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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은 '착취'에 아무런 관심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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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수의 갑을 경제학] 대리인들의 죽음과 '대리인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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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비엔(tvN) '혼술남녀' 조연출 고 이한빛 피디(PD)의 동생 이한솔(왼쪽 둘째)씨가 18일 낮 서울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기자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고 이한빛 피디는 입사한 지 9개월 만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대통령 후보들의 경쟁이 뜨겁게 펼쳐지던 4월, 한 청년의 죽음이 알려졌습니다. tvN 드라마 '혼술남녀'의 조연출이었던 고 이한빛 씨는 과도한 노동과 모욕을 견뎌내다가 자살을 선택했습니다. 통화기록과 업무지시 카톡을 통해 추정해 보니, 하루의 평균 수면 시간은 4.5시간이었고, 55일 중에 쉬웠던 날은 딱 이틀이었다고 합니다. 그는 비정규직 문제에 관심이 많았던 청년이었습니다. 청년들에게 위로를 주는 드라마를 만들고 싶었던 청년이었습니다. 월급을 세월호, 기륭전자, KTX 승무원, 빈민연대, 용산참사 등에 후원금을 내던 청년이었습니다. 그러나 비정규직 스태프에게서 계약금을 환수하는 역할을 해야 했고 노동착취의 도구가 된 듯하여 괴로워해야 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은 5월 노동절, 삼성중공업 거제 조선 사업장에서 크레인이 붕괴하면서 노동자 6명이 사망하고 25명이 다쳤습니다. 이들은 사내 하청기업 소속인 비정규직 노동자들이었습니다. 뉴스타파의 보도에 따르면, 사망자 중 한 명인 고 박상우 씨는 한 가정의 가장이었습니다. 산재의 위험마저 외부 하청기업으로 떠밀리는 현실에서, 가족들을 먹여 살려야 하는 가장은 위험을 고스란히 껴안고 하루하루 일을 해냈습니다. 가장은 최근 5개월 동안 1407시간을 일하였습니다. 월평균으로 따지면 281시간이고, 주당으로 따지면 78시간이었습니다. 쉬는 날은 한 달에 2~3일 정도뿐이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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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18일 삼성중공업 정문 앞에 차려진 사내협력업체 노동자 정현우(가명)씨 장례식장. 정씨의 아내가 허탈한 표정으로 앉아 있다. 5월11일 세상을 떠난 정씨의 장례는 22일에야 치러졌다. 정용일 기자

경제학 교과서에는 착취와 과로가 존재할까

경제학 교과서는 고용주와 노동자의 노사관계를 주인과 대리인 사이의 계약이라는 틀을 통해서 가르칩니다. 고용주는 노동자에게 계약을 제시하고, 노동자가 이 계약을 자발적으로 받아들여야만 고용 관계는 성립합니다. 경제학의 수학적 모델은 이를 두고 참여조건(participation constraint)이라고 부릅니다. 계약이 만족해야 하는 또 하나의 조건이 있습니다. 적절한 인센티브를 주지 않으면, 노동자는 일을 게을리할 수도 있고, 고용주가 알 수 없는 정보를 이용해서 사적 이익을 추구할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고용주는 업무 평가, 보너스, 승진 등과 같은 보상 체계를 고안해야 합니다. 노동자로 하여금 고용주가 원하는 대로 일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인데, 이를 두고 유인양립조건(incentive compatibility constraint)라고 부릅니다. 경제학자들이 이해하는 노사관계는 기본적으로 참여조건과 유인양립조건을 만족하는 계약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 노사문제를 바라보는 경제학자들의 주된 문제의식은 무엇일까요. 왜 청년은 55일 중에 이틀밖에 쉴 수 없었는지, 왜 가장은 한 달에 이틀 또는 사흘만 쉬고 일을 해야 했는지를 설명하는 것일까요. 꽤 많은 사람들은 청년과 가장이 처했던 현실을 두고 노동착취라고 부르겠지만, 노동착취의 문제는 경제학자들이 관심을 보이는 문제가 아닙니다. 착취가 이루어지고 있는가에 대한 경제학자들의 동의도 끌어내기 쉽지 않습니다. 노동자들이 자발적으로 계약을 받아들였기 때문에 (참여조건이 만족되었기 때문에), 착취라는 개념은 경제학 모델에서 성립할 수 없습니다. 어떤 경제학 교과서의 색인도 '착취'라는 단어를 포함하고 있지 않습니다.

