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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학생 부모는 누구의 편견 앞에 무릎 꿇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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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수의 갑을 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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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5일 오후 서울 강서구 탑산초등학교에서 열린 '강서지역 공립 특수학교 신설을 위한 주민토론회'에서 특수학교 설립을 두고 찬·반 주민들의 의견이 엇갈리자 장애아동 학부모들이 무릎을 꿇고 호소했다.

"장애인들이 왜 이리 많으냐", "강서구민인지 신분증을 확인하라" 이런 소란스런 외침 속에서, 강서구 특수학교 설립을 위한 두번째 주민 토론회는 시작되었습니다. 팽팽하게 맞선 말들이 오고 갈 때마다, 지지측의 박수와 반대측의 야유가 터져나왔고 좁혀지기 힘든 입장 차이만 확연해졌습니다. 장애인 학생 부모들은 "장애가 있는 아이들도 학교는 가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하며 주민들 앞에서 무릎을 꿇었고, 설립을 반대하는 주민들도 일부 무릎을 끓으면서 토론회는 끝이 났습니다.

신문기사와 당시의 영상을 접한 많은 이들이 강서구 주민들의 이기심과 님비 현상을 질타하고 있습니다. SNS 상에서는 '강서구 특수학교 신설을 위한 서명 운동'이 펼쳐지고 있습니다. 강서구가 지역구인 김성태 의원이 토론회 자리를 슬며시 떠나던 장면도 주목을 받았습니다. "김성태 의원님, 가시지 마시고 제발 저희를 도와달라"는 외침이 들리자, 그는 외면하는 이의 어색한 웃음을 보이며 토론장을 떠났습니다. 누리꾼들은 김성태 의원이 지난 4월20일 장애인의 날에 썼던 페이스북 글도 찾아내 회자시키고 있습니다.

"국회의원이 되기 전부터 나는 사회복지사와 노동운동가의 길을 걸었다. 차별받는 장애인을 위해 일하고 싶다. ... 서른일곱 번 째를 맞는 장애인의 날, 순수하지만 뜨거웠던 나의 초심을 돌아보며, 이 땅에서 '사회적 약자'에 대한 편견과 차별이 영원히 사라지길 꿈꿔본다."

이런 일이 벌어지면, 평소에 잠만 자던 제 정의감도 불쑥 솓아 오릅니다. 국회의원과 주민대표들을 날서게 비판하고, 서명운동 게시물을 퍼나릅니다. 김성태 의원의 페이스북 글처럼, 위선적 모습이 포착되기라도 하면, 제 정의감은 더욱 증폭됩니다.

그러나 모든 책임을 그들에게만 물을 수 있을까요. 끊임없는 차별 뒤에는 뿌리깊은 사회적 편견이 자리잡고 있다는 연구들이 많이 있습니다. 갑의 명시적인 차별 행위는 을들이 공유하고 있는 숨겨진 편견에 의해 지지받고 있습니다.

숨겨진 편견들을 찾아라

아이들에게 카드를 준 후, 한 쪽에는 스페이드와 클로버를 모으고, 다른 쪽에는 다이아몬드와 하트를 모으라고 해보십시오. 검정색과 빨간색을 구분하는 것은 어린 아이들도 어려움 없이 잘 해냅니다. 이제 스페이드와 다이아몬드를 한 쪽에, 클로버와 하트를 다른 쪽에 모아 보라고 해봅시다. 앞서 보다 두 배 이상의 시간이 걸립니다. 색깔별로 구분하는 일은 우리 모두에게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서로 다른 색깔의 모양을 구분하는 것은 자연스럽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버드 심리학자인 바나지 교수는 백인과 흑인들의 사진과 한 뭉치의 단어장을 준 후 다음과 같이 구분해 보라고 하였습니다. 사랑, 평화, 기쁨, 친절처럼 긍정적인 단어들을 백인들과 짝짓고, 미움, 게으름, 실패, 폭탄처럼 부정적인 단어들을 흑인들과 짝짓습니다. 이제 반대로 긍정적 단어들을 흑인들과 짝짓고, 부정적 단어들을 백인들과 짝지어 보라고 했습니다.1)

