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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행'이 좀비영화라는 장르로 증명하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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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지웅의 경사기도권]

※영화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영화업계에서 좀비영화가 시들해진 건 이 소재가 의외로 다루기 까다롭기 때문이다. 좀비영화는 저예산으로 정치사회성을 풍자하고 드러내기에 매우 적합하다. 그러나 대개 흥행이 전혀 되지 않는다. 또한 많은 예산을 들여 재난 블록버스터를 만들기에 매우 적합하다. 그러나 재난 블록버스터의 소재로 이미 너무 익숙해서 새로울 게 없다는 사람들의 생각이 주판을 두드리며 투자대비 효용을 따지는 제작자들을 금방 포기하게 만든다.

사실 좀비영화처럼 다양하게 변주할 수 있는 소재는 드물다. 이건 애초 <살아 있는 시체들의 밤>(1968)을 통해 현대적인 좀비의 레퍼런스를 만들어낸 조지 로메로 감독이 좀비라는 괴물의 정체나 원리에 대해 명확히 설정하기를 거부했기에 가능했다. 우리가 지금 좀비라는 단어로부터 떠올리는 형태의 좀비가 탄생한 건 바로 이 영화부터다. 그는 인터뷰를 할때마다 "나는 좀비가 어디서 왔는지, 왜 나타났는지 관심이 없다"고 말했다. 덕분에 '연구실에서 만들어진 것이다'부터 '신의 저주다', '무분별한 핵실험으로 인해 탄생한 것이다'까지 다양한 해석이 덧붙여졌다.

<살아 있는 시체들의 밤>에서 조지 로메로 감독이 만들어낸 좀비라는 괴물은 기존 부두교의 좀비 주술 이야기에 뱀파이어 전설을 섞어서 나온 결과물이었다. 온전히 그의 머리에서 나온 아이디어는 아니었다. 리처드 매드슨의 <나는 전설이다>는 뱀파이어와 좀비 사이의 교두보가 된 기념 비적인 소설이다(이 소설은 <지상 최후의 사나이> <오메가맨> <나는 전설이다>로 여러 번 영화화되었다). 조지 로메로의 '설정에 제한을 두지 않는다'는 원칙 덕분에 좀비영화는 '좀비는 살아난 시체다' , '좀비는 사람을 먹는다' , '좀비는 전염된다'는 세 가지 설정을 제외하고 누구든 가져다가 마음껏 변주할 수 있는 좋은 소재가 되었다. 게다가 싸게 만들 수 있었다. 조지 로메로는 주변 정육점에서 고기를 사다가 가짜 피를 바른 조연들에게 먹으라고 시켰다. 그것만 가지고도 극장 안의 관객은 끊임없이 소리를 지르며 경악했다. 이후 셀 수 없이 많은 좀비영화가 쏟아져나왔다.

문제는 누구나 가져다가 자기만의 설정을 가지고 새로운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장점으로부터 불거져나왔다. 소리로 전염되는 좀비, 인간과 사랑을 나누는 좀비, 나치 좀비, 인간을 먹는 걸 괴로워한 나머지 자살하는 좀비, 뛰어다니는 좀비까지 수많은 영화가 등장했다. 그렇게 과잉생산되다 보니 역설적으로 굉장히 식상하고 오래된 소재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관객은 더이상 좀비라는 소재만 가지고 영화를 선택하지 않는다. <28일 후...>처럼 핀잔을 살 각오를 하고 뛰어다니는 좀비를 처음 등장시키거나 <월드워Z>나 미드 <워킹 데드>처럼 막강한 물량공세에 좋은 원작을 기반으로 한 탄탄한 이야기를 가지고 있지 않으면 흥행이 어렵게 되었다.

연상호 감독의 신작 <부산행>은 이 장르에서 우리가 아직도 보지 못한 것들이 남아 있다는 걸 증명하는 영화다. <부산행>이 한국에서 등장한 첫 번째 좀비영화는 아니다. 한국의 좀비영화는 1980년대에도 있었고 (<괴시>(1980)), 2000년대 들어서도 저예산으로 종종 만들어져왔다. <부산행>의 강점은 좀비라는 소재의 신선도로부터 나오는 게 아니라 그것을 다루는 방식으로부터 나온다. 이 영화는 한국 사회의 다양한 갈등 양상을 부산행 열차 안에 투영하는 데 어느 정도 성공할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 굉장히 훌륭한 수준의 좀비 액션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차별점을 갖는다.

