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허핑턴포스트 블로거의 분석과 의견이 담긴 생생한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김재수 Headshot

왜 갑질이 판을 치는가

게시됨: 업데이트됨:
RESIGNATION
Ismailciydem via Getty Images
인쇄

김재수의 갑을 경제학

학회 때문에 학과의 워크숍에 참석할 수 없다고 말하자, C교수는 불같이 화를 냈습니다. 학회 참석 일정을 왜 미리 자기에게 이야기하지 않았느냐며, 연구실이 늘어선 복도에서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저를 혼냈습니다. 당황스럽고 황당했지만, 그에게 미안하다고 말하며 서둘러 대화를 마무리했습니다.

사실 학과장에게도 미리 학회 일정을 말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수시로 모임이 취소되기도 하는 학과의 비정기적 워크숍에 참석할 수 없다는 것을 미리 이야기하는 사람도 없습니다. C교수가 내게 화를 낼 만한 타당한 이유는 정말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따지고 들지 않은 이유는 종신교수 심사 때문이었습니다. 중요한 심사를 앞두고 밉보이지 않기 위해 갑질을 당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다른 학교에서 일하고 있는 지인에게 이 이야기를 건네자, 지인은 비슷한 일이 자신의 학과에서도 벌어졌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이야기의 전개는 달랐습니다. 갑질을 당한 이는 이제 막 임용된 조교수였지만, 불같이 화를 내며 싸웠다고 합니다. 대범한 용기를 가진 사람이기 때문일까요. 그는 학계에서 출중한 평가를 얻고 있고, 여러 곳에서 러브콜을 받는 사람입니다.

갑질의 거부는 바로 외부 대안의 존재 여부에 달려 있습니다. 다른 대안이 있으면 떠날 자유가 있습니다. 불러주는 곳이 많은 이는 갑질을 거부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은 저는 갑질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교수는 갑질을 당할 일이 가장 없는 직업이기에, 제 경험으로 갑질 이야기를 시작하는 것이 죄송스럽습니다.)

갑을관계-떠날 수 있는 자유를 가지고 있는가

힘을 가진 이가 부당하게 아랫사람을 대우하는 일들을 역사책에서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갑질의 역사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갑질을 하고서 툭 내뱉는 말만 조금 더 세련되어졌습니다. 예전에는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 '억울하면 출세해라'라고 비꼬듯 말했지만, 이제는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며 따뜻하게 말합니다. 〈갑과 을의 나라〉를 쓴 강준만 교수는 조선시대 관존민비의 사고방식에서부터 갑을관계의 역사를 추적합니다. 그의 주장에 공감하면서도, 왜 이제서야 갑을관계라는 말이 우리 사회를 규정하는 핵심 키워드가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을의 서러운 고백들이 진하게 공명하는 시대입니다. 갑질의 사례들이 더욱 넘쳐나는 시대임에 틀림없습니다. 소셜 네트워크 때문에 갑질의 이야기가 더 많이 유통되어서 그리 느끼는 것인지, 아니면 정말 갑질이 늘어난 것인지 정확히 알지는 못합니다. 물론 둘 다이겠지만, 갑질이 실제로 많이 늘어났다는 의심을 강하게 합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80년대 이전과 90년대 이후를 비교할 때, 우리는 떠날 자유를 잃어버린 사회를 살고 있습니다. 선택할 수 있는 외부 대안이 현저하게 줄어들었습니다. 대기업을 다니는 이가 직장 상사로부터 갑질을 당한다고 합시다. 이들은 과연 중소기업으로 옮길 수 있을까요. 정규직 직장을 가진 이는 비정규직이 될지도 모르는 위험을 감수할 수 있을까요.

