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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암을 이겨냈고, 이제 리우 올림픽으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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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부터 나는 역사상 가장 위대한 운동 선수 중 하나가 되고 싶어했다. 프로 스포츠와 올림픽을 보면서, 나는 내가 관중들 앞에서 승리의 터치다운을 하는 모습, 처음으로 피니시 라인을 끊는 모습을 상상했다. 어떤 스포츠든 상관없이 나는 내가 최고의 선수가 된 모습을 상상할 수 있었다. 멀리서 미국 국가가 흐르고, 사상 가장 위대한 깃발이 올라가고, 내가 1위 자리에 쓴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나를 그 자리에 오르게 해줄 스포츠가 무엇인지 찾기만 하면 됐다.

나는 5살 때부터 나를 정상으로 이끌어 줄 스포츠를 찾았다. 어렸을 때는 수영, 패스트 피치 소프트볼, 배구, 크로스 컨트리, 육상을 시도해 보았다. 그러나 내가 꿈꾸는 모습을 정말 볼 수 있겠다 싶었던 것은 철인 3종 경기와 산악 자전거였다. 나는 2년 만에 초보 산악 자전거에서 첫 프로 자격증 소유자로 성장했다. 1달 후에 철인 3종 경기 자격증도 땄다.

이 두 스포츠는 아주 다르게 보일 수 있다. 하나는 수영, 자전거, 달리기를 하는 스포츠고 다른 하나는 오프로드 자전거다. 나로서도 잘 이해하지 못했다. 그냥 내가 둘 다 좋아한다는 것만 알 뿐이었다. 그때 나는 오프로드 철인 3종 경기인 엑스테라를 알게 되어 빠져들었다.

최고의 자리까지 오르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세 번째 경기는 사이판에서 했는데, 당시의 세계 챔피언을 포함한 베테랑들이 함께 출전한 경기였다. 나는 1위로 피니시 라인을 끊었다. 2위보다 11분 빨랐다. 사람들이 내 머리에 꽃 왕관을 올려주는 순간, 나는 이게 나의 스포츠라는 걸 알았다.

그 뒤로 7년간 나는 내 가장 큰 라이벌인 캐나다의 수퍼스타와 대단한 전쟁을 펼쳤다. 우리는 계속해서 번갈아가며 1위와 2위를 차지했다. 나는 선수권 대회에서 총 37번 승리해, 남녀를 불문하고 가장 많은 승수를 올렸다. 미국 타이틀 6번, 유러피언 투어 타이틀 2번, 세계 챔피언 1번을 거머쥐었다. 끝내주는 인생이었다. 나는 사상 최고의 엑스테라 선수 중 하나로 절정을 달리고 있었다. 내 목표는 타이틀 50번을 채우고 세계 챔피언 자리에 또 오른 다음에 올림픽 산악 자전거로 초점을 옮기는 것이었다.

2008년에 그 모든 것이 달라졌다. 어마어마한 통증이 느껴졌다. 1부터 10까지의 척도로 보자면 내가 느낀 고통은 20이었다. 3개월 동안 달리지 못했다. 자전거도 탈 수 없었다. 아파서 비명을 지르며 깨지 않고 하룻밤 내내 잘 수도 없었다. 고통을 견딜 수 없어 의식이 혼미해졌다.

병원들을 전전하며 여러 의사들에게 계속 진단을 받았지만 아무도 내가 어디가 아픈지 알아내지 못했다. 좌골 신경에 문제가 있다, 디스크가 파열되었다, 난소 낭종이다, 과도하게 사용해서 부상을 입은 것이다 등의 말을 들었다. 친구가 권해서 샌프란시스코의 캘리포니아 주립 대학교 의대에 갔을 때야 답을 얻을 수 있었다. 그들은 내 통증을 8 수준으로 떨어뜨리고, 나를 이리저리 살핀 다음에 문제를 발견했다. 내가 생각지도 못한 것이었다.

어느 날 아침에 의사 두 명이 내 병실로 들어왔다. 한 명은 자기가 화학 요법 의사라고 했다. 또 한 명은 방사선 요법 의사였다. 그들은 앉아서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것들을 설명했다. "화학 요법을 선택하면..." "방사선 요법을 선택하면..." 나는 그들이 왜 내 병실에서 내게 이런 이야기를 하는지 잠시 이해할 수 없었다. 그리고 깨달음이 왔다. 나는 눈물을 참으려 했지만 계속 쏟아져 나왔다.

조용히 앉아 눈물이 그치길 기다렸다. 마침내 나는 물었다. "저 암에 걸렸나요?" 내가 물어 본 질문 중 가장 힘든 질문이었다. 사실 답을 알고 싶지 않았다. 의사 한 명은 일어나서 나갔고, 한 명은 앉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31세에 암에 걸렸다는 걸 알게 되었다. 2004년 엑스테라 세계 챔피언이고 엄청나게 건강한 내가, 어떻게 암에 걸릴 수가 있지?!

