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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핵 역풍? 노무현을 모욕하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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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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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은 왜 탄핵을 당했을까? 대통령이기 이전에 변호사였던 노무현은, 본인의 발언이 선거법에 위반될 수 있음을 뻔히 알면서, 왜 공개적인 경로로 자신이 속한 신생 여당에 대한 지지를 호소했던 것일까?



물론 일각에서는 그가 정치적 이득을 얻기 위해 일부러 대통령 탄핵을 유도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대통령 노무현의 '선거 개입' 발언은, 그 자체만으로도 '제왕적 대통령제'에 대한 도전이었음을 우리는 너무도 쉽게 간과하는 듯하다. 그는 대통령이 한 사람의 정치인이자 정당인으로서 자신이 소속된 정당의 선거운동에 참여할 수 있는 권리를 지키기 위해 싸웠던 것이다.


우리는 1987년까지, 그리고 어쩌면 그 이후로도, 지속적인 정권의 선거 개입을 목격해왔다. 그러므로 '대통령의 선거 개입'은 무조건적으로 막아야 할 일이라는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졌고, 그에 따라 만들어진 공직선거법이 오늘에 이르고 있다.


하지만 생각해보자. 얼마 전 치러진 미국 대선에서 전례 없이 높은 임기 말 지지율을 자랑하는 오바마 미 대통령은 민주당 후보 힐러리 클린턴의 유세장을 찾아다니며 온갖 종류의 연설을 했다. '미국의 차기 대통령'이라고 클린턴을 소개하고, 상대편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를 비판하면서, 클린턴의 약점인 '인간적 숨결'을 불어넣기 위해 동분서주했던 것이다. 심지어 영부인 미셸 오바마까지 동원해가며 말이다.


2016년 미국 대선의 경우, 권력 기관의 '선거 개입'은 오히려 야당 후보를 돕기 위해 벌어졌다. FBI 국장 제임스 코미가 이른바 '이메일 게이트'에 대한 재조사를 거론하면서 막판 부동층이 투표를 포기하거나 트럼프를 지지하게 되었다. 이것은 클린턴이 근소한 차이로 이길 것이라 예상되었던 모든 경합주를 빼앗기는데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그러므로 대통령제를 택하는 민주 국가의 경우, '선거 개입'은 크게 두 가지로 이루어져 있다. FBI, 경찰, 국가정보원, 기무사, 기타등등 권력기관을 동원하여 이루어지는 그런 '선거 개입'이 첫번째다. 우리의 헌정질서는 바로 그런 '선거 개입'을 절대 용납하지 않으려 한다. 그러나 두 번째의 '선거 개입', 즉 여당의 당원인 대통령이 공개적인 발언 등을 통해 여당의 선거운동을 지원하는 '선거 개입'도 있다.


노무현은 '다른 민주주의'를 표방하고 있었을 뿐, 민주적 헌정 질서 그 자체를 부정하려 들지 않았다.

노무현의 의지는 첫 번째의 '선거 개입'을 철저히 차단하는 대신, 두 번째의 '선거 개입'을 할 수 있는 권리는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는 것이었다. 다시 말해, 노무현은 자신이 탄핵당하게 된 사유 그 자체에 대해 동의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게 바로 노무현 전 대통령이 개인 자격으로, 또 대통령의 신분으로 공직선거법에 대해 헌법소원을 제기했던 이유다. 다른 공무원들과 달리 대통령은 '공직자'이기 이전에 '정치인'이므로 정치적 활동을 금지당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오히려 그런 '발언'에 대한 제약이 존재한다면 대통령은 자신이 가진 '권력'을 활용하여 선거에 개입할 유인동기를 갖게 된다.


이것은 현재 우리가 개선의 대상이라고 생각하는 '제왕적 대통령제'에 정면으로 맞서는 발상이다. 국민에게는 결사의 자유가 있고, 대통령 또한 국민이며, 따라서 선출직 공무원이기 이전에 한 사람의 국민으로서 정치적 표현의 자유를 빼앗겨서는 안 된다는 확고한 헌법적 논리에 기반하고 있다. 게다가 한국을 제외한 수많은 민주주의 국가들은 대통령의 선거 개입 '발언'을 허용한다. 다만 권력기관을 동원한 음성적 '개입'을 철저히 금지할 뿐이다. 왜 대한민국에서는 그러지 말아야 하는가?


노무현의 선거법 위반은 이렇듯 그 자체가 헌법적, 더 나아가 민주주의에 대한 가치판단적 요소를 포함하고 있었다. 설령 노무현의 생각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이 자체가 논쟁할 만한 사안이라는 것만은 수긍하지 않을 수 없다. 노무현은 '다른 민주주의'를 표방하고 있었을 뿐, 민주적 헌정 질서 그 자체를 부정하려 들지 않았다.


