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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의 사과와 보상, 무엇이 문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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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 삼성과 가족대책위원회, 반올림은 '삼성반도체 직업병 문제 해결을 위한 교섭'의 세가지 의제 중, '재발방지대책'에 관하여 합의했다.

'옴부즈만 위원회'의 도입을 골자로 하는 내용이었다. 이번 합의로 독립된 외부 전문가 그룹인 '옴부즈만 위원회'는 장기간 삼성반도체 공장의 유해인자 관리실태와 건강관리체계를 점검하고, 작업환경의 건강영향에 역학조사를 실시하여 그 결과를 공개하여야 한다. 그 내용을 기초로 옴부즈만 위원회가 개선방안을 제시하면, 삼성전자는 그 이행상황에 대한 평가도 받아야 한다.

비로소 삼성반도체 공장의 안전보건 상황에 대한 사회적 감시체계가 마련된 것이다. 9년간의 반올림 활동, 3년간의 교섭, 특히 최근 100일간의 노숙농성이 이루어낸 값진 성과다.

그러나 해결해야 할 세가지 문제 중 하나를 이루었을 뿐이다. '사과', '보상'의 문제는 여전히 남아있다.

그럼에도 삼성은 12일 합의 직후, 자사 블로그에 이러한 글을 올렸다.

"조정권고안의 기준과 원칙을 기초로 보상과 사과가 진행된 데 이어 예방문제에 대해서까지 완전히 합의에 이르렀다"

그에 발맞추듯, 다수의 언론들도 이번 합의로 모든 문제가 다 해결된 것처럼 여론몰이를 한다. 명백한 거짓이고 기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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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삼성이 내세우는 '사과'와 '보상'이 이루어진 과정을 보자.

2014년 12월 교섭의 세 주체인 삼성, 가족대책위원회(6명의 직업병 피해가족 모임), 반올림은 이 문제의 해결을 위한 조정절차 도입에 찬성했다. 삼성과 가족대책위가 일방적으로 구성하고 강행한 '조정위원회'를 반올림도 최종적으로 수락한 것이었다. 조정위원회는 2015년 1월 세 주체로부터 제안서를 제출받은 후, 오랜 숙고 기간 끝에 2015년 7월 '조정권고안'을 발표했다.

그러자 삼성과 가족대책위는 돌연 "조정 보류"를 요청하며, 추후 논의를 거부하였다. 그리고는 2015년 9월 삼성은 자체적인 보상절차를 강행했고, 그 절차에 따라 보상합의를 한 피해자들에게 개별적으로 사과문을 발송했다.

이를 이유로 삼성은 "사과와 보상도 마무리 되었다"고 주장하는 것이고 가족대책위 역시 "(삼성전자 백혈병 논란과 관련해)이제 더 이상 합의가 나올 게 없다"고 잘라 말한 것이다.

그런데 위 경과만을 보아도 삼성의 '사과', '보상'은 명백한 교섭(조정) 약속 위반이다. 조정위원회가 발표한 조정권고안에는 권고안을 토대로한 추후 논의 절차에 대해서도 명시되어 있는데, 삼성은 이를 일방적으로 거부했다. 그러면서 교섭 상대방인 반올림과는 어떠한 논의도 거치지 않은 사과와 보상을 강행했다. 반올림에 대화 제안을 먼저 한 것도, 조정위원회 도입을 강행한 것도 모두 삼성이었는데 말이다.

삼성은 이와 같은 약속 파기에 대한 부담 때문인지, 지금의 '사과'와 '보상'이 "조정권고안에 따른 것"이라는 점을 거듭 강조하고 있다. 과연 그럴까.

'사과'부터 보자.

삼성전자는 자체 보상절차에 합의한 피해자들에게 다음과 같은 내용의 사과문을 개별적으로 전달하고 있다.

저희 삼성전자는 많은 분들의 노고와 헌신에 힘입어 세계적 기업으로 성장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어려운 병에 걸려 고통을 겪은 분들이 계십니다. 안타깝고 가슴 아픈 일입니다.

또한 이런 아픔을 헤아리는데 소홀한 부분이 있었습니다.
진작 이 문제를 해결했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습니다.

진심으로 사과 드립니다.

크게 두 가지 문제점을 꼽을 수 있다. 첫째, 내용이 없다. 무릇 모든 사과가 최소한의 의미라도 가지려면 무엇을 잘못하였는지 구체적으로 인정하는 내용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삼성은 그저 "아픔을 헤아리는 데 소홀하였다"는 공허하기 짝이 없는, 직업병 문제와 관련하여 사실상 아무런 잘못도 인정하지 않는 말을 하고 있을 뿐이다.

참고로 반올림은 2015년 1월 조정위원회에 제출한 제안서를 통해, 삼성이 세가지 잘못("부실한 안전관리", "업무환경 관련 자료의 은폐ㆍ왜곡 등 산재인정 방해" "직업병 문제제기에 대한 인권침해")을 인정하고 사과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었다. 물론 각각의 잘못에 대한 구체적인 근거자료들을 제시하기도 했다.

