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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의 흔적들을 찾지 못한 빈 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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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의 흔적들을 찾지 못한 빈 관에는 사랑하는 이들의 편지와 꽃이 담겼다. 그리고 바다에서 건져 올린 현철이와 영인이의 교복과 가방, 제주도로 이주하던 권재근씨의 희망과 어린 혁규, 아이 몸만큼 작았을 가방이 담겼을 것이다. 그마저 찾지 못한 양승진 선생님은 생전에 사용하던 물품과 옷가지를 관에 담았다 한다. 그렇게 돌아오지 못한 가족들을 기다리던 이들이 빈 관을 들고 세월호를 떠났다. 그들은 바람 부는 바다 앞에서 "...이제 가족을 가슴에 묻기로 결단을 내렸다"고 말했다. 마지막 홀로 남겨질지 모른다는 두려움과 '이제 그만하면 됐다'는 말들이 그들 등을 모질게 떠밀었을 것이다.

상처 입은 고래 같은 모양으로 세월호가 바다 위에 모습을 드러냈을 때만 하더라도 가족을 찾을 수 있으리라는 희망이 있었을 텐데... 빈 관들이 목포 신항을 떠나던 날, 바람이 어찌나 거세게 불던지 현철 아빠는 "우리 아들... 가기 싫은가 보다" 했고, 양승진 선생님의 부인 유백형씨는 "여보, 더 찾아달라는 거예요?" 했다며, 언론은 전한다. 그들은 지긋지긋한 바다를 향해 고개를 돌리고 또 돌렸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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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지진을 '2만명이 죽은 하나의 사건으로 생각하면 피해자를 전혀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 한 사람이 죽은 사건이 2만건 있었다'고 이해해야 한다." 후쿠시마 지진 피해자들에 대해 일본 감독 기타노 다케시가 한 말이다. 한 사람, 한 사람 존엄에 주목해야 한다는 말이다. 세월호 참사를 통해 이해하게 되었다. 희생자 304명, 생존자 172명, 5명의 미수습자들을 찾지 못하고 장례를 치르며 아파 흘리는 눈물도 그래서겠다. 그들의 이름을 알기 때문이다. 바다에서 실종된 익명의 몸이 아니라, 그의 이름이 남현철이고, 박영인이며, 양승진이고 권재근, 권혁규임을 알기 때문이다.

따뜻한 피가 돌았던 사람들... 차가운 바다에서 돌아오지 않는 시간을 하루처럼 기다리는 가족들이 있는 사람들. 기타를 좋아했던 소년, 운동을 잘했던 소년, 새로운 정착의 꿈을 배에 실었던 아빠와 엄마 그리고 아이들. 참사의 희생자들을 비용이나 숫자로 부를 수 없는 이유다. 나치는 '학살'을 '최종해결책', '완전소개', '특별취급' 같은 암호화된 언어로 불렀다. 인간 죽임에 대한 자각을 거부한 것이다. 존엄을 무시하고 훼손하는 이들이 자신들의 행위를 정당화하는 모습이다. 참사 직후부터 세금 타령을 한 사람들이 있었다. 희생자 가족들에게 보상금 더 타려는 것이라 모욕한 사람들도 있었다. 지난 정권의 여당 정치인들이 맨 앞에 있다. 빈 관 장례에 대한 책임이 그들에게 없겠는가? 그들이 또다시 진상규명 특별조사위원을 추천하는 일이 끔찍한 이유이기도 하다.

"단 하루도 빠지지 않고 교문 앞에 계시던 선생님... 제가 매일 시연이를 바래다줘서 잘 알아요. 선생님은 아이들이 시험을 보거나 소풍을 가는 날도 꼭 교문에 서 계셨어요." 희생학생 시연 엄마가 이야기했다. 단원고 정문 앞에서 등교 지도하는 양승진 선생님의 풍경이 그려졌다. 왁자지껄 소란스럽게 학교 문을 들어서는 현철이와 영인이, 은화, 다윤이, 그리고 고창석 선생님과 학생들.... 그들은 3년7개월 전 멈춘 시계 속에 살고 있다. 남은 이들의 기억 속에서 끊임없이 살고 있다.

세월호 참사로부터 1314일째 날, 장례를 마치고 단원고를 나서던 양승진 선생님의 팔순 노모는 유품조차 찾지 못한 아들의 영정을 쓰다듬고 쓰다듬었다. 빈 관을 앞세운, 새끼 잃은 어미의 마른 울음이 아들이 단 하루도 빠지지 않고 지켰던 교문 앞을 맴돌았다.

* 이 글은 한겨레 신문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