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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향자 씨는 왜 그랬을까 | 반올림에 대한 오래된 거짓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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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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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정말 황당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서 '삼성 직업병 청문회'를 준비하던 어느 의원실 보좌관님이 급히 전화를 주셨습니다.

"환노위 의원실들 사이에서 반올림에 대한 이상한 소문이 돌아요. 조정권고안이 발표된 직후에 삼성과 반올림이 막후 협상을 벌였는데, 거기서 반올림이 공익법인 안에서 일할 자리와 높은 임금을 요구했었고, 그것 때문에 협상이 어려웠다고..."

비슷한 시기에 국회에 있는 다른 분이 이런 얘기도 하더군요.

"얼마 전에 삼성전자 고위 임원 A가 B 의원실을 찾아가 그랬어요. 반올림이 공익법인을 운영하고 싶어 해서, 협상이 잘 안됐다고."

지난주에는 더불어민주당 양향자 최고위원의 발언이 화제였습니다. 반올림을 "귀족노조", "전문시위꾼"에 빗대며 "용서가 안된다"고 했다는데, 당시 발언 중에도 비슷한 맥락의 얘기가 나오더군요. "(반올림이) 귀족노조들이 자리를 차지하는 방식으로 활동한다."

반올림에 대한 오래된 거짓말입니다. 한 번은 짚고 넘어가야겠다 생각했는데, 이번 양향자 씨 망언이 좋은 계기가 되었네요.

시작은 이렇습니다.

2015년 7월 23일, 「삼성반도체 직업병 문제 해결을 위한 조정위원회」가 권고안을 발표했습니다. 조정위원회가 직접 강조하였듯, "권고안의 두 축"은 "①삼성전자의 1000억 기부와 ②권고안 실행 주체로서의 공익법인 설립"이었습니다. '보상'과 '재발방지대책' 사업을 실행하는 주체(공익법인)와 그 사업에 필요한 비용을 부담하는 주체(삼성)를 분리한 거죠.

반올림은 이를 "합리적"이라 평가했습니다(2015. 7. 24. 반올림 성명). 하지만 삼성전자와 가족대책위(반올림과 입장이 다르다며 따로 교섭단을 구성한 여섯 명의 피해가족)는 한 목소리로 반대하더군요.(2015. 8. 3. 삼성 보도자료, 2015. 7. 30. 가대위 성명).

여기까지는 괜찮았습니다. 생각이 다르면 대화를 통해 입장 차이를 좁히면 되는 것이고, 조정권고안도 후속 논의를 예정하고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삼성의 방식은 달랐습니다. 바로 조정권고안과 조정 절차 자체를 무력화시키는 작업에 들어가더군요.

방법은 간단했습니다. 조정 '보류' 요청 후, 자체적인 보상 절차 강행. 조정권고안의 내용을 임의로 수정한 자체 보상기준을 발표하더니, 한시적 보상창구를 열더군요. 삼성은 "조정권고안의 취지를 충분히 반영한 사과를 하겠다"는 약속도 했지만(2015. 8. 3. 삼성 보도자료), 그 마저도 서슴없이 깨버렸죠. 가해자인 삼성이 사과ㆍ보상의 내용을 모두 정하고, 보상 대상까지 직접 가르는 상황이 되어 버린 겁니다.

아무리 삼성이고 삼성이 무슨 짓을 하건 그럴듯하게 포장해주는 언론이 있다지만, 이렇게 까지 막나가기는 쉽지 않았을 겁니다. 누가 봐도 욕먹을 짓이라 삼성 스스로도 부담이 되었겠죠. '조정위원회'라는 것도 사실 반올림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삼성이 도입을 강행했던 것이거든요. "중재안이 나오면 따르겠다", "조정 절차에 성실히 임하겠다"(2014. 5. 권오현 대표 기자회견, 2014. 10. 9. 삼성 보도자료 등)는 약속도 여러 차례 했었구요.

그래서일 겁니다. 삼성은 너무도 뻔뻔한 거짓말을 하기 시작하더군요. "삼성은 법인 설립 부분을 제외하고는 조정권고안을 거의 원안대로 수용했다"고 말이죠.(2015. 9. 16. 삼성 보도자료 등 여러차례). 조정권고안의 17개 조항 중 삼성이 받아들였다고 볼만한 것은 단 한 개 조항(제5조)의 일부에 불과한데 말이죠.