1980년대까지 중소기업 노동자는 대기업 노동자 임금의 90% 이상의 수준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대략 60% 정도 수준을 받고 있습니다. 반면 고용비중을 살펴보면, 1980년대 중소기업의 고용비중이 54%였지만, 지금은 80%를 넘어서고 있습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임금 차이도 지속적으로 증가하여, 비정규직 노동자는 정규직 노동자 임금의 대략 절반 정도를 받는 상황입니다. 절반의 임금이라는 절망뿐만 아니라,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까지 껴안고 살아갑니다. 한 직장에서 1년을 머무르지 못하는 이들의 비율이 절반을 넘기 때문입니다. 비정규직이 3년 이내 정규직으로 전환되는 비율이 10명 중 2명 뿐이기 때문입니다.

소득 불평등과 고용의 불안정성으로 인해 괜찮은 외부 대안이 크게 사라졌습니다. 갑질이 점점 늘어난 이유입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임금 격차가 크지 않고 쉽게 다른 직장을 찾을 수 있다면, 썰렁한 부장 개그조차 참지 못하고 대기업 정규직 직장을 때려치울까 고민하는 이가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월급이 큰 폭으로 내릴지도 모르고 직장을 전전해야 하는 현실을 생각한다면, 과장의 사적인 업무 부탁과 그치지 않는 폭언, 인격 모독, 차별, 치근덕거림도 견뎌내야만 합니다.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같은 초대기업을 다니는 이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두가 부러워하는 사람들입니다. 삼성전자 직원의 평균 연봉은 1억을 조금 넘고, 현대자동차 직원의 평균 연봉은 9천6백만원 정도라고 합니다. 하지만 이들도 갑질로부터 자유롭지 않습니다. 만족스러운 외부 대안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갑질을 거부하고 직장을 떠나면, 다른 대기업으로 직장을 옮기는 행운이 따른다 해도, 30% 이상의 연봉 감소를 감수해야 합니다. 전체 대기업의 평균 연봉은 6천7백만원 정도입니다. 갑을관계의 문제가 경제의 하층부에서만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전방위적으로 터져 나오는 이유입니다.

2017-03-02-1488437849-4531813-1487206695_148720668163_20170217.JPG

그래픽_김승미

큰 기업과 작은 기업 사이에서 종종 벌어지는 갑질의 원인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전체 중소기업의 절반 가까이가 독립기업이 아닌 하청기업의 형태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즉, 최종 생산품을 생산하여 국내 소비자에게 직접 팔거나 해외로 수출하는 것이 아니라, 중간 단계의 상품을 생산하여 원청기업에 납품을 하고 있습니다. 이들 하청기업은 매출액의 대부분을 원청기업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외부 대안이 없는 하도급 상황이라면, 납품단가를 후려치거나, 납품 대금 결제를 차일피일 미루거나, 제품의 품질을 두고 꼬장을 부리거나, 특허 기술을 빼앗는 갑질을 당해도 달리 저항할 방법이 없습니다.

갑질 관계라도 괜찮아?

'괜찮아'는 우리 시대를 위로하는 언어입니다. '틀려도 괜찮아', '꼴찌라도 괜찮아', '뭘 해도 괜찮아', '없어도 괜찮아', '불편해도 괜찮아', '욕망해도 괜찮아', '그래도 괜찮아', '날개 꺾인 너여도 괜찮아', '방황해도 괜찮아', '넘어져도 괜찮아', '울어도 괜찮아', '결혼해도 괜찮아', '건방져도 괜찮아', '불안해도 괜찮아', '무심해도 괜찮아', '괜찮다, 다 괜찮다.' 최근 출판된 책들의 제목입니다. 해결책을 제시하는 처세술 책이 아니라, '괜찮아'라고 말하는 응원의 책이 쏟아져 나온 이유가 뭘까요. 마땅한 외부 대안을 찾기가 쉽지 않은 세상을 살아가고 있기 때문 아닙니까. 하지만 조금만 용기를 내어 생각해 보면, 내부 대안을 찾을 수 있으니 괜찮다는 위로와 응원입니다. 이제 경제학자들이 대답해야 할 차례입니다. 비록 외부 대안이 없어서 갑을관계를 맺는다 해도, 어떤 내부 대안이 갑질을 막을 수 있습니까. 갑을관계라도 괜찮을 수 있나요.

* 이 글은 한겨레 Weconomy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