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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 가면 다 연애한다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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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 가서 남자친구 안 생긴 사람 처음 봐."

대학 시절 교환학생에서 돌아와 들었던 말이다. 나는 독일 소도시에서 한 학기를 보내고, 명성 자자한 곰 젤리와 소시지 덕분에 허리에 두둑한 햄을 두르고 귀국한 참이었다. 듣고 보니 그럴듯했다. 어학연수며 교환학생을 떠났던 친구들, 하다못해 배낭여행을 다녀온 이들까지 어디선가 남자친구나, 최소 한국에 와서 다시 만나기로 약속한 '썸남'을 만들어 왔으니까. 이번에도 '나만 빼고'.

하긴 외국에서 만난 한국인들은 꽤나 열렬하게, 타는 목마름으로, 연애에 열심들이었다. 여행을 다니며 한인민박에 묵으면 비슷한 연령대의 남녀 그룹이 서로 불꽃 튀는 탐색전을 벌였고, 소도시의 좁은 한인 커뮤니티에서는 염문설이 흔했으며, 어쩌다 기차 같은 곳에서 동석하게 되면 "한국인이세요?"를 시작으로 <비포 선셋>을 찍고 싶은 이들을 심심찮게 만날 수 있었다.

기간이 정해져 있는 외국 생활은 사람을 말랑말랑하게 만든다. 교집합이 없던 사람과 만나고, 한국인이라는 이유만으로 금방 친밀감을 느끼며, 이국의 공기는 일상에 손쉽게 낭만을 불어넣는다. 함께 동고동락하거나, 먼저 온 사람이 도와주거나, 우연히 스친 만남에서 금방 스파크가 튄다. 비교군이 적고 생활 사이클이나 행동 반경이 겹치는 경우가 많아 연애가 성사될 확률은 한국에서보다 훨씬 높다. 이렇게 외로움이 경계심을 앞지르고, 유대감이 내밀해지면 메 구스타스 구스타스 투 "오늘부터 우리는"의 시작이다.

한편 그런 '카더라'가 있다. "외국 거주 경험이 있는 여성은 결혼정보 회사에서 감점당한다"라는. 이것은 우리 사회의 어떤 저열함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여성의 외국 거주 경험은 종종 성적 문란함으로 해석된다. 외국 남성과 연애했을 가능성 때문이다.

나는 외국의 낯선 도시를 혼자 여행할 때 가끔 현지인의 도움을 받았는데, 그때마다 한국인 남자들에게서 따가운 시선을 받았다. 걔들이 잘해주는 것은 흑심이 있기 때문이라는 근엄한 가르침도 들었다(하지만 초면에 거리감을 좁히려면 일단 친절하고 다정하게 대하는 것이 국적 불문 지구촌의 상식이다. 흑심이건 새하얀 순정이건). 만약 그 관계가 연애나 '썸씽'으로 발전했더라면 더한 소리가 기다리고 있었을 것이다.

국제 연애와 결혼이 늘어나는 추세지만, 여전히 외국인 남성과 연애하는 여성을 '민족성을 훼손시킨' '오염된 것'으로 간주하고 비난하는 시선이 존재한다. 이 때문에 외국 거주 경험에서 외국인과 사귀거나 썸을 타는 것은 한국인과의 연애보다 좀더 은밀하고 조심스러운 일이 된다.

니라 유발 데이비스에 따르면, 민족은 집단체의 경계를 설정하는 '정치적 과정'이고, 정체성 내러티브는 세상을 '우리'와 '그들'로 나누는 민족기획의 도구다. 이 지점에서 여성은 '상징적 경계 수비대'가 된다. 민족이라는 상상체로 설정되는 것은 외세에 오염되지 않은 순수한 가부장적 공동체이고, 이것은 '유린되지 않은 순결한 몸'으로 상징된다. 외국인 여성을 사귀는 남성은 정확히 같은 논리에 따라, 정반대의 대우를 받는다. '태극기를 꽂'은 '국위 선양'의 이름으로. 여기에는 인종 간 권력관계도 개입한다. 제1세계의 백인 남성과 사귀는 여성이 가장 큰 욕을 먹고, 제1세계의 백인 여성을 사귀는 남성이 제일 능력자가 되는 식이다.

짧은 외국 생활은 나에게 남들 다 한다는 연애를 선사하지 못했다. 기승전'안생겨요'라는 놀림을 받았고 어떨 때는, 왜 나는 이 연애전선에서 '이상 없음' 상태인지 고민하기도 했다. 그렇다고 불행하거나 부족하지는 않았다. 연애가 없으면 없는 대로 내게는 오직 그 순간에만 가능한 생의 무늬들이 아로새겨졌으니까. 말이 통하지 않는 막막함도, 낯선 세계의 질서도, 터질 듯한 외로움도, 가족 같은 새 친구들도 온전히 나의 것이었다. 연애 여부가 좌지우지할 수 없는 특별함이 나라는 인간의 고유함을 형성한다.

* 이 글은 <한겨레21>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