그리고 이때부터 '반올림'에 대한 흉흉한 소문이 나돌기 시작합니다.

다양하게 변주되고 있지만 요지는 이렇습니다.

"반올림 활동가들이 직업병 피해자들을 돕는 척하지만, 사실 자신들의 이익을 도모하고 있다. 피해자들이 삼성과 합의를 다 해버리면 활동가들의 입지가 좁아지니까, 그 합의를 가로막거나 어떻게든 그 합의를 통해 자신들의 일자리(혹은 돈?)를 마련하려고 한다. 특히 반올림이 '공익법인' 설립을 고집하는 이유는 그 안에서 한자리 차지하려는 욕심 때문이다."

이런 소문의 확산에는 물론 언론의 공이 제일 컸습니다. 대표적으로 '서울경제' 서일범 기자가 쓴, 제목부터 화려한 〈본말전도 반올림, 누구를 위한 눈물인가〉라는 기사가 있습니다.

"실제로 반올림은 보상을 위한 공익법인을 설립하자고 끊임없이 요구하고 있다. 반올림 관계자들은 그 공익법인에서 주요 보직을 차지할 가능성이 크다."(2015. 9. 7. 자 서울경제)

이 기사는 삼성의 보상절차에 항의하기 위해 피해자들과 활동가들이 함께했던 기자회견을 "당사자들은 화해를 원하는데, 구경꾼이 나서 싸움을 부추기는 꼴"이라고 표현하더군요. 심지어 "반올림이 피해가족들에게 일일이 전화를 걸어 '보상 받아서는 안된다'며 설득하고 있다"고까지. (반올림 활동가들이 정말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요?)

비단 서울경제만이 아닙니다. 반올림이 조정권고안을 지지하는 이유를 "자신들을 위한 조직 이기주의"(조선일보), "투쟁가들의 일자리를 만드는 전략"(한국경제), "피해자를 '볼모'로 조직을 지키려는 행동"(중앙일보) 등으로 표현하더군요. "1000억의 기부금이 다 떨어지면 또 요구할게 뻔하다."(뉴데일리)거나 "반올림이 (삼성 보상절차에) 반발하는 이유는 보상이 이뤄질 경우 단체 존속이 어려울 것이라는 판단 때문", "단체 존립을 위해 가족들을 볼모로 잡고 있다"(디지털데일리) 등 다 인용하기도 어려운 표현들이 등장했습니다.

그렇다면 진실은 무엇일까요.

놀랍게도 반올림은 공익법인 설립을 고집한 적이 없습니다. 단지 조정위원회가 제안한 '공익법인을 통한 보상·재발방지대책' 방안을 "합리적"이라고 평가했을 뿐이죠. 삼성이 자체적인 보상을 고집하는 상황에서, 조정권고안은 삼성으로부터 독립된 제3자에 의한 보상을 제안했으니, 당연히 긍정적으로 평가하지 않았을까요?

이번 조정위원회 권고안의 가장 큰 특징은 삼성전자와 한국반도체산업협회의 기부를 바탕으로 공익 법인을 설립하고, 그 법인으로 하여금 보상과 재발방지대책 및 공익 사업의 수행을 총괄하도록 한 점입니다.

조정위가 권고하는 '기부'라는 형식으로는 삼성전자의 책임이 선명하게 드러나지 못하는 문제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동안의 교섭 과정에서 재발방지대책을 둘러싼 논란들을 돌이켜 보면, 삼성전자의 기부로 설립된 공익 법인이 독립적으로 관련 대책을 수행하도록 하자는 권고안은 합리적이라고 봅니다. 또한 삼성전자에게 지난 과오를 청산할 뿐 아니라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사회에 기여할 기회를 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2015. 7. 24. 조정권고안에 대한 반올림 입장)

지금까지 반올림이 조정권고안의 '공익법인'에 대하여 낸 의견은 딱 여기까지입니다. 그 공익법인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주장한 적도 없지만, 사실 그런 주장을 할 기회도 없었죠. 조정권고안 발표 이후 삼성이 '사과'ㆍ'보상'에 대한 논의를 일체 거부해 왔으니까요. 그런데 언론은 반올림이 공익법인을 '고집'하고 있고 심지어 그 안에서 '한 자리 차지하려한다'고 하니, 이 얼마나 허무맹랑한 소리인가요.

