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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균 위원장에게 보내는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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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십니까. 한상균 위원장님.

작년 2월, 쌍용자동차 고공 농성 때 한진 형님들과 함께 '장작연대'를 가서 뵙고는 이번에 두 번째 인사를 드립니다. 머리털 나고 처음으로 옥중에 계신 분께 편지를 보내는데 기분이 묘하고 약간은 설레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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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 : 김정근

저는 부산에서 다큐멘터리 만들고 있는 올해 서른 다섯 살 먹은 김정근이라고 합니다. 2010년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발표 때부터 5년 가량 촬영한 <그림자들의 섬>이라는 영화를 만들었고 다가오는 8월 25일 개봉을 앞두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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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한위원장님을 처음 뵌 건 2009년 있었던 쌍용 옥쇄파업을 다룬 태준식 감독님의 <당신과 나의 전쟁>에서 입니다. 당시에도 여전한 편견은 위원장은 너무나 강직한 사람이라 그를 따르는 사람들은 부대낄 수 밖에 없는 '투쟁의 결단'을 내리는 사람으로만 비쳤습니다. 하지만 쌍차 파업이 길어지고 위원장님이 구속되고, 3년 수감 생활 이후 다시금 철탑에서 추운 겨울을 악착같이 버틴 고공농성과 그 뒤 민주노총 위원장이 되시는 과정을 지켜보며 그런 강직함이 결코 과한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니까 이 엄혹한 시절에 민주노총이라는 조직에 그것마저 없다면 우리는 어떤 희망을 들추며 살아야 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던 거죠.

서두가 길었습니다. 다큐멘터리나 찍는다는 놈이 뭐 한다고 위원장에게 뻘쭘함을 견디며 편지를 쓰나 의구심이 드실 것 같은데요... 저는 공고를 그만둔 '사짜 공돌이'입니다. 더는 나빠질 수 없는 집안 사정과 밀링, 선반을 하루 종일 만지며 쇠를 깎아야 하는 둔탁한 공돌이 생활이 싫어 학교를 때려 친 전형적인 철없는 케이스입니다.

공고를 그만두고는 대학교 앞 조그만 인쇄소에서 시급 1,700원으로 일을 시작하며 틈틈이 책을 읽었습니다. 그 중에 '전태일 평전'도 있었습니다. 버젓하게 존재하는 근로기준법을 지키지 않는 세상에 대한 청년 전태일의 저항은 어린 가슴에 불을 질렀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제가 등지고 나온 공돌이 생활이 어쩌면 세상을 떠받치는 가장 중요한 일은 아닌가 제 마음 한 켠에서는 반성이 일었습니다. 그리고 몸을 써 일하는 노동자들에 대해 일종의 경외심 같은 게 생겼던 것 같습니다. 배를 만들고 집을 짓고 자동차를 만들고 책을 만드는... 노동자가 세상의 모든 것을 만든다는 너무나도 당연한 믿음과 확신이 그제서야 생겼던 거죠. 이후 좀 더 많은 돈을 벌어야 하는 상황이라 사상공단 신발 공장에서 5년 가량 일을 하며 노동자들의 삶과 생활 속 철학이란 무엇인지도 얕게나마 배울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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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 노순택 사진작가

그런 와중에 2003년 한진중공업 김주익, 곽재규 열사의 장례식에 가게 되었습니다. 아버지를 보내는 편지를 읽던 중학생 딸, 미안함에 고개를 들지 못하던 노동자들 그리고 장대한 추도사를 뿜어내는 김진숙 지도위원까지... 언젠가 한진중공업에 다시금 저런 일이 일어 난다면 무언가 할 수 있는 일을 하자는 결심 같은 게 생겼던 것 같습니다.

