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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력고사 시절이 좋았다'는 착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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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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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입 제도가 마치 수능정시에서 수시학종으로 바뀌는 것처럼 착각하고 있습니다. 수능정시는 이미 대입의 주요 방법이 아니게 된 지 오래입니다. 1/3도 안됩니다. 그나마 남겨놓은 것도 시골에서 머리띠 싸매는 고학생을 위해서가 아니라 '학원빨', '돈빨'로 밀어붙이는 강남, 특목, 자사고 학생들을 위해서입니다. 착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실제로 바뀌는 것은 매우 복잡한 수시(학종만 있는 게 아닙니다)를 학종으로 단순화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동안 부유층의 온갖 '잡질'의 무대가 되었던 것은 수없이 많은 '수시○○'라는 전형들이었는데(사람들은 이걸 학종으로 오해합니다), 이걸 학종으로 단순화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누가 서울대 들어가는데 유리한지 이런 거에 민감하게 반응하지 맙시다. 들어갈 사람 들어가겠죠. 0.5%는 그냥 우연의 영역입니다. 80%에 관심을 가집시다. 80% 중에 0.5%에 들어가는 사람들 몇 명 더 생기는 게 공정한 사회 만드는 거 아닙니다.

시험 한방, 이건 돈빨 학원빨로 어떻게 됩니다.

하지만 3년간 학교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스토리를 만들어가는 것, 이건 돈빨, 학원빨로 안됩니다. 만약 그렇게 보였다면, 그건 그 학생이 원래 우수한 학생인데 집안의 서포트도 있었기 때문이지, 돌을 보석으로 꾸민 건 아닐 겁니다. 이럴 때 문제 삼을 것은 집안의 서포트가 없는 학생들 중 원석을 가려낼 방법을 찾는 것이지, 다시 돈빨, 학원빨로 가능한 문제풀이 전형으로 돌아가는 것은 아닙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대입 제도의 공정성이 아닙니다. 대입 제도가 교육을 쥐고 흔드는 일을 막고 정상화시키는 것입니다. 공정한 걸로 치면 학력고사가 공정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학력고사 같은 표준화 시험에 능한 학생이 더 이상 실력 있는 학생이 아닙니다. 옛날에도 그랬을지 모릅니다.

오늘날에는 주어진 답을 많이 아는 학생이 아니라 다양한 상황에서 스스로 학습을 조직하고 창의적인 문제해결을 할 수 있는 그런 학생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오늘날 요구되는 교육을 하려고 해도 대입 제도가 이와 어긋나 있다면, 학부모들은 그 교육을 거부하고 대입 제도에 맞춘 교육을 요구할 것입니다. 수업은 과정 중심의 탐구학습을 하고서 평가는 일방적인 전수모형에 맞는 '시험'으로 치른다면, 더구나 평가의 최종판인 대입을 표준화 시험으로 치른다면 교육이 거대한 사기극이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러니 대입 제도의 공정성을 따지기 전에, 현재 우리에게 요구되는 학교교육이 전수형 학습(흔히 말하는 주입식)인가 탐구형 학습인가부터 생각해 봐야 합니다. 전수형 학습이 필요한 시대라면 평가는 당연히 시험이 되어야겠죠. 하지만 탐구형 학습이 필요하다면 시험으로는 그 결과를 평가할 수 없습니다. 우리 교육이 창의성이 부족하고 학생들의 자율적인 탐구정신을 억압한다고 비판하면서 평가는 표준화된 시험으로 치르자고 한다면 이거야 말로 동그란 네모가 아니겠습니까?

* 이 글은 필자의 페이스북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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