당시의 국민들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것은 '어떤 민주주의인가'의 문제지, 민주주의 그 자체를 부정하는 사안이 아니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노무현에 대한 탄핵소추안은 발의될 때부터 찬성보다 반대가 더 많았던 것이다. 탄핵안이 발의된 2004년 3월 9일 당시의 신문을 인용해보자. "조선일보가 한국갤럽에 의뢰해 9일저녁 전국 성인 714명을 상대로 전화 조사한 결과 탄핵반대가 53.9%, 찬성이 27.8%였다."(링크)


심지어 국민들은 그 탄핵안이 통과될 것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같은 기사를 더 읽어보자. "국회 본회의에서 탄핵소추안의 통과를 전망하는 답변자는 24.4%이며 부결을 전망하는 답변자는 50.3%였다." 왜냐하면 애초에 대통령을 탄핵할 만한 '깜'이 되지 않는다는 게 누가 봐도 명확한 경우였기 때문이다. 다만 "노 대통령이 자신의 발언에 대해 사과해야 한다는 의견은 60.8%이며 사과할 필요가 없다는 의견은 30.1%로 조사됐다." 그는 사과하지 않았고, 발의된 탄핵안은 국회에서 통과되어 헌재로 향하게 되었다.


박근혜-최순실-우병우 국정 농단 사건과, 노무현의 '선거 개입' 논란이, 당신들의 눈에는 동등하게 보이는가?



탄핵 불가론 등을 운운하는 야권 내 주류 세력과 그들을 지지하는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 박근혜-최순실-우병우 국정 농단 사건과, 노무현의 '선거 개입' 논란이, 당신들의 눈에는 동등하게 보이는가?


전자는 두말할 나위 없는 국정 농단이다. 최대한 빨리 그들을 처벌하고 대통령의 권한을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후계자에게 합법적으로 넘겨야 하는 사안이다. 반면 후자는 '지금과는 다른 민주주의'를 꿈꾸던 이상주의자가 대통령 당선 이후 새 당을 만들더니 기존의 민주당을 헌신짝처럼 버리고 그 외 보수 세력을 자극하면서 벌어진 사건이었다. 특히 구 민주당의 열렬한 지지자들에게 대북송금특검에 뒤이은 열린우리당 창당과 대통령의 입당은 굉장히 분노할 수밖에 없는 사안이지만, 그것은 어쨌건 최순실-우병우-김기춘 일당의 국정 농단과는 다른 차원의 문제라는 말이다.


실제로 국민들은 현임 대통령의 국정 농단을 매우 심각한 문제로 바라보고 있다. 정치권 내부의 갈등이 오작동하고 불거졌던 2004년의 경우와 달리, 현재 국민들의 60퍼센트 가량은 박근혜 대통령이 사임하거나 탄핵당해야 한다는 의견을 표출하고 있는 것이다. 탈당하고 여야 합의 총리에 국정을 이양해야 한다는 의견은 18.4퍼센트에 지나지 않으며, 박근혜 대통령이나 김병준 국무총리 임명자가 중심에 서서 국정을 정상화해야 한다는 사람들은 14.1%에 불과하다.


한편 박근혜 대통령이 제1차 대국민 사과 성명을 발표했던 10월 25일 조사에서는 '자진 사퇴 및 탄핵' 의견이 42.3%를 기록했고, 1주일 후인 최순실씨가 긴급 체포되어 검찰 조사를 받았던 11월 2일 조사에서는 55.3%로 10%p 이상 더 늘어난 데 이어, 역시 1주일 후인 이번 9일 조사에서는 60.4%를 기록하며 25일 조사 대비 20%p 가까이 '자신 사퇴 및 탄핵' 여론이 더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링크)

국민들은 '이 탄핵'과 '저 탄핵'이 다르다는 걸 분명히 알고 있다.


놀랍게도, '이 탄핵'과 '저 탄핵'이 뭐가 다른지, 왜 다를 수밖에 없는지, 생각해보지도 않은 채 그저 '탄핵 역풍'만 걱정하는 사람들이 있다. 더 놀라운 것은 그들이 다름 아닌 노무현의 이름과 이상을 내걸고 정치를 하는 정치인들과 그 정치인의 지지자들이라는 것이다. 노무현은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다가 탄핵을 당했는데, 그의 유지를 받든다는 세력은 누가 봐도 잘못된 짓을 하다가 탄핵을 당하게 생긴 악당들과 노무현을 등치시킨다. 그들에게 '이 탄핵'이건 '저 탄핵'이건 중요한 건 그 내용이 아니라 그저 '탄핵 역풍'을 안 맞는 것뿐이라는 뜻이다.


국민들은 '이 탄핵'과 '저 탄핵'이 다르다는 걸 분명히 알고 있다. 과거의 그것에는 정당성이 없었지만, 현재의 국정 마비는 대통령 탄핵이라는 최후의 카드를 꺼내는 한이 있더라도 해결되어야 할 문제라고 생각한다. 양자를 혼동하는 세력은 오직, 과거에 '탄핵 역풍'으로 재미를 본 바 있는 사람들뿐이다. 이 역설은 너무도 받아들이기에 괴롭다. 노무현의 유지를 받들겠다는 사람들이, 노무현을 박근혜와 같은 식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당신들에게 2004년의 탄핵은 '떡고물'이 떨어지는 정치적 이벤트에 지나지 않았을지 모르겠지만, 노무현에게 그것은 끝까지 '쪽팔려'가며 싸워야 할 어떤 민주주의의 싸움이었다. 자신의 이름을 팔아 정치 생명을 이어가는 세력이 본인의 이상을 이토록 진흙탕에 처박고 있는 모습을 본다면 과연 그는 어떻게 생각할까.


'이 탄핵'과 '저 탄핵'은 분명히 다르다. '탄핵 역풍'을 걱정하며 똑같은 범주로 싸잡을 사안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의 뜻을 받든다는 이들이 더 이상 노무현 전 대통령을 모욕하지 않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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