둘째, 조정권고안의 내용에 반한다. 조정권고안은 '사과'에 대하여도 다음과 같이 구체적인 내용과 방법을 제시하였다.

제13조(노동건강인권 선언)
삼성전자(주) 반도체 및 LCD 사업장에서 백혈병 등 질환 발병과 관련한 문제해결을 도모하면서 교섭 당사자 모두는 노동을 제공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노동건강권이라는 기본적 인권을 보장하는 것을 통해 그들의 존엄과 가치가 실현될 수 있다는 점에 인식을 같이 하고, 이를 공동으로 천명하는 취지의 노동건강인권을 선언하기로 한다.

제14조(사과의 내용)
삼성전자(주)는 반도체 및 LCD 사업장에서 반도체 및 LCD 생산 등 작업공정, 관련 시설의 설치ㆍ정비 및 수리 등 업무에 종사한 근로자에게 백혈병 등 질환이 발병한 것과 관련한 문제가 근로자 측에서 일찍이 제기되었음에도 과거 위 반도체 등 사업장에 내재한 건강유해인자로 인한 위험에 대해 충분한 관리가 이루어지지 못하였던 점을 인정하고 이들이 겪고 있는 불행에 대해 진지한 배려와 조속한 해결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지 못한 나머지 이들의 고통을 연장시키는 결과를 낳은 점에 대해서 근로자 본인과 그 가족들에게 진정성 있는 사과의 뜻을 표시하기로 한다.

제15조(사과의 방식)
① 삼성전자(주)의 대표이사가 기자회견의 방식으로 제14조에 정한 사과내용이 담긴 사과문을 낭독한다.
② 삼성전자(주)는 향후 공익법인에서 보상대상자로서 적격이 있다고 판정받은 사람들에게 삼성전자(주) 대표이사 명의로 된 서신의 형식으로 사과문을 개별적으로 전달한다.

그런데 지금 삼성의 사과는 그 내용과 방법 면에서 이러한 권고안을 전혀 반영하고 있지 않다.

다음으로 '보상'을 보자.

삼성은 2015년 9월 14일 배포한 보도자료를 통해 '보상위원회' 발족을 알렸다. 삼성이 직접 구성한 보상위원회가 보상기준 마련, 보상대상 심사 등 "보상의 전 과정을 총괄한다"는 내용이었다. 며칠 후 삼성은 자사 블로그에 "삼성전자ㆍ협력사 퇴직자 보상을 실시합니다"라고 공지하였고, 별도 개설한 <삼성전자ㆍ협력사 퇴직자 보상 접수창구> 사이트를 통해 보상신청을 받았을 뿐 아니라, 일부 피해자들에게 직접 연락 하여 보상신청을 권유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가해자인 삼성이 보상기준 마련, 보상대상 심사, 보상액 산정까지 직접 하겠다는 발상 자체가 기막힌 일이다. 그 밖에도 다섯 가지 문제 정도를 꼽을 수 있다.

첫째, 보상신청 기한을 2015년 12월 31일까지로 정하여 피해자들을 압박했다. 피해자들 중 상당수는 당장의 생계비와 치료비가 절박한 분들이다. 이들은 지금의 보상절차가 매우 부당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삼성이 일방적으로 정한 기한에 내몰려 보상신청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삼성은 "보상 신청자는 모두 150명이 넘고, 이분들 가운데 100명 이상이 보상에 합의했다."고 자랑하듯이 발표하며, 마치 보상절차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는 것처럼 홍보한다. 또 다른 진실 은폐이고 왜곡이다.

둘째, 보상이 이루어지는 모든 과정이 은폐되어 있다.
말 그대로 밀실보상이다. 실제 보상신청자가 몇 명이고 그중 몇이 어떠한 보상을 받았는지가, 오로지 삼성의 일방적인 발표에 의존하여 알려지고 있을 뿐이다.

삼성이 피해자에게 보상신청 관련서류로서 일종의 '비밀유지각서'를 발송한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그 문서에는 "합의사실을 외부에 알릴 경우, 보상금액을 반환해야 한다"는 내용이 명시되어 있었다. 또한 피해자가 보상신청을 하려면 '보상 관련 정보를 회사의 승낙 없이 제3자에게 제공할 수 없으며, 만약 이를 어길 경우 회사로부터 제재를 받을 수 있다(약관 제12조 9항 7호)'는 약관 조항에 동의를 해야 한다.

셋째, 실제 보상이 이루어지는 절차가 매우 부당하다. 피해자가 보상신청을 하면, 삼성 측 직원 한두 명이 직접 피해자들을 찾아가 일방적으로 산정한 금액을 제시한다. 피해자가 구체적인 산정기준을 물어도 "내부 기준에 따른 것" 혹은 "조정권고안에 따른 것", "이의를 제기해도 달라지지 않는다"고 답할 뿐이다.

