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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습기 살균제 가해기업이 해야 할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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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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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습기 살균제로 인한 대규모 인명피해 사건

옥시 레킷벤키저(Reckitt Benckiser) 등 몇몇 기업들이 농약성분이나 세정제를 희석해서, 가습기 살균제라는 이름으로 한국 소비자들에게 생활용품으로 팔았다. 가습기의 물에 타서 사용하면, 세균 번식을 막으면서도 인체에는 전혀 해가 없다고 선전했다. 2011년, 질병관리본부에 의해 봄철이면 나타나는 원인미상 폐손상 환자들의 발병 원인이 이들 제품 때문인 것으로 밝혀졌다.

피해자 숫자가 정부의 1, 2차 조사만으로도 총 2백 명이 넘고, 사망자도 1백 명에 육박한다. 현재 조사가 계속 진행 중이어서 앞으로도 피해자가 추가로 확인되겠지만, 지금까지 확인된 규모만으로도 유래를 찾기 어려운 비극적인 대형 사건이다.

사과를 외면한 옥시 레킷벤키저

제품에 사소한 하자만 있어도 소비자에게 사과하는 것은 현대 사회에서 기업의 기본적인 윤리이며 상식이다. 하물며 사람이 죽고 다쳤으면, 이유를 불문하고 일단 빠른 시간 안에 피해자와 가족 그리고 자기 제품을 사용한 소비자들에게 진심 어린 사과부터 하는 것이 인간의 도리다. 그리고 피해자들에게 충분한 보상을 하고, 문제 발생의 원인을 규명해서 재발방지책을 수립, 실행해야 한다.

그러나 가습기 살균제 사건의 가해자임이 밝혀지고도 해당 기업들은 일체의 공식적 사과를 하지 않았다. 최대 규모의 피해자를 발생시킨, 영국에 본사를 둔 옥시 레킷벤키저는 법원을 통해 인과관계를 다투는 방식을 선택했다. 대한민국 최고의 로펌이라는 김앤장을 내세워 정부 조사의 방법과 결론에 대해서 조목조목 시비와 논란을 벌이는 방식으로 재판을 장기화시켰다.

2014년 8월, 한국의 SK하이닉스 반도체는 한 언론사가 직업병 의심 사례를 추정 보도한 것만으로도 자기들의 문제가 무엇인지 외부 인사들로 구성된 위원회를 통해 1년에 걸친 검증을 받았다. 피해 가능성이 있는 사람은 단 한 명도 누락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자는 원칙으로, 인과관계는 물론 상관관계조차 명확하게 규명되지 않은 질병들까지 범위를 대대적으로 넓혀서 포괄적인 지원보상을 하기로 결정했다. 논란은 종식되었고, 현재 대상자들로부터 신청을 받아 지원보상을 실행하고 있다.

옥시 레킷벤키저는 소비자 피해를 민사상 문제로 규정하고 있는 법대로 한 것이라고 할지 모르나, SK하이닉스 반도체의 사례와는 극적으로 대비된다. 21세기에 20세기 수준의 대응을 했다고 볼 수 있다.

처음에는 성과가 있는 듯 보였다. 옥시 레킷벤키저의 지연전술에 지쳐버린 약 60여명의 피해자들이 불리한 조건으로 합의를 했다. 회사는 "역시 최고의 로펌을 앞세우길 잘했다", "일이 잘 마무리되고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회사가 저지른 과오에 비해 정말 미미한 수준의 손해를 감수하는 것으로 사태가 끝날 뻔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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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대 피해를 입힌 옥시 레킷벤키저(Reckitt Benckiser)의 가습기 살균제
ⓒ허핑턴포스트코리아

피해자들에 대한 중복 가해

그러나 올해 초, 검찰의 수사가 강화되자 새로운 사실들이 확인되면서 회사 관계자들이 줄줄이 소환, 구속되었고 전국적으로 소비자 불매운동이 벌어졌다. 옥시 레킷벤키저의 지연전술은 회사의 입장도 최악으로 만들었고, 피해자나 유가족들에게는 잔인하고 몹쓸 짓이었다. 가족을 잃은 유가족들이 슬픔과 악몽에서 얼른 벗어나도록 적극 협조해도 시원치 않을 텐데, 보상 문제로 장기간 심리적 고통을 겪게 만듦으로써 이중으로 가해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가해 기업들은 사건 발생 당시에는 제품의 안전성 확인을 기업 자율에 맡겼던 한국의 법률 체계의 허점을 근거로, 법적으로는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는 듯싶다. 그러나 기업의 자율에 맡겼다고 해서, 사람을 죽이는 제품 판매까지 허용하는 자율을 보장해준 것은 아니다. 더구나 독성시험도 하지 않고 인체에 무해하다는 선전 문구를 제품에 대문짝만하게 표시한 것은 단순 과실이나 도의적 책임만이 아니라 심각한 법적 책임이 있는 것이다.

사과를 위한 구체적 행동

검찰 수사가 강화되고 여론이 극도로 악화되자, 옥시 레킷벤키저는 사건 5년 만에 한국법인 대표의 기자회견을 열었다. 그러나 알맹이 없는, 단지 죄송하다는 단어만 반복함으로써 피해자들을 오히려 분노하게 만들었다.

옥시 레킷벤키저를 비롯한 가해 기업들은 어떻게 책임을 져야 할까?

