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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파를 견딜 수 없는 나이라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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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set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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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지웅의 경사기도권] 우리 사회의 <로제타>들에게 무엇을 물려줄 수 있을까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는 건국 이래 최대 정치 스캔들이다. 사정 기관 혹은 정치권의 자정 노력에 의해 밝혀진 것이 아니라 언론의 취재로 촉발된 상황이라는 점에서 미국의 워터게이트에 비견될 만하다. 사안의 중대성에 걸맞은 결말을 맞는다면 우리 사회의 가능성으로 기록될 것이고 그렇지 못하다면 흑역사가 될 것이다.

비선 실세나 재단을 활용한 재벌과의 불법 자금 거래 등의 행위는 과거 군사독재정권에서도 있었던 일이다. 일종의 학습효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안보와 외교를 비롯한 국정 전반에 걸쳐 비선 실세의 이해관계가 작용했고 국민의 세금이 그들을 위해 운용되었다는 사실은 자다가 벌떡 일어나게 만든다. 나는 정말 며칠째 세금이 아까워 밤잠을 설치고 있다. 우리 사회가 우리 공동체의 수준과 미래를 대변하기 위해 뽑은 대통령이라는 걸 감안할 때, '그들이 무슨 짓을 한 것인가'라는 질문은 곧 '우리가 무슨 짓을 한 것인가'라는 질문으로 되돌아온다. 나는 안 뽑았는데요, 라는 말은 지금과 같은 때에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둘러싼 이슈는 매일 하나씩 터져나오는 모양새다, 관련한 새로운 이슈가 어제의 이슈를 덮는다. 자연히 이를 둘러싼 사람들의 말 또한 차고 넘쳐 쌓이는 중이다.

그 가운데 이경재 변호사의 말이 내 눈을 가장 오랫동안 잡아끌었다. 이경재 변호사는 최순실의 변호인이다. 그는 라디오 인터뷰 프로그램에 출연해 최순실의 딸에 대해 묻는 사회자에 질문에 대해 다음과 같이 답했다. "지금 그 딸이 어느 정도 세월의 풍파를 견뎌낼 만한 나이 같으면 모르겠는데 이거는 아닌 것 같다. 우리 사회가 이해할 만한 그런 아량이 있지 않나."

이경재 변호사가 공안검사 출신으로 그 나이대의 젊은이들에게 과거 무슨 짓을 했었는지에 관한 이야기는 논외로 치도록 하자. 놀랍게도 나는 이경재 변호사의 말에 동의한다. 나는 젊은 세대가 세상의 풍파로부터 어느 정도 보호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세상의 원리를 배우기 전에 현실의 아니꼽고 치사함을 먼저 경험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한국 사회가 단 한번도 젊은 세대를 향해 그런 종류의 아량을 베풀어본 일이 없다는 데 있다.

풍파는 세찬 바람과 험한 물결이라는 의미다. 풍파를 견딜 수 있는 나이란 과연 몇살일까. 한국 사회는 그간 생존의 출발선 앞에 선 젊은이들을 시작은 힘든 게 좋다며 세찬 바람 앞에 바람막이로 썼고 험한 물결이 있을 때는 그 안에 수장시키고 사고라고 둘러댔다. 덕분에 젊은 세대는 이 사회에서 전에 없이 가장 방어적이고 수동적인 세대로 전락했다. 한국 사회에서 풍파를 견딜 수 있는 나이가 몇살인지 정확히 산출할 수는 없으나 적어도 젊은 세대가 앞서서 풍파를 견디도록 강요당하는 나이인 것 만큼은 확실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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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영화 한편을 떠올렸다. 다르덴 형제의 1999년작 <로제타>다.

로제타는 18살이다. 어머니는 알코올 중독자다. 그런 어머니를 부양하며 로제타는 이동식 트레일러에서 살아간다. 그녀는 공장에서 일했지만 인턴 기간이 끝나자 해고를 당한다. 돈을 벌어야 한다. 로제타는 버려진 헌 옷을 수거하고, 그걸 어머니가 수선하면 다시 내다 판다. 먹을 것이 부족하면 강으로 나가 물고기를 잡는다. 실업급여는 나오지 않았다. 인턴 기간이 너무 짧았기 때문이다. 다른 일자리를 구하는 것도 어렵다. 일자리 자체가 없다. 삶이 너무 버겁다. 이유를 알 수 없는 복통이 찾아오곤 한다. 그래도 돈을 벌어야 한다.

