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허핑턴포스트 블로거의 분석과 의견이 담긴 생생한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이종철 Headshot

긱geek에서 셰프로, 셰프에서 다시 경영자로 - 엔랩소프트 주재현 인터뷰

게시됨: 업데이트됨:
인쇄

젠틀맨 리그 #3 긱geek에서 셰프로, 셰프에서 다시 경영자로
인생은 겜블, 주재현, 엔랩소프트

글 이종철 jude@websmedia.co.kr
사진 송여진 song@websmedia.co.kr

2014-05-09-2.jpg

주재현은 Geek이다
스마트폰도 없던 시절 geek들은(당시엔 이 말도 없었다) 기판을 뜯거나 컴퓨터를 분해하고 좋은 그래픽카드를 꽂아 폴리곤 덩어리들을 돌리며 좋아하곤 했다. 주재현도 그들 중 하나다. 당시엔 '퀵아저씨' 혹은 '외국 기업 직장인'이나 쓰던 PDA를 돈이 생기는 대로 사곤 했으니까.

지금 이 글을 보는 기크(긱, geek 등) 들은 얼리어답터라는 당찬 일반명사의 사이트를 기억할 것이다. 지금은 문패만 존재하는 해당 사이트는 한국에 전자 제품 쪽에서만큼은 '얼리 어답터'라는 일반 명사를 확실하게 전파했다.

주재현은 모바일 기크였다. PDA를 넘어 웹 브라우징이 가능한 풀터치폰, 그러니까 잊어버려도 될 햅틱이나 아르고(이거 기억하시는 분?) 폰 등을 리뷰하는 에디터로 활동했다. 모든 기크가 그렇듯 폰을 애인처럼 닦고 주무르고 예뻐했다. 펌웨어(정겹다)나 바이오스를 여러 기기에 올려보고 폴짝폴짝 뛰었으며, 애니팡의 전신인 비주얼드(bejeweled)나 스포츠, RPG 게임을 하는 것도 좋아했다. 나중엔 에디터를 넘어 UI 컨설팅을 하기도 했다.

2014-05-09-1.jpg

주재현은 Chef다
얼리어답터 3년 근무 후 휴식을 원했다(기기 뒤엔 휴식이 따른다). 뉴욕행을 원했으나 리먼 브라더스가 지구를 주저앉게 했다. 조용한 곳을 찾아 호주 퍼스perth로 향했고, 1년을 쓰려고 가져온 돈을 3개월 만에 다 써버렸다. 젊을 땐 그런 거니까. 사실 호주행을 택한 건 아이폰을 써보고 싶은 열망이 상당 부분 작용했다고 한다. 그때의 얼리어답터들은 다들 그랬다.

여비를 탕진한 후 직업은 호주에서 워홀러가 주로 택하는 직업 중 하나, 키친 핸드(kitchen hand, 영어로 쓰니 뭔가 있을 것 같지만 그냥 설거지하는 인물을 말함)로 정했다. 타파스 바(Tapas Bar, 스페인식 간편하게 먹는 한 접시 요리에 바를 접목한 레스토랑)였다. 멀쩡하고 창창한 29세 청년은 그렇게 접시를 닦았다.

흔히 동양인 남자는 호주에서 개보다 못한 존재라고 한다. 그래도 주재현은 애써 온 호주에서까지 한국말을 하고, 김치를 찾아서 먹고 싶진 않았다. 성실 성실 성실한 주재현에게 레스토랑의 인물들은 점차 마음을 열었다.

그가 셰프가 된 것은 드라마 '식객'이나 '미스터 초밥왕' 등의 스토리와 똑같다. 현실에서도 만화 같은 일은 가끔 벌어진다. 업무시간엔 미련할 만큼 성실하게 자기 일을 하고, 남는 시간엔 샐러드와 불요리 등을 시험 삼아 해보다 들키고, 주방장에게 혼나고, 그걸 제지하고 맛을 본 오너셰프가 주변의 반대를 무릅쓰며 특진을 제안하는 일 말이다.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각국에서 모여든 서양인들은 자기 삶의 질에 대한 애착이 강해, 셰프와 충돌하면 쉽게 직장을 그만둔다는 점이었다. 헤드셰프였던 브랜튼은 한국사람처럼, 새벽에 출근에 자정까지 일하는 이였다. 그런 그에게 주재현이 눈에 들어오지 않을 수 없다.

6개월 키친 핸드의 삶 끝에, 주재현은 주셰프가 됐다.
그런데 드라마를 보면 그렇지 않나. 셰프들은 늘 짜증을 내고 갑자기 사랑한다고 말하고 키스를 하는 등 지구에 자신들만 있는 것처럼 행동한다. 부지런하며 예의 바른 주 셰프도 그랬을까?

"셰프가 성격이 안 좋은 건 그럴 수밖에 없어요. 몇백도 넘는 오븐 열기와 기름이 지글거리는 불판 앞에서 일하다 보면."

아니, 주 셰프도 성격이 안 좋았느냐고 물었다.

"최대한 잘 해주려고 했어요. 식사 준비시간엔 샌드위치나 샐러드 같은 것들 자주 만들어주고 하니 그들이 굉장히 좋아하더군요. 대부분 유학이나 여행을 온 상태라서 서양 친구들도 배고프거든요."

