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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와 다른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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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중에 뭐가 되고 싶니?'
'목표가 뭐야?'
'전공은 마음에 들어? 적성에 맞는 것 같아?', '지금 하는 일이 재미있어?'

이 질문들은 내가 자라오면서 듣거나 혹은 지금도 듣고 있는 얘기들이다.

사람들은 자신이 잘 할 수 있는 일, 혹은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잘 모르는 사람들이 있고, 그저 명예나 돈 때문에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래서 어떤 이는 자신의 일을 즐거워하면서 만족감을 느끼며 신바람 나서 하는 반면에 어떤 이는 매일 아침 출근길에 사표를 오늘 쓸지, 내일 쓸지 고민을 하면서 오늘만 버티자는 마음으로 출근을 한다.

과연 이 차이는 무엇일까? 물론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여러 사람들을 만나 오면서 내가 내린 결론은 '성장과정에서 자기(self)의 손상 여부가 현재 삶의 주도권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여기서 잠시! 자기(self)란 무엇일까? 여러 학자들이나 이론마다 설명하는 것들이 조금씩 다르고 매우 복잡하지만 내 방식대로 쉽게 말하자면 내 얼굴과 몸은 어떻고,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무슨 일에 슬프고 기쁜지, 무엇을 잘하고 못하는지 등등 다른 사람과 다른 '나'에 대한 여러 가지 개념들이 모여 하나의 인격체로 형성된 것이 바로 자기(self)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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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요즘 사람들을 보면 애나 어른이나 이 자기(self)가 매우 손상되어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예를 들면, 부모의 가치관을 내 것처럼 인식하거나 혹은 다른 사람들의 시선에 발목이 잡혀 자유롭게 살지 못하는 등, 자기 정신으로 자신의 삶을 주도적으로 사는 사람이 많지 않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자기(self)는 어떻게 손상이 되는 것일까?

방금 언급했듯이 성장과정에서 부모에 의해 손상된 경우가 많이 있다고 본다. 자식을 자신의 소유물인 것처럼, 자신의 뜻대로, 자신의 생각대로, 자신이 원하는 대로 키우는 것이다. 쉬운 예로, 아이가 먹고 싶은 것을 묻지 않고 'oo야, 자장면 먹고 싶지 않니?' 라며 자신의 욕구를 투사시키는 것이다. 이런 언어 표현은 친구나 연인들 사이에서도 많이 나타나는 유형이다. 이런 표현은 나도 없고 상대도 없는 대화 내용인 것 같다.

다른 사람과 다른 나. 나. 나. 나.

그 '나'의 모습으로, '나'의 감정과 생각으로 하루하루, 매 순간을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 어떠한가? 쉬운 예로, 점심식사 때 내가 먹고 싶은 것이 있어도 옆에 친구가 먹고 싶다는 것이 있으면 친구의 의견에 따르지 않는가? 심지어 무엇을 먹고 싶은지, 무엇을 하고 싶은지 모르는 경우도 있다.

질문이나 표현 자체도 내 욕구를 직접적으로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수동적이고 의존적으로 내 결정에 대한 권한을 상대방에게 부여해주는 경우도 많다.

'너 춥지 않냐?'
'오늘 따뜻한 국물 먹고 싶지 않냐?'

내가 춥고, 내가 먹고 싶은 거다.
이제 다시 표현해보자.

"나 추워."
"나 따뜻한 국물 먹고 싶어."

이렇게 말이다.

언어 표현이 단순하고 작은 부분인 것 같지만, '너'에서 '나'로 한 단어만 바꿔도 큰 변화가 일어날 것이다. 그 한 단어의 차이가 남의 의견을 더 중시하는지 아닌지 나타내는 징표이기 때문이다.

* 이 글은 필자의 브런치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