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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싶다, 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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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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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지웅의 설거지] 신해철 2주기에 부쳐

"안녕하세요, 신해철입니다."

뭔 소리야. 나는 생각했다. 누구라고요? 신해철이라고요. 그러고 보니 목소리가 닮은 것 같다. 그런데요? 만나서 해야 할 이야기가 있어서요.

그래서 우리는 만났다. 추운 날이었다. 식당에서 만났다. 그를 태운 검정 차가 도착했다. 우리는 좀 쑥스러웠던 것 같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술을 마셔댔다. 둘 사이의 빈 공간을 술로 메우려는 것 같았다. 정작 해야 할 이야기는 거의 하지 못했다. 그는 먼저 취해버렸다. 몸이 전 같지 않다고 말했다. 그를 태운 검정 차가 떠났다. 뒤늦게 취기가 올라온 나는 그러니까 오늘 뭐 때문에 만난 것이었더라, 생각하면서 집으로 비틀비틀 걸어갔다.

다음날 다시 전화가 왔다. "야 난데, 그러니까 우리가 만나서 해야 할 이야기가 있어서." 여기까지 하고 말하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이나 둘 다 웃음이 터져버렸다. 나는 주소를 받아들고 그가 운영하는 실용음악학원을 향했다. 오래된 책들이 빼곡하게 들어차 있는 그의 어둡고 음험한 사무실에서, 우리는 하루 만에 다시 만났다. 이후 저 어둡고 음험한 사무실에서 참 많은 일이 있었다. 농을 하고 울고 화를 내고 대개는 별 시답지 않은 이야기들로 밤을 꼬박 새웠다. 이상한 인연이다.

요는 같이 일을 해보자는 것이었다. <맥심>이라는 잡지가 라이선스 문제로 재창간을 하면서 자신이 편집장을 맡게 되었는데 나보고 수석 에디터를 하면서 부편집장 노릇을 해달라고 했다. 경력 관리 측면에서 좀 생각해보아야 할 문제였지만 별로 고민하지 않고 그렇게 하자고 했다. 거절하기에는 너무 빨리, 너무 깊게 친해져버렸다.

결과적으로는 좋지 않은 선택이었다. 새벽 두시에 빨리 와달라는 연락을 받고 갔다. 그는 화가 머리끝까지 나 있었다. 편집권이 있는 편집장인 줄 알고 애초 승낙한 것이었는데 알고 보니 그렇지 않았다고 했다. 일종의 항명이 있었고, 이게 대체 무슨 일인지 알아보다가 뒤늦게 얼굴마담이라는 걸 깨달았다는 것이다. 그는 곧 잡지를 그만두었다. 이 사건의 좀더 정확한 경위를 알아보고 싶었지만 관두었다. 내막이 어찌 되었든 그가 그만두었으니 나로서도 더 있을 이유가 없었다. 그래서 나도 그만두었다.

한동안 소송을 하겠다고 분개하던 그는 금방 평정을 되찾았다. 내 결혼식에 와서 그는 '일상으로의 초대'를 불렀다. 노래 중간에 음 이탈을 했다. 가뜩이나 성당이라 엄중한 분위기인데 나는 그만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그리고 두고두고 그걸 놀려먹었다. 내가 신혼여행 내내 저 목소리의 질감을 떠올리며 노래를 흥얼거렸다는 건 미처 말하지 못했다. 나중에 이야기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던 것 같다. 그건 내가 태어나서 들어본 노래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것이었다.

그리고 어느 날, 그가 사라졌다. 말 그대로 잠적해버렸다. 그가 칩거에 들어간 십수개월 동안 나는 방송생활을 시작했다. 자주 그가 궁금했다. 그러나 그럴 만한 이유가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에게 전화가 걸려온 건 늦은 저녁이었다. 통화버튼을 눌렀다. "너 이혼했다며, 이 거지 같은 새끼야." 타박을 해야 할 건 이쪽인데 뜻밖의 공격을 받고 나는 그만 더듬거리고 말았다. 그리고 그가 나를 너무 잘 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수개월의 시간차가 사라지고 이음새 없이 맞춰졌다.

우리는 동네의 양꼬치집에서 재회했다. 그는 굉장히 건강해 보였다. 새 앨범이 나올 것이라며 녹음 파일을 들려주었다. "실험적인데 대중적이다"라고 나는 말했다. "실험적인데, 대중적이다." 그가 따라 말했다. 그리고 크게 기뻐하며 덧붙였다. 그게 내가 잘하는 거지.

