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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척 하며 살아가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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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자로서 보는 세상②]

대학 졸업 후 다니던 직장을 그만 둔 후, 2년 간의 시간은 내게 없었던 것처럼 살고 싶었다. 내가 그 시간을 살지 않았던 것처럼 꽁꽁 숨겨두고 꺼내놓지 않았던 시기가 있다. 그 시기에 무엇을 했느냐고 누가 물을라치면 나도 모르게 당황하고, 왜 물어보나 싶어서 서둘러서 짤막하게 대답하고 말았다.

"지금까지 무슨 생각을 갖고 살아왔을까..."

그 시기에는 모든게 혼란스러웠고 갑자기 모든 것이 잘 못 된 것 같았다. 내가 무슨 생각을 갖고 살았는지 전혀 모르겠고, 무슨 일을 하고 싶어하는지도 잘 모르겠는. 그런 혼란스러움에 갈 길을 잃어버린 것 같았다. 그렇게 방황하던 시기에 외부 사람들이 나를 바라볼 때는 한심하고 비겁하기 이를 데 없었을 테지만 내 안에서 바라보는 내 모습은 안쓰럽고 불쌍하고 힘들겠다고 위로해주고 싶은 마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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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은 항상 밝고 에너지 넘치는 삶이었다고 말하고 싶었다."

가끔 새로운 사람들을 만날 때, 나에 대해 궁금해하면서 나의 이력에 대해 궁금해할 때, 나는 방황하던 그 시절의 나의 모습에 대해 굳이 이야기하지 않았다. 물론 묻지 않는데 내가 나서서 미리 이야기할 필요는 없었지만, 내 마음은 내가 더 잘 알았기에 내 스스로가 나 자신의 모습에 대해 인정하지 않는 것 같아서 한편으로는 그런 내가 싫었다.

방황하던 시기도 지나가고, 그 시기를 스스로가 한심해 하던 시기도 지나고 나서, 지금에서야 이제까지 살아왔던 '내 날들'에 대해 여유롭게 품어줄 수 있게 되었다. 그때 고민하고 혼란스러워하던 내가 없었다면 지금의 나도 없었을 것이라는 것을 요즘에는 더 잘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제는 그렇게 무모할 정도로 아픈 시간을 가졌던 것이 오히려 더 많이 남아 있는 내 삶을 위한 배려였던 것처럼 느껴진다.

"부끄러워할 것도, 수치스러워할 것도 없는 이유는 '너'와 '내'가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집단상담을 하다 보면, 자신의 나쁜 모습 혹은 어두운 과거에 대해 드러내기를 꺼려하는 사람들이 있다. 자신의 좋은 모습, 좋았던 시절만 이야기하려고 하거나, 혹은 예전에는 힘들기는 했지만 지금은 번듯하게 잘 지내고 있다는 것을 재차 강조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전에 경험한 어려움에 대해 굳이 부정을 하지 않아도 되는데 애써 자신을 매끈한 포장지로 꾸며내려고 했다. 오히려 그런 행동이 더 부자연스럽고 방어적으로 느껴져서 남들에게 부정적인 피드백을 들을지언정 자신의 추한 모습은 끝끝내 드러내려고 하지 않는 것이다. 내 스스로가 도저히 인정을 못 하겠다는 것이다. (물론 집단상담 내에서 자신의 과거사를 모두 다 드러내라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경우는 집단 내에서 개방하기 보다는 개인상담 장면에서 다뤄야 하는 것들이 있기도 하다)

자신의 인정할 수 없는 모습들. 부끄러운 행동들에 대해 자랑을 하라는 것은 아니지만, 숨길 것도 없다는 것이다. 내가 살아가는 삶이나 네가 살아가는 삶이 크게 다르지 않고, 내가 부끄럽게 여기거나 창피했던 일들, 그리고 네가 경험했던 일들이 그렇게 큰 차이가 있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강도의 차이나 경험의 차이는 분명히 있겠지만, 사람 사는 것이 뭐 얼마나 다르겠냐는 것이다. 그래서 50대 중년의 어머니가 자신의 삶에 대해 이야기를 할 때도 20대의 청년이 공감하며 고개를 끄덕이고, 10대 청소년의 고민에 30대 직장인이 맞장구치며 이야기를 할 때가 있는 것이다.

상대방의 삶에서. 상대방의 모습에서 나나 내 부모님, 혹은 내 형제나 친구들의 삶이나 모습을 보게 되기도 하는 것이다. 그렇게 서로가 수용을 할 수 있는 관계의 시작은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부터 시작을 해야 할 듯 싶은데 그게 쉽지는 않은 일이라는 것도 이해된다.

하지만 안심시켜주고 싶다. 인간은 다 같은 인간이라고. 누구 하나 뭐가 더 잘났고, 뭐가 더 못 났는지 그렇게 크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말이다.

오히려 다들 못났고 다들 부족한 모습이니까 서로 의지하며 기대고 살아갈 수 있는 거라고 말해주고 싶다.

* 이 글은 필자의 브런치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