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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와 안전의 상관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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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데이트 폭력'이 가시화되었다. 그러나 아직도 데이트 폭력은 '폭력'보다 '데이트'에 방점이 찍힌다. 엄연한 폭력을 사적 영역으로 밀어넣고 '치정싸움' '사랑해서 그랬다'라는 말로 문제의 본질을 은폐해온 관습은 힘이 세다. 실제로 3일에 한 번씩 여성이 친밀한 남성, 즉 남자친구나 남편, 혹은 '썸 타는 사이'였던 이들에게 살해당하는 세계, 연애는 고위험군 관계에 속한다. 나는 꾸준히 연애가 은폐하는 폭력, 즉 '데이트 폭력'에 천착해왔는데, 오늘은 좀 다른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연애하지 않는 여성들이 처하는 위험에 대해서, 즉 여성의 안전을 사적인 관계(?), 그러니까 '연애'에 의탁할 수밖에 없는 현실에 대해서.

인기를 끌었던 동명의 웹툰을 원작으로 한 드라마 <치즈 인 더 트랩>에서 여주인공 홍설(김고은)은 술을 먹여 모텔로 데리고 가려는 남자 선배에게 붙잡히지만 남주인공 유정(박해진)에게 구출된다. 남자 선배가 상습범으로 재현된다는 점에서, 홍설 이전의 많은 여성 피해자들은 '호감을 가진 남자의 보호'가 없어서 피해자가 되었음을 알 수 있다. 가수 지코의 노래 <너는 나 나는 너>에서 화자가 "집착 쩌는 니 전 남친"이 "집 근처도 얼씬 못하게" 하겠다며 구애한다. 여성을 어떤 위협으로부터 지켜주는 것은 로맨스의 공식이고, 이런 서사는 미디어뿐 아니라 일상에서도 아주 흔하다. 이 '험한 세상'에서, 연애관계의 의무로 제시되는 행위들은 여자의 안전과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다. 남자친구'가' 여자친구'를' 집까지 데려다주고, 여자친구의 노출에 '고나리' 하는 것들이 여기에 속한다.

혼자 택시를 탔다가 위협을 느낀 여성들은 아무 남자에게나 전화를 걸어 통화해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남자 목소리가 들리도록 소리를 최대한 키워서. 모르는 남자가 접근할 때 가장 효과가 좋은 방법은 "남자친구를 기다린다"였고, 술에 취해 나를 때렸던 생면부지의 남자는 그 상황에서도 남자와, 남자를 동반한 여자는 피해서 나를 선택했다. (이제 그 사건에 대한 표현을 수정해야겠다. 그건 '묻지마' 폭행이 아니라 여성 선별 폭행이었다.) 지하철에서 갑자기 한 여성에게 폭언을 하며 위협하던 할아버지가, 아마도 거짓말이었겠지만, "남자친구다"라고 하면서 한 남자가 제지하자 얌전해지는 것을 목격한 적도 있다. 이렇듯 남성을 동반하지 않은 여성은 마치 길에 떨어진 물건처럼 주워도 되는, 범죄의 표적이 된다.

서울 강남역 살인사건이 여성들에게 그토록 큰 충격을 준 이유는, 더 이상 여성의 '조심'이 아무런 방어막이 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최대 번화가에서, 쾌적하고 깨끗하고 유동인구가 많은 곳에서, 심지어 '최후의 안전장치'라고 할 수 있는 남자친구까지 동반한 여성이 '잠시' 혼자 있던 사이 살해되었다. 여성들이 이 사건에 대해 이야기할 때 남자친구들이 가장 많이 보인 반응은 "너는 내가 지켜줄게"였지만, 그런 식의 '사적인' 보호는 답이 될 수 없다. 한 성별이 다른 성별에게 일방적으로 안전을 '아웃소싱'해야 하는 사회는 모두에게 문제적이다.

전 남자친구와 현 남자친구의 대결 서사를 예로 들어보자. 이렇게 되면 결국 남성성의 대결이고, 필연적으로 승패가 발생한다. 여성은 의사와 관계없이 승리한 남성의 전리품이 되고 대결에서 패배한 남성은 '안전'을 지켜줄 수 없기 때문에 연애할 권리를 박탈당할 것이다. 정말 기이한 세상이지만, 현재진행형으로 어딘가에서 벌어지는 일이기도 하다.

핵심은 남성을 동반하지 않은 여성도, 여성을 동반하지 않은 남성처럼, 안전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남자친구가 없거나 결혼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치근덕거려도 되는' '누군가 열 번 찍어서 넘기지 않은, 그래서 내가 찍어도 되는 나무'로 표상되는 것이 아니라 한 인간으로 존중받고 살아갈 수 있는 사회여야 한다는 뜻이다. 이는 성대결을 부추기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의미에서 '협력하여' 두 성별 모두 안심하고 자유롭게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자는 간절한 외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