며칠 후 늦은 밤 그가 다시 찾아왔을 때 나는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가 떠올라 굉장히 즐거웠다. 그는 늘 차를 타고 우리 집 앞에 와서 나를 싣고 어디론가 떠나고는 했다. 우리는 분당의 그의 집으로 갔다. 형수님과 아이들이 집을 비운 터라 우리는 밤새 술을 마셨다. 그가 칩거하는 동안 했던 개인적인 고민들, 사랑스럽기 짝이 없는 그의 아이들, 내 이혼 이야기, 세상 돌아가는 풍경, 노무현 전 대통령, 사람들은 그의 친구라고 알고 있지만 사실은 정말 경멸하는 아무개, 우리가 오해받는 것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야만 하는 것들, 야 너는 내가 젊었을 때랑 굉장히 얼굴이 닮았다, 어디 가서 그런 이야기 하지 말어 내가 훨씬 더 잘생겼어, 그런 도무지 초점 없는 대화들을 하다가 다음날 오후 한시가 되어서야 기절해버렸다.

겨우 술을 깨고 침대에서 일어났을 때 나는 한동안 여기가 어디인지 몰라서 당황했다. 뛰어내리듯이 침대를 벗어나 방문을 열고 나갔다. 형이 등을 보이고 서 있었다. 거기 기둥에 붙어 있는 아이들 사진을 보고 있었다. 그 모습이 이상하게 잘 지워지지 않는다.

의식이 있는 그를 마지막으로 본 건 <속사정 쌀롱> 촬영장이었다. 같이 촬영을 마치고 나가면서 그는 나흘 뒤에 양꼬치를 먹으러 가자고 했다. 다음날 그는 쓰러졌다. 건강에 이상이 있는 사람이 술 약속을 할 리가 없기 때문에 나는 별일이 아닐 거라 낙관했다. 병원을 찾았을 때 그는 의식이 없었다. 매니저의 말로는 중간에 잠깐 의식이 있었고, 나를 찾았었다고 했다. 그 와중에 약속을 떠올렸던 것이었는지 모르겠다. 귀에 대고 몇 번이고 속삭였다. "나 찾았다며, 나 왔어, 나 왔다고." 그러나 그는 다시는 일어나지 못했다.

그의 부고를 듣고 썼던 짧은 글 이후 나는 내가 그에 대한 이야기를 글로 쓸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 않았다. 그것은 갑작스럽고 느닷없으며 앞뒤가 맞지 않는, 옳지 않은 죽음이었다. 그를 떠올리는 건 내게 너무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가끔 그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때면 나는 자리를 피하거나 억지로 다른 생각을 했다. 때마침 다른 일들이 맞물리면서 나는 심각한 우울증을 앓았다. 소중한 사람들이 모두 나를 떠나가려고 작정한 것만 같았다. 침대에 누우면 잠이 오지 않고 천장이 내려앉았다. 그렇게 2년이 지나갔다.

며칠 전 2주기를 맞아 혼자 술을 마셨다. 그리고 그의 트위터 계정을 들어가 보았다. 그의 말투가 묻어나는 짧은 글들이 여전히 거기 그대로 있었다. 그 마지막 몇개월 동안 계속해서 언급되는 내 이름을 발견하고 나는 마음이 내려앉았다. 그리고 그 말들과 대화를 했다.

나는 이제 괜찮은 것 같다.

누군가에게 신해철은 투사였다. 누군가에게 신해철은 광장의 음악이었다. 누군가에게 신해철은 이제 다시 오지 않을 젊은 시절의 섬광이었다. 누군가에게 신해철은 논객이었으며 누군가에게 신해철은 늦은 밤 이어폰을 통해 울려 퍼지던 굵고 낮은 목소리였다. 신해철은 어쩌면 그 모든 것과 무관한 무엇이었다. 그는 그저 마음 약하고 따뜻하며 아이들을 거짓말처럼 사랑하는 아버지였다. 내게 그는 좋은 친구였다. 나도 그에게 좋은 친구였기를 바란다. 형이 보고 싶다. 우리 형이 너무 보고 싶다.

* 이 글은 <한겨레>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