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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할 자유, 임신을 중단할 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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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5일, 어제가 된 오늘 아침에는 생계를 위한 노동을 했고 낮에는 신념을 관철하러 '검은 시위'에 참가했으며 저녁에는 '랜선에서광장으로' 혼밥 모임에 다녀오는 문화생활을 누렸다.


비혼모 지원 프로그램에서 상근자로 잠깐 일하는 동안, 나는 국가가 비혼모들에게 얼마나 관심이 없는지 똑똑히 목격했고 온 세상이 그들을 어떤 눈으로 보는지 지켜보았다.


2.

세상에는 애초에 논의의 대상이 아닌, 당연히 누려야 하는 권리가 찬반을 두고 다툴 수 있는 가치관의 문제로 오인되거나, 금기(박탈)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낙태죄가 그 중 하나로, 지금껏 국가가 여성의 몸을 어떻게 취급해왔는지 투명하게 드러내는 사안이다. 여성이 임신을 지속할 자유와 지속하지 않을 자유는 온전히 그 여성의 선택이어야 한다. 여기에는 어떤 헛소리도 첨언할 필요가 없다. 어떤 이유로든 낙태에 반대한다면, 그것은 타인의 삶을 개인의 도덕적 만족(이라고 쓰고 임신과 출산을 비참한 징벌로 이해하는 악랄한 심보라고 읽어야 한다)에 던지는 행위이다. 평생 가야 자신이 낙태로 인한 신체적.정신적 부담과 위험, 사회적 낙인 등을 1그램도 감수하지 않아도 되기에 할 수 있는 소리이다. 처벌은 여자와 의사만 받으니 얼마나 남는 게임인가. 낙태 반대는 의견이 아니다. 여성이 임신과 출산, 엄마라는 역할 외의 삶이 있음을 인정하기 싫고, 비혼모들이 어떤 어려움을 겪는지, 태어난 아이들이 어떻게 뱃속의 세포일 때보다 못한 취급을 받는지 전혀 관심도 없다는 추한 자기 고백일 뿐이다.

비혼모 지원 프로그램에서 상근자로 잠깐 일하는 동안, 나는 국가가 비혼모들에게 얼마나 관심이 없는지 똑똑히 목격했고-그 당시는 한 달 지원금이 5만원이었다-온 세상이 그들을 어떤 눈으로 보는지 실시간으로 지켜보았다. 비혼모의 스펙트럼은 빈곤한 상상력과 달리 나이도 계층도 양상도 계기고 매우 다양하지만 반대론자들은 끝까지 머릿속에 '멋대로 성을 향유하는 방종방탕한 젊은 여자'를 잃지 못할 것이다. 임신을 징벌로 보는 이들이 비혼모와 그 아이를 보는 시선이 어떨지는 뻔하다. 평생 비참하기를 바랄 것이고, 행복해보이거나 당당하면 모욕감을 느끼겠지. "어디서 감히..." 이런 심정으로. 프로라이프 같은 소리 하고 있네, 프로 여혐러들아.


아메바도 아니니 혼자 임신했을 리는 없는데, 지우면 지웠다고 낙태충 낳으면 낳았다고 미혼모 또는 맘충이다.


3.

2000년대 초반, 미션스쿨에 다니던 나는 어두컴컴한 기도실에서 잔인한 낙태 비디오를 보았다. 스타킹을 신은 여자의 다리가 흔들리는 장면까지 보이는 잔인하고 노골적인 연출이 기억 난다. 태아가 흡입기를 피해 도망 다니고 소리를 지르는 것은 조작된 영상이지만 지금도 어디간에서 절찬리에 상영 중일 것이다. 그리고 절대 안전한 초기 낙태는 점보다 작은 세포일 때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가르쳐주지 않으리라. 비디오와 교육의 목적은 정보 전달이 아니라 죄책감과 공포 주입이니까.