이런, 그는 역시 미스터 초밥왕의 쇼타인 것이 확실하다.

만족스러운 셰프 생활 6개월을 마치고 그는 왜 한국에 돌아와야 했을까. 그의 평생의 꿈은 '생활여행자'다. 한 지역에서 2~3년 머물며 완벽히 그 지역에 물들 때 다른 곳으로 떠나는. 가수 이상은이 생활여행자로 유명하다. 생활여행자가 되기에 셰프는 굉장히 유용한 직업이다. 그도 제대로 된 셰프가 되기 위해, 그중에서도 가장 보편적인 프랑스 요리를 준비하기 위해 르 꼬르동 블루행을 택했고, 일단 고국으로 돌아왔다.




2014-05-09-1493024_10152270622599857_549398335_n.jpg

2014-05-09-10153480_10152270622594857_330292793_n.jpg

셰프 시절 주재현(사진: 본인 제공)

주재현은 벤처 직장인이다.
이 잠깐의 시간에 평소 친분이 있던 (성공한 벤처) 바닐라 브리즈 대표가 '모바일 바람을 타 보자'고 제안했다. 마음이 움직였다. 생활여행자의 꿈은 나중에도 가능한 것이고, 아이폰발 모바일 폭풍은 지금이 아니면 올 수 없었다. 바닐라브리즈의 팀원들과 성공적인 게임들을 만들어내며 꿈을 키운 주재현은, 제대로 된 게임, 그러니까 RPG를 만들고 싶던 팀원들과 새로 둥지를 꾸린다. 그전까지 바닐라브리즈의 게임은 캐주얼한 것들이었다.

주재현은 드디어 대표다
피처폰 시절 통신사 모바일 포털은 패킷 장사만 했고 제대로 된 서비스나 콘텐츠에 관심이 없었다. 주 대표와 팀원들은 이때부터도 폰에서 제대로 된 RPG를 해야 된다고 생각하던 인물이다. 그래서 드디어 2012년, 주재현이 팀원들과 함께 모바일 시장에 데뷔한다.

현재까지 출시한 게임은 약 다섯 개로 모두 특이한 것들뿐이다. 투수 시점의 야구 게임 같은 것들. 게이머들이 만든 게이머를 생각한 게임들이다.

2월 출시한 '타락전사'는 티스토어와 헝그리앱 등에서 모두 최상위에 오른 풀터치 액션 RPG. 최근 모바일용 미드코어 RPG는 피로를 덜기 위한 자동사냥, 오토 타깃팅 등을 발판으로 성장했다. 그러나 게이머의 생각이라면, RPG는 역시 게이머가 직접 조작하는 핵앤슬래시 방법이어야 한다. 콘텐츠 지원 사업 계약 덕에 빠른 시기에 출시했고 콘텐츠(던전 수, 캐릭터 수)도 적지만 헤비 유저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주 대표는 포기하지 않았고, 허수가 아닌 100명의 유저가 백만 명이 되기를 기다린다. 스티콘을 남발하며 만든 다운로드 수는 허수일 뿐이라고 생각하기 떄문이다.

최근 출시한 게임 '퍼즐앤고'역시 그들의 철학이 담겨져 있는 특이한 게임이다. 어머니가 아직도 애니팡(2가 아닌)을 즐기는 것에 착안, 세 장을 맞춰 점수를 내는 고스톱과 퍼즐 게임을 접목해보자고 결심했다. 어머니도 '맞고처럼' 즐길 수 있다면 좋다고 했다.

퍼즐앤고는 기획 단계부터 다수 게임 출판사로부터 호평을 받았으나 '심의를 통과하지 못할 것'이라는 의견이 다수였다. 사행성 이슈가 있어 카카오 게임하기로 통과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모두가 안 된다고 할 때 주 대표는 등급심사를 전체 관람가로 받았다. 역시 화투패는 까봐야 아는 것이다.

퍼즐앤고는 쓰리매치 퍼즐의 일종이나 선택한 카드를 아무 곳으로나 움직일 수 있다는 점이 색다르다. '착'하고 붙는 소리를 듣다 보면 어느새 짬만 나면 퍼즐앤고를 실행하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 출시 두 달이 지났지만, 타깃인 부모님 세대까지 깔리지 않은 상황이므로 아직 '초기 단계'로 본다.

한국에서의 삶도 여행의 일부
그에게는 창업도 여행이다. 그는 한국에서 여행하는 중인 것이다. 바쁘고 오래 늘어지는 유럽에서처럼 점심 식사를 팔며 저녁 식사를 준비하는 것이다. 최고의 만찬이 될 저녁은 세계 최고 급의 앱 개발사 젤리버스와 함께한다.

그의 꿈은 여전히 생활 여행자다. 미래에 게임, 니스의 원 테이블 레스토랑, 스페인 어디의 신선한 해물 요리 주방장 등 무엇이든 상관없다. 여행은 계속될 것이고, 통째로 여정인 이 삶은 아주 재미있을 것이다.

2014-05-09-_1.jpg2014-05-09-_2.jpg2014-05-09-_3.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