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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첩조작사건 다룬 '자백'이 좋은 다큐인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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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지웅의 경사기도권]

최승호의 <자백>은 국가정보원의 간첩조작사건을 다루는 다큐다. 소셜 펀딩과 40개월에 가까운 취재 과정을 통해 완성되었다. 보통 이렇게 정치적 소재를 다루는 다큐를 볼 때면 조금 더 긴장한다. 소재의 민감성 때문이 아니다. 내가 편들고 싶어 하는 이야기라 해서 은연중에 영화의 함량에 대해 호의적인 평가를 내리지는 않을까 걱정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른 때보다 좀더 정신을 바짝 차리고 보게 된다.

정치적 입장과 진영에 따라 영화를 보기도 전에 이를 지지해줄 준비가 되어 있는 팬덤 관객이 예정된 작품들이 존재한다. 책임감 있는 연출가라면 그런 경우일수록 작품의 함량을 끌어올리기 위해 분투할 것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렇지 않은 사례가 많았다. 어떤 소재를 다루어냈다는 용맹함과 연출가의 영웅심리만 남을 뿐 본질을 향한 사유는 정작 낡거나 얇고 초라하기 이를 데 없는 일이 더 많았던 것이다. 이게 다 마이클 무어 탓이다. 선정성과 어긋난 비아냥만 가지고 다큐를 이끌어가는 잘못된 풍조를 유행시켰다. 그건 예능이지 다큐가 아니다. 그런 유행을 좇는 한국의 연출가들은 마이클 무어가 과거의 지나친 자기 확신과 쇼맨십을 일정 정도 덜어내고 <식코> 이후 명백하게 보여주고 있는 발전상에 대해선 무관심하다. 알 수 없는 일이다.

좋은 다큐는 반드시 자신이 전달하고자 하는 진실에 관해 스스로 한번 더 의심한다. 그리고 그런 의심의 사유를 통해 관객이 영화를 찬양하게 만드는 대신 관객이 영화에 당황하게 만든다. 그런 종류의 당황은 관객의 고민과 깊은 울림을 필연적으로 이끌어낸다. 송두율 교수의 간첩 사건을 다루었던 <경계도시2>나 용산 참사를 다룬 <두 개의 문>을 떠올려보자. <경계도시2>는 이 사람이 진짜 간첩이면 어떻게 하지, 라는 연출자 자신의 레드콤플렉스와 진보 좌파 진영 내부의 허영, 비뚤어진 욕망을 노출함으로써 좋은 다큐가 될 수 있었다. <두 개의 문>은 피해자뿐만 아니라 가해자의 목소리에 주목해 용산 참사를 둘러싼 다양한 시각을 입체적으로 조명하는 방식으로 사건의 실체를 '강요'하는 대신 '규명'해낸 좋은 다큐였다.

무엇을 다루었느냐가 중요하지 작품의 함량이 뭐가 그렇게 중요하냐 이 엄혹한 세상에, 라고 말하는 사람들과 나는 별로 대화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그것은 다큐 <자백>에서 과거 군부독재 시대를 비판하는 등장인물의 대사처럼 "목적을 위해서라면 어떤 수단이든 상관없다"는 태도다. 내가 편들고 싶은 것을 위해서라면 프로파간다라도 상관없다는 사람들은, 결과적으로 그들이 비판하고자 하는 이들과 동업자다. 뿐만 아니라 정치적 소재를 다루는 다큐들을 모두 퉁쳐서 함량 미달이라는 편견을 만들어내고 결과적으로 좋은 다큐가 빛을 보지 못하게 만든다. 세상을 망치는 건 그런 사람들이다.

자, 그렇다면 최승호의 <자백>은 좋은 다큐인가.