그 학교의 명물은 또 순결 서약식이었는데 블랙 코미디가 따로 없었다. 벽에는 'True love is waiting' 같은 문구가 걸려 있었고, "나는 나의 배우자를 위해..."로 시작되는 선언문을 읽었으며 순결 사탕을 먹고 전교생이 각자의 손가락 사이즈에 맞춘 은반지를 꼈다. 그러거나 말거나 학생들이 쓰는 여자 화장실에서는 빨간 줄이 두 개 뜬 임신 테스터기가 발견되었고 싸구려 콘돔이 은밀하게 책상 밑을 오갔다. 그날 내내 학교에서 울던 급우가 아직 기억이 난다. 나는 온몸을 꽁꽁 싸매고 다녔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모르는 아저씨가 이야기 좀 하자고 쫓아왔고 학교에서는 같은 반 남학생이 여학생들의 신체검사 결과를 훔쳐 키와 몸무게, 가슴 사이즈를 공유하고 등수를 매겼으며 남자 교사는 여학생을 불러내 안마를 시켰다. '걸레'라고 소문난 여자애의 팔자걸음이 타락의 증거로 지목되었고 선생님들은 입술을 빨갛게 칠한 학생들에게 거침없이 "술집 여자냐"라는 말을 퍼부었다.

임신할 수 있다는 두려움과 그것으로부터 피할 방법을 알려주지 않는 세상, 내 의사와 상관없이 내 몸을 침범하고 간섭하려는 사람들 투성이라는 사실, 문란하다는 낙인이 찍힌 이후의 시선과 대접. 그 무렵 나는 온 세상이 있는 힘껏 내 몸과 의식을 일그러뜨리고 뒤틀어놓으려고 손가락을 구부리고 있는 듯한 인상을 받았다. 악의와 적대로 가득 찬 세상은 '베토벤이 되었을지도 모르는' 세포의 미래를 안타까워하지만 베토벤이 아니더라도 차곡차곡 자신의 생을 쌓아온 여성은 인간으로 취급하지 않는다. 섹스했기 때문에. 감히, 섹스했기 때문에. 유화도 마리아도 아메바도 아니니 혼자 임신했을 리는 없는데, 지우면 지웠다고 낙태충 낳으면 낳았다고 미혼모 또는 맘충이다. 양육을 책임질 것도 아니지만 남성의 동의가 없으면 자기 몸인데도 낙태할 수 없고, 그 때문에 강간 당한 여성들이 가해자에게 찾아가 부탁하는 경우도 있으며 보복성으로 고소를 당하기도 한다.

전 세대 여성이 성별 감별과 산아 제한으로 임신을 지속할 자유를 박탈당했다면, 지금 세대 여성들은 출산율이 낮다는 이유로 임신을 지속하지 않을 자유를 박탈당한다.


4.

1995년 출생 성비는 여아 100명당 남아 113.4다(2015년은 105.3). 이것이 얼마나 비정상적인 수치인지,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른다면 더더욱 이 이슈에 입 대고 나댈 자격이 없다. 산아제한정책과 의학 기술의 발달이 만나(태아 성별 감별이 가능해지면서) 남아 출생이 드라마틱하게 늘어나는데 이 성비는 둘째, 셋째로 갈수록 더 크게 벌어진다. 95년 이전 출생자들은 높은 확률로 젠더 사이드와 얽혀 있다. 이 모든 것이 사회와 가정과 국가의 은밀한 공모로 이루어졌다. 최근의 여아 선호 역시 '딸바보' 등의 이미지로 상징되는, 딸에게서 감정노동을 착취하려는 취향의 반영이지 딱히 여권이 신장되었다는 증거는 될 수 없다. 성별 감별 기술이 나오기 전에는 여성의 성비가 더 높았던 시절로는 아마 다시는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전 세대 여성이 성별 감별과 산아 제한으로 임신을 지속할 자유를 박탈당했다면, 지금의 세대 여성들은 출산율이 낮다는 이유로 임신을 지속하지 않을 자유를 박탈당한다. 개인의 이기심으로 국가의 위기를 모르는 척 하는 이기적인 젊은 것들이 된다.