삼성과의 본 교섭이 시작되기 직전에, 반올림이 발표한 「삼성 직업병 대책 마련을 위한 요구안(2013. 12. 17.)」에는 이런 내용이 있었습니다. '재발방지대책'의 하나로 공장의 안전보건관리에 대한 사회적 감시 기구의 도입이 필요하며, 그 기구에는 "반올림이 추천하는" 전문가가 들어가야 한다고.

그런데 조정절차가 시작되고, 반올림이 조정위원회에 제출한 「삼성 직업병 대책 마련을 위한 요구안II(2015. 1. 17.)」에는 "반올림이 추천하는" 부분이 모두 빠져 있습니다. 사회적 감시 기구라는 것은 당연히 삼성으로부터의 독립성이 제일 중요한데, 그 구성에 반올림이 어떤 식으로든 개입하려 하면, 삼성도 중립성 운운하며 개입하려 할 것이 뻔했기 때문이죠.

그러한 논의 끝에 조정위원회가 발표한 「조정 권고안(2015. 7. 23.)」도 '공익법인'의 구성ㆍ운영에 반올림을 포함한 모든 협상 주체들이 관여하지 못하도록 했습니다.

그에 대해 이의를 제기한 쪽은 반올림이 아닌 가족대책위였습니다(「조정권고안에 대한 가대위 의견(2015. 7. 30.)」). 가족대책위는 조정권고안이 나오기 전부터 "협상 3주체(가족대책위, 반올림, 삼성전자)가 각 3인씩 이사를 추천하여 '건강재단'을 설립하자"는 주장을 했었죠(「가족대책위원회의 협상 요구안(2015. 1. 17.)」).

그런데 그 가족대책위의 법률대리인이자 삼성의 내부 보상위원으로도 활동했던 어느 변호사는,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그랬더군요. "반올림은 문제가 해결될 경우 시민운동 단체로서의 동력이 상실될 우려가 컸다"고(동아일보 2017. 3. 6. 자). 참 기가 찰 노릇이죠.

그리고, 반올림은 앞서 얘기한 「반올림 요구안 I,II」와 「조정권고안」, 「조정권고안에 대한 반올림의 입장」 등을 모두 그때그때 원문 그대로 반올림 홈페이지(다음 카페)에 공개해 왔습니다. 이 자료들을 한번이라도 제대로 읽어 본 기자라면 위와 같은 기사를 쓸 수 없을 겁니다.

자신들 삶의 방식으로 남을 재단하는 사람들

자 이제, 양향자 씨의 이번 발언과 국회에 돌았던 소문의 배경이 이해가 되셨는지요.

그렇다면 누가, 왜, 이런 소문을 만들고 퍼뜨리는 걸까요. 우선 거짓인 줄 알면서 의도적으로 소문을 만들어내는 자들이 있을 겁니다. 그들은 나름 전략적인 행동을 하는 거죠. 협상과정에서 삼성이 벌인 막장 행태를 감추기 위해 상대방인 반올림에게 나쁜 이미지를 덧칠하려는. 그들이 누구인지 추측하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 소문을 그대로 믿고 퍼뜨리는 사람들이 또 있을 겁니다. 오히려 더 흥미로운 쪽은 이 사람들입니다.

약 한 달 전, 광화문 촛불 집회에서도 비슷한 일을 겪었습니다. 거리에서 "박근혜 퇴진"과 "이재용 처벌"이 적힌 유인물을 나누어 주고 있었는데, 서너 명의 어르신들이 다가와서 묻더군요.

"이런 일 하면 얼마 받아요?" "대체 얼마 받고 이러는 거예요?"

반올림도 그렇게 '재단'되어 왔다고 생각합니다. 삼성 안에서, 혹은 그 곁에서 살아온 사람들이 자신들 삶의 방식으로 반올림 활동을 바라보면, 그렇게 보일 수 있겠죠.

드문 일은 아닙니다. 세월호 유족과 고 백남기 님의 유족, 그리고 그 곁을 지켜온 사람들이 모두 그러한 재단을 당해 왔으니까요. 뭐, 그러거나 말거나 제 길을 걸어온 사람들에 의해 그나마 세상이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고 믿습니다. 반올림도 계속 그럴 참이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