어느 날 로제타는 와플 가게에서 일하는 리케와 만나 친구가 된다. 와플 가게 사장의 도움으로 취직도 된다. 그 나이에 어울릴 법한 행복이 로제타를 아주 잠깐 스쳐간다. 그러나 착각이었다. 그 나이에 어울릴 법한 행복은 로제타에게 허락되지 않았다. 와플 가게 사장의 아들이 퇴학을 당하면서 사장은 로제타에게 나가달라고 부탁한다. 아들에게 일을 맡기기로 결정한 것이다. 사장도 그것이 부당한 일인 줄은 안다. 그러나 어쩔 수 없다고 말한다.

로제타는 트레일러로 돌아온다. 그녀는 완벽한 절망감을 느끼고 있다. 술에 취해 쓰러져 있는 어머니를 수습해 침대에 눕힌다. 마지막 만찬처럼 달걀 하나를 삶아 정성스레 먹는다. 그리고 밖으로 나와 무거운 가스통을 옮기기 시작한다. 이때 즈음이면 관객은 그녀가 무슨 일을 벌이기로 마음먹은 것인지 짐작할 수 있다. 이때 리케가 오토바이를 몰고 나타난다. 리케가 로제타의 주위를 시끄럽게 빙빙 돈다. 로제타는 무거운 가스통을 붙잡고 낑낑대다가 바닥에 나뒹군다. 복통을 느끼고는 배를 붙잡고 흐느껴 울기 시작한다. 리케가 멈춰서 로제타에게 다가온다. 일어선 로제타가 리케를 바라본다.

로제타가 바란 건 그저 평범한 삶이었다. 그러나 평범한 삶이란 대개 대중매체를 통해 학습된 것일 뿐이다. 그리고 대중매체는 현실을 조명하는데 게으르다. 혹은 겁을 먹는다. 시청자들이 스크린에서까지 현실을 보고 싶어 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평범한 삶이 지상과제였던 날이 있었다. 그런 나에게 소규모 상영회를 찾아가 보았던 <로제타>는, 끔찍했다. 동시에 나와 같은 고민을 하는 사람이 여기도 있다는 위로를 받았다. 무엇보다, 로제타가 마지막 장면 이후 열심히 살아갈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지쳐 쓰러져 배를 붙잡고 울다가 마침내 두발로 대지를 딛고 일어선 로제타를 보라. 그래서 나도 열심히 살기로 했다.

영화 <로제타>는 '로제타 플랜'이라고 불리는 벨기에 청년실업대책의 모태가 되었다. 벨기에에서 학교를 졸업한 지 6개월 이내의 젊은이는 누구든지 이 정책의 도움을 받아 취업할 수 있다.

지금 이 파국의 시대를 맞이해 우리가 가장 염려해야 할 것은 우리 세대가 역사에 어떻게 기록될 것인가가 아니다. 다음 세대에게 이런 나라를 물려줄 수는 없다는 절박함이 우선되어야 마땅하다. 우리가 싸워야 하는 이유는, 열심히 일하면 그에 상응하는 보상을 받고 의지만 있다면 반드시 공정한 기회를 보장받으며 규칙을 지켜도 물에 빠져 죽지 않는다는 걸 우리 다음 세대에게 증명해내야 하기 때문이다. 룰을 지키는 사람들이 더 행복한 나라. 잘못이 있으면 그걸 바로잡을 수 있는 저력을 가진 공동체. 그것이 우리가 다음 세대에게 물려줘야만 할 유산이다.

나는 풍파를 견딜 수 있는 나이가 아니라는 말 앞에서 로제타를 떠올렸다. 저 말이 우리 사회의 로제타들에게 먼저 향할 수 있는 세상을 물려주기 위해 무엇이든 하고 싶다. 정말 무엇이라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 이 글은 씨네21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