다고 한 <국방기본정책서-국방개혁 2015>를 만들었습니다. 노무현 정부는 2020년까지 50만으로 감군하겠다는 <국방개혁 2020>을 만들었습니다. 이명박 정부도 그 전임 정부의 개혁 목표는 계승하는 <국방개혁 기본계획>을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박근혜 정부 들어와서 진행되던 국방개혁도 멈추고 모든 개혁목표가 2030년으로 미루어졌습니다. 임기 중에 인구절벽이 본격화되어 가장 개혁이 절실한 박근혜 정부에서 말입니다. 아무리 개혁안을 만들어도 다 뒤집어버리는 행태가 반복되니까 군의 인력 운영은 갈수록 질곡으로 빠져들었습니다. 이걸 마치 국가안보를 잘 하는 것이라고 착각하는 것입니다. 민간 기업에 대해서는 구조조정이다, 조기 퇴출이다, 하며 가혹한 개혁을 하면서 정작 개혁이 시급한 군은 그 반대로 운영해 온 것입니다. 그 결과 이제는 44만 명의 병사를 포함한 62만 명의 대군을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는 괴물로 만들고 말았습니다. 장성 숫자를 감축한다던 공언도 다 헛소리가 되었고, 거꾸로 직업군인 계급 정년을 연장한다는 이야기까지 들립니다. 민간 기업이었으면 여러 번 망했을 것입니다. 지금 군은 자체 개혁의 동력을 완전히 상실했습니다. 이러는 동안 징집률 90%라는 말은 이제 군의 파국을 예고하는 묵시록이나 다름없습니다.

* 이 글은 필자의 페이스북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