<계간홀로>를 만들고 '연애하지 않을 자유'를 주장하면서 내가 빠짐없이 받는 질문 중 하나가 그러면 저출산을 어떻게 하냐는 질문이었다. 참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힐 일이었다. 출산은 결혼으로 이루어진 '정상 가정' 내에서만 일어나는가? 프랑스나 북유럽 사례는 지겨워서 가져오기도 싫다. 어차피 아직도 비연애, 비혼과 저출산을 연결짓는 사람들은 다양한 형태의 출산과 양육을 지원하여 출산율을 높이는 사례 같은 건 보여줘도 안 볼 테니 버리고 간다. 이건 협의하고 말고, 국민 정서(ㅋ)를 생각해서 천천히 하고 이딴 문제가 아니다. 여태껏 불법인 게 명백한 문제이고, 의사들이 여성의 신체를 볼모로 거래를 하려는 것이 문제이다.


왜 여성은 오직 성별 때문에 출산기계로, 걸어 다니는 자궁으로 패싱되며 단속과 통제와 감시와 검열과 프로젝트의 대상이 되는가?



5.

오늘 검은시위에서는 가능하다면 모두 주워 담아 안고 싶었던 이야기들이 쏟아졌다. 시위에 가면 발언을 하는 대신 오직 그 순간에만 들을 수 있는 귀한 이야기들을 귀 기울여 듣는다. 언제나 겹겹이 방어벽을 친 사적인 공간에서만 은밀하게 오갔던 이야기들이 광장에서 울려퍼지는 것은 매우 정치적인 사건이다. 청소년 발언자가 들려준 여전히 열악한 성교육, 비혼모 어머니에게서 태어난 여성, 젠더 사이드를 뚫고 태어난 여성의 생존담, 데이트 폭력과 직결되는 피임 선택권의 강탈, 낙태에 대해서 생각이 바뀐 어머니와 함께 이야기한 경험 등. 그 공간, 그 장소기에 가능한 발화와 용기들, 다른 누구의 것도 아닌 모두의 이야기들. 그동안 내 삶과 내 경험, 내 이야기들도 머릿속을 수없이 스쳐지나갔다. 그들은 곧 나이기도 했고, 나는 곧 그들이었으며 이것은 엄연한 정치적 의제였다. 왜 여성은 오직 성별 때문에 출산기계로, 걸어 다니는 자궁으로 패싱되며 단속과 통제와 감시와 검열과 프로젝트의 대상이 되는가?


'함부로' 굴리든, 결혼할 사람하고만 '조신'하게 하든, 그리고 그 몸에 일어난 일을 어떻게 처리하든 선택은 오롯이 몸의 주인의 것이어야 한다.


6.

이것은 결국 잡지 10호에 담아야 할 이슈이기도 하다. 사안들은 촘촘하게 연결되어 있다. 어떤 여성들은, 임신을 중단하지 못해 원하지 않은 결혼 상태에 들어가기도 하고 어떤 여성들은, 결혼은 하지 않으면서 출산과 양육을 꿈꿀 수 있다. 이것은 연애 관계 안에서 일어나는 폭력의 일환이기도 하고 여성이 자유롭게 연애/섹스할 수 없도록 옥죄는 사회적 분위기의 반영이기도 하다. 이에 대해 써주실 좋은 필자 분에게 청탁을 요청한 상황이고, 아직 확답은 받지 못했으나 만약 거절하신다고 해도 이 이슈에 대해 이야기하기를 멈출 수는 없다. 이것은 결국 자신이 바라는 대로 삶을 지속하고 결정할, 자유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임신하고 그것을 유지할 자유(성별 감별, 장애아 판정 등에 의해 낙태를 강요받지 않을 자유), 임신 상태를 중단할 자유.

오늘 시위에서 진짜 좋았던 구호가 있다. "내 자궁은 내 것이다, 보건복지부는 나대지 마라!" 그래, 진짜 나대지 마라. 니 거 아니다. '함부로' 굴리든, 결혼할 사람하고만 '조신'하게 하든, 그리고 그 몸에 일어난 일을 어떻게 처리하든 선택은 오롯이 몸의 주인의 것이어야 한다. 트위터에서 나온 말인데 '방종방탕'하게 굴어놓고 '내몸내맘'대로 하겠냐고 부르르 떨던 계정이 있던데, 그게 분하다면 니 몸 니는 조신하게 쓰고 남의 맘에 처분을 맡기세요.


* 이 글은 필자의 페이스북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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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거 낙태 수술을 받은 적이 있다고 전한 예술가 홍승희 씨는 "여자는 엄마이기 전에, 예비 신부 이기 이전에 한 명의 인간"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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