나는 계속 눈물을 흘리며 아버지에게 고개를 돌려 "죽고 싶지 않아요!"라고 계속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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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친구와 가족들 대부분은 내가 랜스 암스트롱처럼 암을 이겨내고 다시 스포츠계의 정상으로 돌아갈 거라 믿었다. 나도 그렇게 믿고 그러길 바랐다. 의사가 내게 발가락을 움직여 보라고 했는데 왼발이 움직이지 않았을 때 그 믿음은 무너졌다. 잠시 후 물리 치료사가 와서 내가 다시 걷는 법을 익히는 것을 도왔다. 나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신경막에서 자몽 크기의 종양이 자라고 있어 좌골 신경 일부를 제거해야 했다는 걸 난 이해하지 못했다.

무릎 아래가 마비될 거라고 아무도 내게 말해주지 않았다. 나는 다시는 달리지 못한다. 내 프로 커리어는 끝났다. 고정된 운동용 자전거 외의 다른 것을 탈 가능성은 희박했다. 나는 발에 체중을 싣지도 못했다.

방사선 치료를 받기 전에 나는 하루에 0.5마일을 걷고, 3000야드를 수영하고 웨이트를 하는 일정에 적응해 가고 있었다. 그런데 의사가 종양이 돌아왔으며 생각보다 훨씬 더 공격적이라고 말했다.

이번에는 왼쪽 둔근 전체를 제거하는 수술을 받았다. 패혈증이 와서 거의 죽을 뻔했다. 병원에 하루만 늦게 갔어도 지금 살아서 이 이야기를 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온몸에서 체액이 빠져나왔다. 하루 24시간 쉬지 않고 내 몸에 항생제가 들어갔다. 신장이 배출을 제대로 할 수 없어서 등에 관을 꽂았다. 체중이 계속 줄었다. 나는 44kg까지 내려갔다(경기에 참가할 때는 52kg였다).

상태가 호전되기 시작했다. 관들을 하나씩 뽑았다. 다시 운동을 시작했다. 암 검사 결과 깨끗했다. 삶은 좋아지고 있었다. 마지막 관을 뽑기 위해서 나는 왼쪽 신장을 오른쪽 골반 쪽으로 옮기는 수술을 받아야 했다.

다 괜찮은 것 같았다. 수술 후 3주 뒤 조금 변화가 있었다. 뭔가 이상했다. 1주일 더 기다렸다가 가까운 병원에 갔다.

나는 최악의 상황이 두려웠다. 암이 돌아왔을까 봐 겁이 났다. 내가 내 신장에 거부 반응을 보이는 게 가능한지 모르지만, 그런 것 같기도 했다. 다른 가능성은 무엇이 있을까? 이번엔 그냥 넘어가면 안 될까?

"임신하셨습니다!!"

응급실에서 13시간 동안 앉아있다가 들은 말이 그거였다. 나는 의사를 보고 "그럴 리가 없어요. 다시 검사해 보세요."라고 했다. 그래서 다시 검사했는데도 임신이었다.

임신한 것이 세 번째 수술 기간 중이라는 걸 깨닫자 태아가 괜찮을지 다른 방으로 옮겨 초음파 검사를 받았다. 작고 추운 방에서 기술자와 단 둘이서 나는 태아가 괜찮을 뿐더러 쌍둥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장애를 가진 삶에 적응해가고 있던 나는 내가 쌍둥이 엄마가 될 거라는 사실에도 적응해야 했다. 아이들은 빨리 나오려 했다. 27주 때 나는 입원해서 아이들을 뱃속에 두기 위해 가능한 모든 방법을 썼다. 34.5주에 출산했다. 쌍둥이는 인생의 첫 2주를 신생아 집중 치료 시설에서 보냈다. 아이들이 돌이 될 때까지의 1년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먹고 자고 기저귀 갈고 가끔 목욕을 하며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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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위대한 운동 선수가 되겠다는 나의 꿈은 끝난 것 같았다. 하지만 끝은 아니었다. 나는 그 동안 내내 다시 자전거를 타는 것을 꿈꿨다. 신체적 어려움이 있는 선수들을 돕는 재단인 Challenged Athletes Foundation의 공동설립자 밥 배빗 때문에 나는 장애인 올림픽이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나는 내가 지금도 신체적 장애가 있는 다른 선수들과 함께 자전거 선수로 경쟁할 수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자전거만 다시 타면 된다.

3년 뒤에 알라드가 만든 특수 보조기를 이용해 다시 자전거를 타기 시작했다. 나는 그 뒤로 멈추지 않았다. 나는 리드빌 100[주: 콜로라도 주 록키 산맥에서 열리는 울트라 마라톤]을 완주했고, 세계 챔피언십을 6번 재패했고, 벨로드롬에서 트랙 바이크 타는 법을 익혀 장애인 사이클리스트로서 세계 챔피언십을 3번 더 재패하고 세계 기록을 2개 세웠다. ESPN이 주는 ESPY 상에서 최고 장애 여성 선수 상을 수상했다.

지금은 2016년이고, 리우로 가는 길은 점점 다가오고 있다. 어떤 종목에서 가장 위대한 운동 선수가 될 기회가 눈앞이다. 미국 국가가 들린다. 성조기가 올라가는 게 보인다.

우리의 꿈으로 가는 길은 때론 바뀔 수 있지만, 그렇다고 우리의 꿈이 변해야 하는 건 아니다!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패럴림픽은 오는 9월 7일부터 18일까지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