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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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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9혁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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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이 파면되었다. 국정농단을 일삼던 부정하고도 부패한 권력자가 국민의 손에 의해 축출되었다. 바야흐로 정의롭고 올바른 나라를 새로 건설하자는 국민의 요청과 욕구가 실현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맞게 되었다.

우리는 역사적으로 비슷한 경험을 한 일이 있다. 바로 1960년에 있었던 4·19혁명이다. 그때도 독재를 일삼고, 부정하며 부패한 권력자가 국민에 의해 쫓겨났다. 우리 국민은 이겼다고 생각했다. 대통령제를 채택했던 헌법을 고쳐 내각책임제 정부제도를 채택했다. 새롭게 선거를 실시했다. 민주당 정부가 정권을 잡았다. 이승만 독재 체제를 함께했던 자유당은 속절없이 몰락했다.

새로운 세상이 올 줄 알았다. 하지만 국민들의 그러한 여망은 5·16 군사반란으로 그 뜻을 이루지 못했다. 1960년에 염원했던 국민들의 올바른 세상 건설의 꿈을 좌절시킨 것은 물론 군사반란세력의 책임이다. 하지만 그러한 반란행위가 성공하는 데 있어 빌미가 될 만한 사정은 없었을까? 1960년의 내각책임제 개헌. 그것은 과연 올바른 방향이었을까?

1960년의 우리 국민들은 이승만 독재 체제의 폐단을 겪으면서 그것이 대통령제에서 나오는 잘못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대통령제를 버리고 내각책임제를 선택했다. 하지만 4·19혁명의 발생 원인을 대통령제에서 찾는 것은 섣부른 판단이 아니었을까? 이승만과 그를 옹위했던, 헌법상의 국민주권주의를 무시하고 독단적으로 나라를 이끌었던 세력이 잘못이지, 헌법에 문제가 있었던 것은 아니지 않을까?

국정농단의 주범이 파면된 2017년. 현행 헌법이 제왕적 대통령제에 해당한다고 주장하면서 내각책임제로의 개헌을 주장하는 자들이 있다(그들은 '분권형 대통령제'라는 명칭을 사용하고 있으나, 그 실질이 내각책임제임은 대부분의 국민들이 꿰뚫고 있다). 그야말로 오진이다. 문제는 대통령제에 있는 것이 아니다. 바로 헌법을 파괴하고 국가를 사유화한 반헌법적인 세력들이 문제인 것이다. 지금 현재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헌법상의 권력 구조를 고치는 것이 아니라, 헌법을 무시한 자들을 솎아내는 것이다. 제도의 문제가 아니라는 말이다.

심지어 내각책임제 개헌을 주장하는 세력에는 박근혜의 헌법파괴행위에 동조했던, 아니 지금도 옹호하는 무리들까지 포함되어 있다. 이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자신들이 저질렀던 반민주적 행위를 제도 탓으로 돌려 자신들의 잘못을 감추겠다는 속셈 아니겠는가?

제도의 잘못이 아니다. 사람이 문제인 것이다. 국민으로부터 부여받은 신임을 배반한, 헌법과 법률을 무시하고 자의적으로 권력을 사용한 바로 그자들이 나라를 망친 근원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도를 바꾸자고 하는 자들. 그들이 문제다.

우리는 우리의 대표를 우리 손으로 직접 뽑기를 원한다. 그렇게 직접 뽑은 대표마저도 우리의 믿음을 저버리면 우리는 가차 없이 그 자리에서 끌어내기를 원한다. 분권형 대통령제이든, 내각책임제이든 그 이름을 어떻게 포장하더라도 이런 원칙에서 어긋나는 제도라면 우리는 단연코 거부한다. 국민주권주의를 무시하고 자기들끼리 권력을 나누려는 자들. 그들은 1960년의 자유당에 다름 아니다.

비록 군사반란이 있기는 했지만, 우리는 1960년의 실수를 다시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 같은 잘못을 반복하기에는 우리의 삶이,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환경이 상당히 엄중하다. 문제를 호도하려는 자들에게 속아서는 안 된다. 그래야 우리의 후배들에게, 자손들에게 떳떳하고 자랑스럽게 이 나라를 물려줄 수 있지 않겠는가?

* 이 글은 한겨레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