경제학자들의 최대 관심사는 노사관계가 창출해 낼 수 있는 경제적 성과를 극대화하는 것입니다. 이때, 경제적 성과의 극대화를 방해하는 요인이 존재하는데, 그것을 '대리인 문제'라고 부릅니다. 대리인 문제란 고용주(주인)가 노동자(대리인)의 업무 능력, 업무 태도 및 노력 수준을 일일이 관찰할 수 없기 때문에, 노동자가 자신의 이익을 위해 고용주의 이익에 반하는 행동을 하거나, 또는 열심히 일하지 않는 문제를 일컫습니다. 계약 문제를 다루는 거의 모든 경제학 논문은 대리인 문제를 어떻게 줄일 수 있는가에 대한 연구라 할 수 있습니다. 아마도 경제학자들의 관심사와 노동 현실 사이의 간극에 놀라는 분들이 많이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아직 놀라기는 이릅니다. 경제학 교과서에서 대리인 문제를 해결하는 계약의 방식을 이해한 후에 더욱 놀라도록 합시다.

대리인 문제에 직면한 고용주는 노동자에게 열심히 일하고 정직하게 행동하도록 만드는 (유인양립조건이 만족하는) 계약을 제시합니다. 이때, 유인양립한 계약은 아주 중요한 특징을 보여줍니다. 고용주는 노동자에게 최적 수준보다 적은 업무량을 요구한다는 것입니다. 즉, 교과서에 따르면, 고용주가 제시하는 효율적 계약은 노동자에게 과로를 요구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일을 충분히 주지 않고, 넉넉한 휴식을 갖게 하는 것이 효율적 계약의 형태입니다. 일거수일투족을 관찰 받지 않는 노동자는 사적 정보를 바탕으로 자기 이익을 추구하여 경제적 지대(rent)를 누릴 수 있는데, 이를 줄이기 위해서는 업무량 자체를 줄이는 것이 최선의 방법입니다. 경제학 교과서가 설명하는 노사 간의 계약은 청년과 가장이 처한 노동 현실과 이만큼이나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대리인 문제'는 있지만, '주인 문제'는 존재하지 않는 경제학

저는 주인-대리인, 즉 갑을 사이의 계약관계를 공부하고 있습니다. 청년과 가장의 죽음에 대해 일말의 책임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는 이유입니다. 매달 쏟아져 나오는 관련 논문들을 따라 읽는 것이 제 삶의 가장 많은 시간을 차지합니다. 하지만 학자로서 이들의 죽음에 대해서 내놓을 수 있는 말이 너무나 빈약하다는 부끄러운 고백을 할 뿐입니다. 청년과 가장이 처했던 과잉노동의 현실을 설명하는 논문을 아직 읽어 보지 못했습니다. 청년과 가장의 죽음의 부당함을 지적하는 논문도 읽지 못했고, 무엇이 죽음을 야기하는지를 설명하는 논문조차도 읽지 못했습니다.

마지막으로 가장 근본적인 문제 하나를 폭로합니다. 앞서 소개한 것처럼, 노사관계와 노동의 문제를 분석하는 경제학 이론은 '대리인 문제'를 지적합니다. 대리인이라 불리는 을들은 본질적으로 게으르고 사적 이익을 추구하는 문제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러나 경제학 이론에 '주인 문제'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경제학은 주인이라 불리는 갑들에게서 어떤 식의 문제점도 발견해 내지 않습니다. 갑이 을을 착취하거나 과잉노동을 하게 만들 수 있는 가능성 자체가 교과서의 경제학 이론에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는 공공연한 비밀조차 아닌 듯합니다. 경제학자들이 쉬쉬하고 숨기는 사실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경제학자들은 이에 대해 아무런 비판 의식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아직 '주인 문제'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에 대한 경제학자의 문제 제기를 듣지 못했습니다.

대리인들의 죽음이 어느 정도 이어져야, 경제학자들은 주인에게 책임을 묻기 시작할까요.

* 이 글은 한겨레 Weconomy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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