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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분권개헌에 반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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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1월 1일 국회 시정 연설에서 지방분권개헌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수도권과 지방이 함께 발전할 수 있도록 지방분권과 자치를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내년 지방선거에 개헌 국민투표를 함께 하자는 것이 그의 결론이었다.

나는 지방분권개헌에 반대한다. 정확히 말하자면, 대체 무엇을 위해 어떤 권한을 어떻게 지방에 넘겨줄지, 진지한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 과정에서 지자체가 현재 가지고 있는 권한 중 일부는 중앙정부가 회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구체적인 청사진 없이 덜컥 지방분권개헌을 약속하는 것은 무책임한 정치적 행보로 읽지 않을 수 없다.

이제 우리는 지역 사회가 위축되고 소멸하는 현실을 현실로 받아들이고, 실체 없는 이상을 앞세워 지방자치단체를 통해 예산이 새어나가는 것을 경계해야 할 시점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대한민국이라는 하나의 '국가'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 고민하고 전략을 수립하며 추진하는 백년지대계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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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권은 정 반대의 방향으로 국사를 처리하고 있다. 가령 탈원전 정책을 생각해보자. 대한민국이라는 하나의 국가 단위를 놓고 본다면 탈원전이란 성립할 수 없는 정책이다. 우리는 사실상의 섬나라에 살고 있으며, 석유도 LNG 가스도 나오지 않는다. 바람의 질도 형편없고 국토의 70%가 산이다.

국가 단위의 에너지 정책을 놓고 볼 때 최선의 선택지는 원전을 짓고 기술을 개발하여 더 안전하고 풍부한 에너지를 확보하는 것이다. 반면 개별적인 지자체의 시선에서 보자면 탈원전이 좋다. 위험하지도 않지만 아무튼 다들 싫어하는 기피시설인 원전은 어딘가로 쫓아내버리고, 우리 동네는 소위 '꿀 빠는 지역'으로 남아있는 것이 최선일테니 말이다.

문재인 정권의 탈원전 정책은 바로 저런 식의 지역이기주의를 적극 부추기고 그에 호응하는 것이었다. 실제로는 원자력만큼 안전한 전력 공급원이 또 없다.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의 풍요와 발전을 위해서는 마땅히 필요하다. 하지만 정부는 불편한 짐을 떠안고 있다고 느끼는 지역의 주민들에게 이런 진실을 설득하려는 생각이 전혀 없었다.

이것은 대통령의 사고방식이 아니다. 일개 시장이나 도지사의 눈으로 국가 에너지 정책을 바라보고 실천에 옮기고 있었던 것이다.

한전공대의 건설과 유치에 대한 논의도 그런 식이다. 과연 지금 한국전력이라는 공기업이 대학을 추가로 건설해야 할 이유가 있는가? 대학에 들어갈 학생들의 숫자는 날로 줄어들고 있고, 멀쩡히 있는 대학들도 정원을 줄이는 이 판국에 말이다. 정상적인 대통령의 시각으로, 나라 전체의 살림을 바라보며 미래를 대비하는 시각에서라면, 굳이 지금 대학을 더 지을 이유를 찾기란 어렵다. 하지만 일개 지자체장의 눈으로 보자면 무슨 상관이랴? 일단 우리 지역에 번듯한 건물 가진 대학 하나 더 들어오는 게 급선무다.

정작 지자체의 운영을 보면 한숨만 나올 지경이다. 풍기인삼축제조직위원회는 지난 10월 20일, 2.5미터 크기의 인삼 조형물을 공개했다. 그런데 그 실상은 이런 꼴이었다.

축제의 주제를 나타내는 조형물로 축제장 입구에 들어서면 바로 보이는 남원천에 세워졌다. 문제는 인삼 조형물 중간 부분에 붉은 색을 띤 남자의 성기 모형이 부착돼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모터장치를 해 성기 모형이 아래위로 계속 움직인다. 인삼 조형물에는 '인삼의 힘!'이라고 적힌 어깨띠가 걸쳐져 있다. 풍기인삼이 정력에 좋다는 뜻을 담기 위해 조직위가 설치했다. (이용호, "풍기인삼축제? 풍기문란축제!", 한국일보, 2017년 10월 23일.)

지자체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돈을 펑펑 쓰고 있다. 강원도 양구군에는 세계에서 가장 큰 해시계라는 것이 있는데 그것을 만들고 기네스북에 등재하기 위해 1억1천6백만원을 소진했다. 울산시 울주군의 초대형 옹기에는 9천만원, 충북 영동군의 초대형 북에는 2억3천만원이 들었다. 지자체장이 자신의 업적으로 삼으려고 했거나, 알량한 '관광 자원'을 확보하기 위해 만든 물건들일 것이다. (참고: 윤영현, "'세계 최대'가 뭐길래...지자체 '억' 단위 세금 펑펑", SBS, 2017년 10월 31일.)