시간은 흘렀고 제 마음도 깎여 가던 2009년, 쌍용자동차 옥쇄 파업이 있었습니다. 당시 살인적인 진압장면과 수도나 전기가 끊겨 힘겹게 견디던 노동자들의 영상을 접하고는 만약 한진도 쌍용 같은 상황에 내몰리면 2003년 김주익 열사 투쟁 당시에는 못했지만 이번에야 말로 열심히 기록하고 공유해서 사태 해결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이 번뜩 들었습니다. 흐르는 일상 속에 무뎌진 마음을 다시금 추스리게 되었습니다. 2010년, 기다렸다는 듯 한진중공업에서 다시금 정리해고 발표가 있었습니다. 부산시청 앞 정리해고 반대 집회에 주저 없이 달려 나갔습니다. 그렇게 한진 형님들과 인연이 시작되었고 희망버스를 거쳐 1년의 복직대기자 생활 그리고 2012년 대선 이틀 뒤, 처음으로 스스로 세상을 등진 노동자, 강서형 투쟁까지 기록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길게 제 개인사를 말씀 드린 이유는 아직도 여전히 노동의 가치에 천착하고 그 안에서 세상에 대한 희망을 보려는 많은 이들이 있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서 입니다. 그리고 한 위원장님의 결단과 희생이 어쩌면 낡고 철 지난 유행가 같아 보이는 '노동'이라는 단어에 새로운 힘을 불어 넣고 있다는 얘기를 드리고 싶기도 하고요.

제가 만든 <그림자들의 섬>도 그런 노동의 가치에 중심을 둔 영화입니다. 김진숙 지도위원부터 박성호 전 지회장을 거쳐 이제 막 집행부가 된 희찬이 형님까지 30대부터 50대에 이르는 각기 다른 한진중공업의 역사를 경험한 사람들이 어쩌면 그렇게도 한결같이 순박한 노동자들이었는가 그리고 회사와 정부는 어떻게 이들을 투사로 만들어 갔는가를 보여주려 합니다. 자부하건데 이들이 한진중공업에 처음 입사하던 순간부터 86년 민주노조를 만들기 위해 대의원 선거에 나갔던 순간, 그리고 먼저 간 최강서 열사의 투쟁까지 꼼꼼하고 세심하게 만들어내려 노력했습니다. 나아가 뼈아픈 얘기지만 2003년 김주익 열사의 크레인 농성 이후 찾아온 조선업 호황시기에 비정규직들과 하청 노동자들의 처우개선을 위해 노력하지 못한 정규직 노동자들의 반성을 조금이나마 이끌어 내려 노력했습니다. 더불어 복수노조가 생긴 이후 어떤 마음으로 투쟁을 이어가고 복수노조로 넘어간 동지들을 바라봐야 하는가까지 30년 노동조합을 일궈온 노동자들의 지혜와 회한을 엿볼 수 있는 영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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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 시네마달

그렇기에 지금도 어딘가에서 묵묵히 일만하다 이제서야 자신의 '그림자'를 마주한 많은 이들이 이 영화를 봤으면 합니다. 또 각자의 현장에서 지치고 힘든 민주노총 많은 조합원들이 꼭 이 영화를 함께 봐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구의역 김군의 사고부터 삼성 서비스 노동자들의 죽음 그리고 조선 업종에 몰아칠 구조조정까지 점차 노동현실이 어려워지는 가운데 한진중공업 노동자들의 절반의 승리와 뼈아픈 패배를 통해 다시금 새롭게 희망을 일궈갈 실마리를 오늘 여기를 힘겹게 견디는 우리가 반드시 찾았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봅니다. 건방지게 들리시겠지만 그런 반성의 시간을 견디면 노동자들은 반드시 승리한다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다시금 많은 노동자들의 제일 앞에서 호랑이처럼 싸워주실 한상균 위원장님의 빠른 석방을 바랍니다. 여전히 노동의 가치를 믿는 많은 이들의 목소리를 다시금 대변해 주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저희 영화 <그림자들의 섬>을 통해 일하는 모든 그림자들에 조금이나마 해가 비추기를 희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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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 정택용 사진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