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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이 찾아올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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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보.

어렸을 때부터 잘 울었다. 특히 오빠랑 싸우다 보면 논리에서 밀리기 때문에 무조건 울어버렸다. 생떼를 쓰기도 하고 억지를 부리기도 하고. 무조건 울면 장땡이라고 생각했다.

싸울 때도 그렇지만 도움이 필요할 때도 불쌍한척하며 잘 울었다. 억울할 때도 울고, 서운할 때도 울고, 감동받아도 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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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이 되어서도 내가 자주 느끼는 감정은 슬픔이다. 예전에는 슬퍼지지 않으려고, 행복한 척하고 꿋꿋한 척, 씩씩한 척 한 적도 있었지만 지금은 그 감정을 온전히 느끼려 한다. 그 때마다 기꺼이 반겨준다.

어쩔 땐, 그냥 시원하게 울어버리고 싶어서 슬픈 영화나 슬픈 음악을 찾아서 듣기도 한다. 그 과정에서 떠오르는 사람이 있고 보고 싶은 사람이 있다.

어제도 그러했다.
갑자기 슬픔이 찾아왔고, 나는 그 감정에 충실하며 슬픈 영화를 찾아 봤고, 나의 슬픔을 만끽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동시에 문자도 남겼다.
"내일 아침 일찍 올 거지?"

내일 아침 일찍 출근해서 같이 일하는 동료에게 속상한 거 얘기하면서 울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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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상담을 하다 보면 우는 행위에 대해 부정적으로 인식하는 사람들을 만나곤 한다. 다른 감정들을 느끼는 것도 불편해하지만, 갑작스럽게 터져 나오는 울음에 대해서도 당황해한다.

"상대방이 당황스럽지 않을까요?"
"불편해하는 것 같아요."

그들에게는 울면 안 되는 규칙들이 존재했다. 그러한 규칙들은 그들이 눈물을 보였을 때 남들이 부정적으로 피드백을 했던 기억들이 있기에 형성된 것이었다.

허나, 나는 슬픔을 느끼고 이를 표현하는 것이 오히려 좋게 작용할 때도 있다고 생각한다. 감정 정화의 한 측면으로 볼 수도 있겠지만 슬픔을 표현할 때, 우리는 타인으로부터 위로와 지지를 받을 수 있고 슬픔을 공유하며 관계가 더 깊어지는 기회를 가질 수 있다. 물론, 이 또한 어떤 이차적인 이득을 얻기 위해 사용하는 불순한 의도라면 긍정적으로 볼 수 없겠지만. 오로지 순수하게 내 감정을 타인과 공유하는 측면에서만 보자면 좋은 기회라고도 생각한다.

슬픈 땐 슬픈 감정을 함께 공유하여 위로받고
기쁠 땐 즐거운 감정을 공유하여 함께 기뻐할 수 있는 관계가 있다면
그보다 더 좋은 일이 더 있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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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필자의 브런치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