피해자가 그 금액이라도 지급받기 위하여는 삼성이 작성한 합의서에 사인을 해야 하는데, 피해자는 그 합의서의 사본을 보관할 수도, 그 내용을 촬영할 수도 없다. 그래서 보상금을 지급받은 피해자들은 자신이 어떤 문서에 사인했는지도 잘 모르는 경우가 많고, 그만큼 위축될 수밖에 없다.

넷째, 보상액도 매우 낮다. 삼성이 공표한 기준에 따르면 백혈병ㆍ유방암 등으로 사망한 노동자의 유족들이 가장 높은 금액을 지급받게 되어있다. 그런데 해당 유족들에게 제시된 액수가 2억원대이다. 다른 질병 피해자들에게는 훨씬 낮은 금액이 제시되고 있다. 3군 질환(희귀난치성 질환 등)에 속하는 피해자에게는 3,000만원대의 금액이 제시되기도 했다. 치료비를 대기에도 부족한 금액이다.

한편 삼성은 모든 보상대상자들에게 '치료비' 만큼은 기존 지출액은 물론 향후 예상지출액까지 모두 지급할 것처럼 알리고 있다. 그 내용을 믿고 보상신청을 한 어느 피해자는 찾아온 삼성 직원으로부터 "향후 치료비를 받으려면 소송을 해야 한다"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결국 이 피해자가 지급받은 금액도 치료비로서도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었다.

다섯째, 보상의 방식과 내용 전반이 조정권고안에 반한다. 삼성은 보상신청자들을 개별적으로 접촉하여서도 "조정권고안에 따른 보상"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지만, 이는 명백한 거짓이다. 요컨대 조정권고안은 외부 독립기구(공익법인)가 주관하는 공정하고 투명하며 안정적으로 계속될 수 있는 보상절차를 제안하였지만, 삼성의 보상절차는 일방적이고 폐쇄적이며 한시적이다.

보상대상에 있어서도 조정권고안과 달리 질병의 종류, 업무 내용, 근무시기 및 발병시기 등에 따라 상당수의 피해자들을 배제하고 있다. 피해자 A는 1996년 이전에 퇴직했다는 이유로, 피해자 B는 퇴직 후 10년이 다소 지난 시기에 발병했다는 이유로 보상 대상에서 배제되었다. 조정권고안에 따르면 이들 모두 보상대상이 되어야 한다. 심지어 B의 경우, 삼성 측 직원으로 부터 "조정권고안에 따르더라도 당신은 보상대상이 될 수 없다"는 말을 들었다. '조정권고안에 따른 보상'이라는 거짓말을 하기 위해 피해자들에게 권고안의 내용 조차 속이고 있는 것이다.


1월 14일은 반올림이 삼성전자 본관 앞에서 노숙농성을 한지, 100일째 되는 날이다.

100일을 맞아 농성장 앞에서는 반올림의 싸움에 연대하는 100인의 이어말하기가 진행되었다. 인권활동가, 직업병 피해당사자, 일반 시민 등등이 삼성을 향해 올바른 사과와 보상을 촉구하는 메시지를 이어갔다. 서울지방변호사회 인권위원회 소속 변호사들도 참여했다.

그런데 같은 시각, 삼성전자 본관 안에서는 권오현 대표가 삼성의 보상절차에 적극 협조한 6명의 피해가족들(가족대책위)을 따로 만나 사과문을 전달하는 행사를 가졌다. 삼성은 별도 보도자료를 배포하며 "백혈병 이슈 9년 만에 해결하는 상징적 순간"이라고 자평하기도 했고, 언론은 그 보도자료의 내용 그대로를 기사로 쏟아내고 있다.

관련 기사들에 따르면 오늘 행사에서 삼성은 이런 말도 했다고 한다.

"예방 문제가 3자 간 합의로 타결된 데 이어 오늘 당사자에게 사과문까지 전달함으로써 직업병 조정과 관련한 예방·사과·보상 등 3대 쟁점은 모두 해결됐다"

올해 3월이 되면 고 황유미 씨(삼성반도체 백혈병 피해자)가 사망한 지 딱 9년째다. 지난 9년간, 삼성반도체ㆍLCD 공장에서만 220여명의 직업병 피해제보가 있었고, 그 중 10여명이 산재인정을 받았으며, 전문기관의 진단에 의하여 공장의 위험성도 상당 부분 드러났다. 많은 이들이 이 싸움에 연대를 해주었고, 이 문제를 다루는 책과 연극, 영화가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이 문제를 대하는 삼성의 태도는 한결같다. 참으로 일관된 거짓과 독단이다.

이제 반올림의 노숙농성은 101일을 맞을 것이다. 농성장 안에서는 벌써부터 올 여름 장마를 대비해야겠다는 말도 나온다. 언제까지 이어질지는 아무도 알 수 없지만, 오늘 삼성이 벌인 '이벤트'와 그에 동원된 언론 보도들을 보아하니 금방 끝날 것 같진 않다.

더 많은 이들이 함께 해주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