사람들은 '흑인+긍정적 단어'와 '백인+부정적 단어'의 짝짓기를 더욱 어려워합니다. 혹시 짝짓는 순서가 영향을 미칠 수도 있으니, 그 순서를 달리해 보았습니다. 결과는 다르지 않았습니다. 바나지 교수는 고백합니다. 자신도 이 검사를 반복해서 참여했지만, 여전히 '흑인+긍정적 단어'와 '백인+부정적 단어'를 짝지을 때 시간이 많이 걸린단고 합니다.

콜로라도 대학의 코렐 교수는 실험참가자들에게 총쏘기 비디오게임을 시켰습니다. 백인과 흑인이 무작위 순서로 스크린에 나타납니다. 이들은 손에 핸드폰, 지갑, 콜라, 또는 권총을 들고 있습니다. 권총을 든 사람이 등장할 때만 총을 쏘아야 하는 게임입니다. 과연 사람들의 반응 시간은 인종에 따라 다르게 나타날까요. 무장을 하지 않은 이에게 실수로 총을 쏘거나, 무장을 한 이에게 총을 쏘지 않는 실수도 인종에 따라 다르게 나타날까요.2)

실험 결과에 따르면, 총을 든 사람이 스크린에 등장한 경우, 사람들의 총을 쏘는 반응 속도는 흑인에게서 더욱 빠르게 나타났습니다. 비무장에도 불구하고 무고하게 총을 맞은 이는 흑인이 많았고, 총을 들었지만 운이 좋게도 살아남은 이는 백인이 많았습니다. 쏘지 않아야 했지만 총을 쏘는 실수가 백인에 대해서는 12% 정도였던 반면, 흑인에 대해서는 16%로 나타났습니다. 반대로 쏘아야 했는데 쏘지 않는 실수는 백인에 대해서 12%, 흑인에 대해서 8%였습니다.

이런 실험들을 심리학에서는 내재적 연관 검사 (Implicit Association Test)라고 부릅니다. 사람들이 스스로 인지하지 못하는 암묵적 편견을 측정합니다. 이런 실험에 대해 강하게 비판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이들은 암묵적 편견을 지니고 있다고 해서, 반드시 차별적 행동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라고 지적합니다. 현실에서 검증을 할 수 없는 실험들이 많아서, 이를 판단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에두르는 방법으로 숨겨진 편견과 차별적 행동의 관계를 연구한 논문들도 많지만, 그 결과가 뒤섞여 있어서 칼로 무자르듯 답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을들의 편견이 실현되는 세상

최근 라이어슨 대학교의 헤만 교수는 내재적 연관 검사로 측정된 편견과 경찰들의 흑인 총격 사이의 관계에 대한 연구를 발표했습니다. 경찰들이 지닌 편견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지역 주민들이 지닌 편견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의 연구에 따르면, 흑인에 대한 부정적 편견이 큰 지역일수록, 경찰의 총격으로 인한 흑인 사망 사건이 더욱 빈번하게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이는 상관관계일 뿐, 원인과 결과의 관계라고 단정할 수 없지만, 공동체의 편견이 경찰의 총기 사용과 연관을 맺고 있다는 점만으로도 주목해야 할 연구 결과입니다.3)

경제학자들은 공동체의 편견이 차별로 이어지는 메커니즘에 대해 상당한 관심을 기울여 왔습니다. 대표적인 이론은 편견의 자기실현성입니다. 사회 구성원들이 공유하는 편견은 사람들의 의사결정을 둘러싼 비용과 편익에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흑인들의 능력에 대한 부정적 편견이 존재하면, 대학 졸업장을 통해 얻는 편익이 줄어들게 됩니다. 따라서 흑인들은 합리적으로 판단하여 대학을 가지 않기로 결정합니다. 마찬가지로 흑인에 대한 편견이 큰 지역에서는 과도한 총기 사용에 따른 징계와 비난이 작을 것입니다. 비용과 편익이라는 인센티브에 반응하는 경찰들이 왜 흑인에게 더 많이 총을 사용하는지를 설명할 수 있습니다.

