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ffpost Korea kr
블로그

허핑턴포스트 블로거의 분석과 의견이 담긴 생생한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Jeremy Alexander Headshot

게이 남성들이여, 남성성의 유독한 이상형을 미화하지 말라

게시됨: 업데이트됨:
MASCULINITY GAY
LSOphoto via Getty Images
인쇄

나는 바 밖에 서서 출혈을 멈추려고 바를 닦는 더러운 행주를 얼굴에 대고 있다. 내 남자 친구는 내게 경비원과 함께 바 밖에서 기다리면서 클럽을 나가는 사람 중에 나를 공격한 사람이 있으면 경비원들에게 말하라고 했다. 나는 의미가 없다는 걸 알면서도 그러겠다고 했다. 내 얼굴을 두 번 때린 남성이 방금 정문으로 나가는 걸 봤기 때문이었다.

너무 앞서 나갔다. 처음부터 말하겠다.

밤이 끝나가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주문한 술잔도 비어가고 집에 갈 때가 되었다. 나는 남자친구와 내 친구들에게 바 뒤에서 코트를 찾아서 나갈 테니 클럽 앞에서 만나자고 말했다. 그들은 나가면서 알겠다고 했다.

문으로 가는데 그가 나를 멈춰 세웠다. 짧게 말하면, 그는 나가는 나의 팔을 잡았고, 내가 몸을 빼자 억지로 내 머리를 자기 머리 쪽으로 끌어당겨 내가 원하지 않았던 키스를 했다. 내가 그를 밀쳐냈을 때 그는 싸울 생각이었다. 경고도 없이 그는 내 얼굴을 두 번 때리고 나를 호모(faggot)라고 부른 다음 정문으로 달려나갔다. 일어난 일에 내가 대응할 수도 없었을 때 아까 말한 더러운 행주를 든 바텐더가 나를 바 쪽으로 끌고 갔다.

내가 게이 커뮤니티 전체를 대표해 말할 수는 없지만, 우리들 대부분은 과도하게 공격적인 남성이 폭력을 사용해 성적 관계를 맺으려 하는 경험을 살면서 한 번쯤은 겪어봤을 거라 생각한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가? 왜 일부 게이 남성들은 섹스가 성인간의 합의된 행동이 아니라 타인에 대한 단순한 지배의 행동이라고 생각할까?

내 이론은 단순하다. 이 남성들은 자신의 퀴어성에 대한 과잉 보상을 원하는 것이다. 그들은 자신의 퀴어성을 어느 정도 부정적으로 보고 있으며, 자신의 성적 지향 때문에 자신이 당연히 '계집애'같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그에 맞서 싸우고, '형제 bro' 문화를 받아들이고, 운동을 하고, 사진 찍을 때 미소를 짓지 않고, 깊고 낮은 목소리로 말하고, 말할 때 손짓을 하거나 루 폴의 드랙 레이스를 보지 않는다. 섹슈얼리티를 통해 잃어버린 남성성을 '되찾았다'고 느끼기 위한 일이라면 뭐든 하는 것이다.

왜일까? 결국 그들은 게이라는 것을 공공연히 여성적인 것과 동일시하고, 여성성을 약함을 드러내는 것과 동일시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것을 지배할 자격이 있다고 느낀다. 강간 문화는 이성애 커뮤니티에만 있는 게 아니다. 퀴어들의 공간도 침범하며, 퀴어 남성들에게도 여성을 혐오하는 행동을 하게 만든다. 게이 커뮤니티에서 점점 커져가는 'Masc4Masc' 문화에서 일상적으로 드러난다. ('Masc4Masc'는 '남성성을 위한 남성성'을 의미하며, 대놓고 남성적인 남성들에게만 관련되는 사회적 행동을 보이는 남성들을 설명할 때 사용되는 말이다.)

묘하게도 게이 남성들 중 상당수는 '이성애자처럼 행동하는' 것으로 보이고 싶어한다. 게이 라이프스타일 속에서 이성애자 남성의 특성들을 가지고 싶어하는 것이다. 나는 '이성애자처럼 행동하는' 것을 정의하는 가장 큰 특성은 이성애 섹스일 거라 확신하지만, 이 남성들은 그 점을 놓치는 게 아닌가 싶다.

개인적으로는 그라인더에서 메시지를 더 많이 받으려고 자기 표현의 자유를 막는 이유를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그건 아마 난 이미 '계집애'로 분류되어 있고 엘립티컬 말고는 운동 기구 다루는 법도 모르기 때문일 것이다.

과거 세대에서 게이 남성이 이성애자 남성으로 보이고 싶어 했다는 건 이해가 된다. 눈에 띄게 퀴어일 경우 폭력의 대상이 될 가능성이 훨씬 커졌을 것이기 때문이다. 현대에 들어 퀴어에 대한 폭력의 위험이 낮아졌다는 말은 물론 아니다. 이 글의 첫 단락을 다시 읽어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게이 남성들은 한때 생존을 위해 이성애자로 보이는 것을 우상화했고, 지금 그런 특성은 커뮤니티 안에서 자기 혐오를 낳을 뿐이고 아무 기능도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굉장히 남성적인 이상을 가진 게이 남성은 '평화로운 갈등 해결'을 등한시한다는 말이다. '말하는 건 계집애들이나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내가 되어야 하는 모습대로 자라게 해준, 나를 응원해준 부모님과 자랐음을 감사할 뿐이다. 부모님은 내게 액션 피겨가 아닌 인형을 가지고 놀아도 괜찮다고 했고, 내 나이대의 소년이 세일러 문을 좋아하는 게 전적으로 정당하다고 했다. 부모님이 아니었다면 나도 '형제'라는 단어에 아이러니를 담지 않고 사용하고, 나이트클럽에서 사람들을 때렸을지도 모른다.

중요한 것은 이것이다. 게이 남성은 이성애적 가치를 작동하게 만들 수 없다. 친구들아 미안해. 우린 남성과 섹스를 하기 시작했을 때 이미 규칙을 깬 거란다. 이상하니? 이런 규칙들은 오직 백인 이성애자 남성들을 위해서만 만들어진 것 같을 정도이다. 그런데 우리가 우리의 커뮤니티 안에서 이런 낡은 가치들을 왜 복원하려 하는 걸까? 소외된 우리 커뮤니티가 여성들, 유색인종, 트랜스들을 더욱 소외시켜 얻는 게 무엇인가?

이런 '백인 형제' 행동은 내겐 설득력이 없고, 그러는 사람들은 솔직히 그저 멍청해 보일 뿐이다. 이들이 스스로를 규제하며 보이지 않는 존재가 되는 것으로 무엇을 얻는지 나는 영영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다. 이해하고 싶지 않은 건지도 모른다. 부탁이니 다음 번에는 얼굴을 때리지는 말아줘. 컨실러가 다 떨어졌단 말이야.

허핑턴포스트US의 Fellow Gay Men, Stop Glorifying Toxic Ideals Of Masculinity를 번역, 편집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