나는 <자백>이 좋은 다큐라고 생각한다. <자백>은 잘 만들어진 탐사보도 다큐 필름의 조건을 비교적 잘 갖추고 있다. 그리고 그런 성취를 이끄는 눈부신 순간들을 포착해내는 데 성공했다. 아쉬운 점이 없는 건 아니다. 작품의 응집력을 고려할 때 국정원 간첩자살사건 대목은 빼는 게 나았다. 아이가 위험할 수 있는 상황인데도 피해자의 자녀와 스피커폰으로 통화하며 아버지의 죽음을 알리는 부분은 이 작품의 윤리성에 대해 고민하게 되는 지점이기도 하다.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멘트를 얻기 위해 그와 대화하려 노력하는 시퀀스도 그리 유의미한지 모르겠다. 물론 어떤 사람들에게는 우산 밑으로 목격된 원세훈의 웃음이 통쾌하게 느껴지겠지만 <자백>이 좋은 다큐가 되는 데 그런 장면은 그다지 위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자백>이 관객의 정신을 바짝 차리게 만드는 장면은 후반부다. 조작된 증거와 강요된 자백만을 가지고 재판에 임했던 검사들이 너무나 편안한 자연인의 모습으로 퇴근하며 낄낄대는 풍경은 매우 눈부신 포착이다. 그러나 그보다 강력하게 관객을 압도하는 장면은 다음에 나온다. 과거 군부독재 시절 간첩조작사건으로 억울한 시절을 겪은 피해자들이 있다. 격리되고 고문당하고 무참하게 찢어발겨졌다. 그리고 수십년 만에 비로소 대법원에 의해 무죄판결을 받아낸 사람들이다.

그 가운데 현재 일본에 거주 중인 간첩조작사건 피해자 김승효씨가 있다. 그는 서울대 재학 시절 북한의 지령을 받아 학생운동을 주도했다는 혐의로 체포돼 극심한 고문을 당했다. 그 결과 그는 정신분열 환자가 되고 말았다. 이제 초라한 백발의 노인이 된 김승효씨가 당시의 기억을 띄엄띄엄 일본어로 이야기한다. 그 기억은 참혹하고 끔찍하다. 인터뷰 도중 김승효씨는 혼잣말을 하기도 하고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누군가와 대화를 하기도 한다.

그러다 정신을 번쩍 차린 김승효씨가 카메라를 바라보고 한국말로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그가 수십년 만에 처음 꺼낸 한국말은 "한국은 나쁜 나라입니다"다. 한국은 나쁜 나라입니다. 그는 이 말을 두번 반복한다.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을 가리지 않습니다. 한국은 나쁜 나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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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순간 <자백>은 국가가 개인에게 어떤 짓을 할 수 있는지, 어떤 짓을 실제 했는지, 그리고 그것이 시간을 초월하여 어떤 상흔을 남기는지 명백하게 보여준다. 거기에는 더할 것도 뺄 것도 없다. 수많은 이들의 삶이 말 그대로 그냥 어그러진 것이다. 한국의 사회통합을 위해 '사용'되고 '폐기' 된 것이다. 이 지점의 처연한 문제의식은 그런 끔찍한 일이 수십년 전에 끝난 것이 아니라 바로 지금 이 시간에도 아무런 반성 없이 벌어지고 있다는 본래의 이야기로 자연스레 확장된다.

<자백>이 끝나고 나면 지금까지 간첩 혐의로 체포되었다가 최종 무죄판결을 받은 사람들의 목록이 스크롤된다. 목록은 끝을 모르고 이어진다. 흥미로운 건 목록의 마지막이다. 1997년을 마지막으로 끊겼다가 2011년부터 다시 시작되고 있다. 간첩조작사건은 1997년을 마지막으로 과거의 불우한 기억에 그치는 것 같았으나 2011년부터 다시 시작되었다. 1997년과 2011년이라는 글자에 음영효과를 다르게 넣었으면 좋지 않았을까 생각하며 탄식했다. 이 숫자는 <자백>이 다루고 있는 어떤 장면들보다 더 많은 것을 드러내고 있다.


* 이 글은 씨네21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