성소수자에 대한 편견을 지닌 사람들이 있는 교회에서는 목사가 이들을 죄인으로 낙인찍기 쉬어집니다. 장애인에 대한 편견을 지닌 사람들이 사는 동네에서는 국회의원과 마을 대표들이 나서 장애인학교 설립을 반대하기 쉬어집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 이들은 편견으로 리더들을 응원하고, 자신들의 편견이 실현되는 세상을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그냥 갈 길 가시면 됩니다

빛을 "보아라"
정의를 위해 "목소리를 높여라"
자유를 위해 "일어서라"

앞을 보지 못하고, 말하지 못하며, 걷지 못하는 이들이 할 수 없는 것들입니다. 긍정적인 메시지와 함께 사용되는 신체 관련 언어들은 모두 비장애인들에 해당합니다. 반면 부정적인 메시지들은 장애로 연결지어 표현됩니다.

"귀머거리처럼" 내 부탁을 듣지 않더군
공포로 인해 "마비가 되었어"
사랑에 "눈멀더니만"

이런 식의 언어를 일상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우리는 과연 장애에 대한 편견에서 자유로울까요. 제가 다니는 교회에서는 이런 연습을 함께 해보았습니다.

"선글라스 정말 멋지다, 완전 기어가는데"
"정말 멋졌어. 휠체어를 힘있게 밀고 들어오는 것 같았다니까"
"앞이 보이지 않을 만큼 정말 섹시하군"

장애를 가진 표현과 긍정적 메시지는 좀처럼 자연스럽게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장애에 대한 뿌리깊은 편견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김성태 의원의 위선과 강서구 주민대표들의 야유에 대하여 분노를 표현하는 것은 온당하지만, 가벼운 정의감으로 남기 쉽습니다. 우리 모두의 편견 앞에 무릎 꿇어야 하는 장애 아이들의 엄마들 앞에서 무거운 성찰을 해 볼 필요가 있지 않겠습니까.

최근 장혜영 씨는 18년 동안 장애 시설에 갇혀 살아온 동생을 서울로 데려왔습니다. 중증 발달 장애를 지닌 동생과 함께 살아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프로젝트 '어른이 되면'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장혜영 씨는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막내의 손을 잡고 나서는 순간 여기는 낯선 곳으로 변해요. 너무나 익숙한 공간인데 낯선 존재로 취급당하는 ... 이걸 겪어내는 것 자체가 사실은 매일매일의 일상이거든요. ... 어떻게 하셔야 되냐면요. 만약에 길을 가다가 저희 자매를 보거든 반가워 하셔도 되고, 그게 아니라면 그냥 갈 길 가시면 됩니다. 뭘 더 해줄 필요가 없어요. 시혜도, 동정도, 미움도, 배척도 받고 싶지 않고, 그냥 아주 평범하게 같이 살아가는 게 저희 자매의 꿈입니다."4)


[관련자료]
1) implicit.harvard.edu에서 직접 참여할 수 있습니다.
2) Correll, J., Park, B., Judd, C. M., & Wittenbrink, B. (2002). The police officer's dilemma: Using ethnicity to disambiguate potentially threatening individuals. Journal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83, 1314-1329.
3) Hehman, E., Flake, J.K., & Calanchini, J. (in press). Disproportionate use of lethal force in policing is associated with regional racial biases of residents. Social Psychological and Personality Science.
4)중증 발달장애인 동생과의 시설 밖 생존일기 <어른이 되면>, https://tumblbug.com/grown_up


* 이 글은 한겨레 Weconomy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