첫째, 피해자들의 아픔에 공감하고 심리적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사과를 해야 한다. 가습기 살균제 사태는 1차적으로는 기업과 정부에게 책임이 있지만, 특히 유가족 중에는 자기들이 제품을 구매해서 사용했다는 사실 때문에 심한 자책감에 시달리는 분들이 많다. 가해 기업들은 피해자들과 유가족 분들께 "모든 책임은 제품이 무해한 것처럼 속여서 판매한 우리 잘못이니, 저희를 탓해 달라", "속인 사람이 잘못이지, 속은 피해자나 유가족은 아무 잘못이 없다"는 구체적 사실에 입각한 사과를 해야 한다. 그분들의 깊은 내면의 상처를 위로하는 동시에, 피해자들을 끝까지 책임지겠다고 밝혀야 한다.

둘째, 가족들에게 진심으로 사과하는 의미로, 옥시 레킷벤키저는 법률자문이든 법률대리인이든 김앤장과의 관계를 즉각 끊어야 한다. 김앤장은 서울대와 호서대의 왜곡된 동물실험결과와 피해자들의 발병원인을 곰팡이나 황사 등으로 호도하는 논리로 정부의 조사결과 반박하는 등, 졸렬한 방법을 총동원하여 법원의 판결을 지연시켜 왔다. 모든 것을 빨리 정리하고 악몽에서 벗어나고 싶은 가족들의 심리적 약점을 악용해서 회사 측이 제시하는 불리한 조건을 수용해서 합의하도록 유도했다. 기업이 1차 가해자라고 한다면 김앤장은 2차 가해자라고 할 수 있다. 김앤장은 가습기 살균제 문제에서 즉각 손을 떼고, 피해자와 국민들에게 솔직한 해명 또는 사과를 해야 한다.

셋째, 옥시 레킷벤키저는 사건이 시작된 지 5년이 지나서야 50억 원을 기부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지금까지 밝혀진 수백 명의 피해자, 그리고 향후 추가로 밝혀질 피해규모에 어울리지 않은 소액이다. 육체적 피해만이 아니라 정신적 손해배상도 이뤄져야 하고, 기업과 이미 재판과정에서 합의를 한 상당수 피해자들에게도 제한을 두지 말고 합당한 추가 보상이 있어야 한다. 앞으로 추가로 밝혀질 피해자의 범위와 규모도 지금 확실히 추정할 수가 없다. 레킷벤키저는 피해자들의 보상과 지원에 필요한 충분한 재원을 제시해야 한다.

탈리도마이드 사건의 경우에도 그러했고, 소비자나 환경피해 구제 사례들은 초기에 출연한 기금이 고갈되어 문제가 발생하기 쉽다. 향후 레킷벤키저가 한국 내에서 얻는 영업수익의 일정 부분을 적립해서 피해자와 한국 소비자들을 위해 사용할 기금을 확보하는 방법 등, 미래의 기금 고갈에 대비한 방안도 제시해야 한다.

넷째, 피해자들에게 보상과 지원을 체계적으로 진행할 실행 기구가 필요하다. 기업과 피해자 양측만의 협상으로 모든 것이 해결되면 가장 좋지만, 이번 사건과 같이 생명과 건강피해 사건은 불가피하게 법률적 그리고 의료적 판단과 지원이 필요하다. 또한 피해자 사이에 공평성 등의 문제로 인한 불필요한 갈등을 예방해야 한다. 지금의 사회적 관심이 한없이 지속되기는 어려운데, 향후 발생할 후유증과 추가로 확인될 환자 등으로 인해 피해자 지원은 장기화될 수밖에 없다. 이런 여러가지 이유로 공적인 실행 기구는 불가피하다.

피해자들이 정부의 개입을 반대하거나 정부의 결정이 지연될 경우에는, 기업과 피해자만의 합의에 의해 만들거나 위탁할 수 있을 것이다. 탈리도마이드 사건 수습에서는 독일 정부가 문제를 일으킨 기업과 같이 기금을 출연한 사례가 있다. 정부가 공동 책임을 지는 차원에서 기금을 출연하고, 책임지고 운영하는 방식이 가장 바람직하다.

다섯째, 가습기 살균제는 시장에서 퇴출되었다고 하지만 가해 기업들의 다른 생활용품들은 안전한지, 제품을 제조, 판매하는 과정에서 회사의 소비자 보호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는지 의문이다. 이런 의문을 해소하려면 점검과 개선이 필요하고, 그 결과가 소비자들에게 공개되어야 한다.

신뢰 확보를 위해 안전성 점검에 외부 전문가와 소비자 대표를 참여시키는 것이 바람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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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시 레킷벤키저 제품 불매운동, ⓒ환경운동연합

옥시 레킷벤키저 최고 경영진은 피해자의 요구에 조속히 응답하라

가습기 살균제 사태를 통해 확인된 제도적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화학물질 안전, 소비자 보호 등 여러 분야에 관한 논의가 활발하다. 그러나 피해자들에 대한 지원 보상 논의는 사안의 성격상 공론화가 충분하지 않다. 피해자 지원보상은 사태 해결을 위해서 가장 중요한 과제다. 또한 지원보상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피해자들의 갈등과 고통을 예방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부와 사회의 적극적인 관심과 지원이 필요하다.

가해 기업, 그중에서도 가장 큰 책임이 있는 옥시 레킷벤키저의 최고 경영진은 하루라도 빨리 사회적 해결방안을 제시하고 실행에 옮겨야 한다. 그것이 피해자와 유가족에게 두 번의 중복 가해를 가한 책임을 조금이나마 더는 방법이다.

* 본 글의 주장은 필자가 속해 있는 대학, 사회단체, 학술단체의 공식적 의견과 무관한, 개인적인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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