주인공은 주식 펀드매니저다. 개미 투자자들을 짓밟아가면서 꽤 성공했다. 별거 중인 아내는 부산에 살고 있다. 딸은 엄마를 보기 위해 혼자서라도 부산에 가겠다고 조른다. 주인공은 딸을 데리고 열차로 부산까지 함께 가기로 한다. 주인공 부녀는 서울역까지 가는 도중 도시의 풍경이 어딘가 이상하다는 걸 감지한다. 이미 한국 전역에서 좀비 바이러스가 창궐한 것이다. 주인공이 탑승한 부산행 열차가 출발하기 직전, 좀비에게 물린 희생자 한명이 재빠르게 열차에 올라탄다. 이 부산행 열차는 곧 아비규환의 지옥도로 탈바꿈한다. 이미 좀비로 변한 승객과 살아남은 사람들을 태우고 열차는 달려간다.

<부산행>에서 가장 돋보이는 건 좀비의 액션이다. 이 영화가 좀비를 통해 구현하는 액션은 <월드워Z>의 좀비떼 비주얼 위에, 만화 <아이 앰 어 히어로>에서 좀비들이 보여주는 동작의 합을 얹은 것 같은 모양새다. 이미 수없이 보아온 좀비의 존재감만 가지고 관객에게 좋은 인상을 남기기란 어려운 일이다. <부산행>은 영리한 액션 운용을 통해 관객이 실제 공포를 느끼게 만드는 데 성공한다. 액션의 합과 동선에 관한 연출자의 높은 이해도가 이를 가능케 했을 것이다(연상호 감독은 본래 애니메이션 연출자다. 그의 애니메이션은 늘 인물의 움직임을 자연스러우면서도 기발하게 만들어내는 데 주력해왔다).

아쉬운 건 주인공 부녀를 제외한 다른 인물들의 드라마가 제대로 부각되지 못하다보니 부분적으로 이야기의 개연성에 문제가 발생한다는 점이다. 워낙에 빠르고 직선적인 이야기이기 때문에 그렇기도 하겠지만 조연의 감정선이 중요한 역할을 차지하는 대목에서는 어김없이 진행이 덜컥 거린다. 관객이 그들의 결정이나 감정에 충분히 몰입할 수 있는 정보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배우들의 연기 탓으로 돌리는 관객이 있겠지만 사실 이건 이야기를 제대로 정리하고 완결해내는 데 실패한 감독의 책임이 더 크다. 거의 콘티 그대로 수정 없이 만들어진 영화라는 점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부산행>은 긍정으로든 부정으로든 매우 대중적인 영화다. 누군가는 분명히 이 영화가 보여주는 후반부의 과도한 신파에 거부반응을 일으킬 것이다. 아빠 가지 마! 는 하도 많이 듣다보니 <클레멘타인>이 떠오르기도 한다. 그러나 <부산행>이 여름 관객을 겨냥한 15세 이상 관람가의 블록버스터 상품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더 많은 사람이 호응하고 감동할 수 있는 지금의 꼴이 결국 옳지 않았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좀더 암울한 성인 버전의 이야기를 바란다면 향후 발표될 애니메이션 <서울역>을 기대하는 편이 낫겠다. 같은 시간대에 서울역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영화의 중반, 객차의 문을 연 할머니의 선택이 계속 마음에 남는다. 최소한의 이성과 합리가 다수의 광기에 의해 지배당할 때 이를 그저 지켜보고 있을 수밖에 없는 무력한 개인이 선택할 수 있는 건 결국 자폭밖에 없는 것일까. 그런 맥락에서 나는 <살아 있는 시체들의 밤>의 마지막 장면을 변형한 것으로 보이는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 너무 좋다. 우리는 언젠가 반드시 다시 만난다. 만날 것이다. 그러므로 당장 힘들고 어렵더라도 자폭하기보다 설득하고 싸워나가기를 포기할 수 없다. 요즘은 그렇게 원론적인 것들에 자꾸 마음이 간다. 우리 사회를 지탱해주던 가장 기본 적인 믿음들이 세상을 더 많이 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 아직도 그런 걸 믿느냐는 사람들에 의해 수시로 훼손되어 버려지고 있다. 나는 그게 너무 슬프다.

* 이 글은 씨네21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