이건 반드시 '지방'만의 문제가 아니다.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는 높이 5미터에 달하는 '강남스타일 말춤 조형물'이 있다. 2016년 신연희 강남구청장의 주도 하에 만들어진 것이다. 풍기인삼처럼 문란하지는 않지만 제작비는 총 4억원 가량 들었다고 알려져 있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여선웅 강남구의회 의원은 이날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당시 싸이측에서 동상 제작에 부정적이어서 완전한 말춤 동상을 제작할 수 없었다"며 "정상적이면 포기해야 되는데 기어코 손목이라도 만들어 버린 것이다"라고 조형물 관련 뒷얘기를 전했다"(김남중, "싸이, 코엑스 '강남스타일' 조형물에 "과하다"", 국민일보, 2017년 7월 24일)고 한다.

모든 사람에게는 자신의 일을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할 권리가 있다. 그 누구에게도 양도하거나 유보될 수 없는 자유의 이상이다. 하지만 그러한 자유가 실현되기 위해서는 민주주의가 법치주의의 기반 위에서 작동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타인의 자의적 판단이나 폭력에 우리의 자유가 훼손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우리는 근대적인 국가 시스템을 만들어 그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누려야 할 자유와 권리의 확충은 지자체에 수많은 예산을 퍼주고 그것을 낭비하건 말건 수수방관하며, 큰 필요성이 있건 없건 아무 축제나 벌이고 대학을 짓겠다고 하는 그런 일과, 아무 상관이 없다. 오히려 그런 과정에서 국가 전체의 역량이 훼손되기 시작하면 우리의 자유와 풍요는 훼손된다. 지방자치의 이상 하에 우리 개인들의 삶이 침해당하는 역설이 발생하는 것이다.

자치경찰제에 대해서도 비판적으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소위 '섬마을 주민 집단 성폭행 사건'에서 피해자인 교사는 낙도의 경찰이 아니라, 그 경찰을 관할하는 목포의 지서까지 찾아가 신고를 했다. 왜일까? '섬마을 공동체'와 경찰은 서로 얼굴을 보고 지내는 이웃이기 때문에 성폭력을 신고해봐야 소용이 없을 뿐 아니라 오히려 보복을 당할 우려가 크다는 판단이었다. 공권력은 주민과 친근해야 하지만, 유착해서는 안 된다. 한국의 자치경찰제가 과연 지역 토호와의 거리두기에 성공할 수 있을까? 문재인 정권 내부자들은 그렇게 생각하나?

나는 모든 지방자치에 반대하는 것이 아니다. 한국의 지방자치는 줄어드는 인구와 고령화에 대응해 훨씬 밀도 높고 '스마트'한 방향으로 추진될 필요가 있다. 재정적으로 자립도 어렵고 산업 기반도 허물어진 가운데, 지자체들이 궁여지책으로 조잡하고 흉측한 조형물을 만들고 축제를 벌이며 대학 유치에나 목숨을 걸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런데 대통령과 중앙정부가 제동을 걸기는커녕 도리어 지방분권개헌을 덜컥 약속해버리는 오늘날의 모습은 비판받아야 마땅하다는 말이다.

지자체와 국가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국가는 폭력을 독점한다. 예산을 최종적으로 책임진다. 지자체는 내부의 범죄나 소요를 통제하지 못하면 군대에 도움을 요청할 수 있다. 하지만 국가는 외적으로부터의 침입에 스스로 맞서야 한다. 지자체는 남자 성기가 껄떡거리는 인삼 조형물 수천 개를 만들고 파산해도 중앙정부에 재정적 도움을 요청할 수 있다. 반면 중앙정부가 재정적으로 파산하면 그 여파는 그렇게 쉽게 해결되지 않는다.

요컨대 권한과 책임의 범주가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다. 나라를 운영하는 것은 지자체적 시각으로 이루어져서는 안 된다. 지자체는 내후년의 산업 동향과 '미래 먹거리'를 고민할 필요가 없다. 다른 지자체에게 돌아갈 몫을 어떻게 우리 지자체가 확보하느냐가 더 중요한 관건이다. 하지만 국가는 다르다. 국가의 경영은 미래를 바라보며 이루어져야 하고, 때로는 국민이 거부감을 드러내는 일도 추진하며 동의를 얻어나가야 한다. 요컨대, 대승적 관점을 견지해야 마땅하다. 언제나 주민 행복만을 위해 오직 그것만을 원칙으로 삼아도 큰 탈이 없는 지자체와는 완전히 다르다는 말이다.

이게 나라냐? 지난해 촛불시위에서 많이 들려왔던 구호다. 당시 시위의 참여자들은 그 시위를 통해 '나라다운 나라'가 이룩될 수 있기를 희망했다. 그런데 현재의 집권 세력은 '나라다운 나라'를 '촛불특별시'와 혼동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 대한민국은 국가다. 지자체의 연맹이 아니다. 청와대가 지자체의 눈으로 국가를 바라보지 말고, 국가의 눈으로 지자체를 바라보면서, 온 국민을 위한 미래의 계획을 수립할 것을 간곡히 호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