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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사소한 것에 분노하는가 | 불평등의 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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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ttyimage/이매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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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적 불평등이 커지고 삶이 힘겨운 이들이 많아지면, 복지 및 소득재분배 정책에 대한 요구가 늘어납니다, 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정말 그렇습니까. 코넬 대학과 테네시 대학에서 각각 정치학을 가르치고 있는 엔느 교수와 켈리 교수는 1952년부터 2006년 사이에 이루어진 설문조사를 종합 분석하였습니다. "정부의 복지 지출을 늘려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응답을 분석한 결과, 불평등이 클수록 사람들의 답변은 더욱 보수적인 것을 발견했습니다. 고소득층이 보수화되는 것이야 그렇다 해도, 특히 놀라운 점은 불평등이 심할수록 저소득층마저도 복지 지출에 대해 더 반대한다는 사실입니다.

낯설지 않은 풍경입니다. 세월호 희생자 가족에게 주어질 보상금에 분노하는 이들이 많지만, 종부세 완화, 기업의 상속세 면제, 증여세 감면 등과 같은 부자감세에 대해서는 둔감합니다. 연예인들의 작은 실수에는 분노를 폭발하지만, 찔끔 오르고 마는 최저임금을 숙명처럼 받아들입니다. 경제적 불평등이 심각한 상황에 이르렀지만, 불평등에 대한 분노는 불같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을들의 꼴찌 기피

프린스턴 대학 경제학과의 쿠지엠코 교수와 동료 연구자들은 경제적 불평등이 우리의 의사결정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 연구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실험을 하였습니다. 실험 참가자들에게 서로 다른 액수의 돈을 주어, 소득 계층의 차이를 만듭니다. 각 계층마다 $1 차이의 소득 격차를 가지고 있습니다. 참가자들에게 $2의 돈을 추가적으로 주고, 다른 이에게 기부할 것을 요청합니다. 이 때, 자신보다 $1을 더 가진 바로 위 계층의 사람에게 주든지, $1을 덜 가진 바로 아래 계층의 사람에게만 줄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4을 가진 이는 $5을 가진 이 또는 $3을 가진 이 중에서 하나를 선택하여, 추가로 주어진 $2의 돈을 건넬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래 계층의 사람들에게 $2을 건넵니다. 그러나 유독 한 계층의 사람들만 다른 선택을 많이 합니다. 가장 바닥 계층 바로 위에 위치한 사람들입니다. 이들 중에서는 위 계층의 사람들에게 $2을 건네는 이들이 부쩍 많습니다. 실험 결과에 따르면, 바닥에서 두 번째 계층의 사람들 중 약 25-50% 정도가 이런 결정을 합니다. 연구자들이 제시하는 설명은 꼴찌기피(last place aversion) 성향입니다. 만약 바닥에서 두 번째 위치한 이들이 아래 계층의 사람들에게 $2을 건네면, 돈을 받은 사람은 자신보다 $1을 더 갖게 되고 자신보다 위 계층의 사람이 됩니다. 돈을 건네는 이는 가장 밑바닥 계층으로 떨어집니다. 꼴찌가 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 차라리 위 계층의 사람들에게 돈을 건네는 것입니다.

여론 조사 기관인 PEW 리서치 센터를 통해 어떤 계층의 사람들이 최저임금 인상을 가장 반대하는지를 살펴 보았습니다. 현재 미국 연방 정부가 정한 최저임금은 시간당 $7.25인데, 최저임금의 인상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가장 많은 계층은 바로 시간당 $7.26에서 $8.25의 임금을 받는 사람들로 나타났습니다. 앞서의 실험이 보여준 꼴찌기피 성향과 일관된 결과입니다. 이들은 현재 최저임금보다 조금 높은 임금을 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최저임금이 인상되면, 임금 상승에도 불구하고 바닥계층으로 편입되게 됩니다. 사람들은 더 낮은 임금을 받더라도 꼴찌가 되지 않는 것에 더 만족하고 있습니다. 또한 일반적인 재분배 정책에 대해서 설문조사를 하자, 5분위로 나누어진 계층에서 2분위 계층, 즉 최하위 20% 바로 위의 계층 사람들이 가장 약한 지지를 보내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을들의 도박

쿠지엠코 교수와 공저자들은 같은 논문에서 또 하나의 실험 결과를 소개합니다. 서로 다른 계층의 사람들이 의사결정에서 어느 정도의 위험을 감수 또는 추구할 것인지를 비교합니다. 경제적 불평등이 위험 추구 행위에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 질문한 것입니다.

실험 참가자들은 두 가지 선택안을 제시 받습니다. 정해진 얼마의 돈을 받을 수도 있고, 또는 상금과 벌금이 있는 도박에 참여할 수도 있습니다. 두 선택의 기대수익은 동일합니다. 실험 결과에 따르면, 꼴찌가 될 가능성이 없는 중간계층의 사람들은 도박 대신 정해진 돈을 선택합니다. 그러나 바닥계층에 가까울수록 더 많은 사람들이 도박을 선택합니다. 앞서와 마찬가지로 꼴찌를 피하려는 욕구가 작동하는 것입니다.

최근 세계를 놀라게 하고 있는 미국의 트럼프 현상과 영국의 브렉시트 결정도 불평등의 심화와 깊은 관계를 가지고 있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둘 사이의 공통점에는 저학력과 저소득 층의 지지가 강하다는 점입니다. 전문가들은 입을 모아 말하기를, 실상 이들의 결정이 자신들의 경제적 이익을 거스르는 선택이라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이들이 단순히 무식하거나 정보가 부족해서 스스로의 이익에 반하는 선택을 하는 것일까요. 꼴찌기피 성향은 왜 이들이 위험한 선택을 야기하는지를 일부 설명하고 있습니다. 경제적 불평등이 클 때, 바닥 계층 탈출을 위해 한 번 뒤집어 엎어야 한다는 모험을 벌이는 것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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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TN 뉴스화면 캡처

사소한 일에 분노하는 우리들

불평등이 심할수록, 우리는 사소하게 분노합니다. 구조적 문제에 분노하기 보다, 꼴찌가 되지 않기 위해 분노합니다. 스스로의 이익에 반하는 선택을 할 가능성도 높습니다. 힘을 가진 이들이 경제적 불평등을 걱정하지 않고 신분제를 공고화시키자고 서슴없이 말하는 이유일까요. 김수영 시인이 쓴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의 시작과 마지막입니다.

왜 나는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가 / 저 왕궁 대신에 왕궁의 음탕 대신에 / 50원짜리 갈비가 기름덩어리만 나왔다고 분개하고 / 옹졸하게 분개하고 설렁탕집 돼지같은 주인년한테 욕을 하고 / 옹졸하게 욕을 하고 [···]

그러니까 이렇게 옹졸하게 반항한다. / 이발쟁이에게 / 땅주인에게는 못하고 이발쟁이에게 / 구청직원에게는 못하고 동회직원에게도 못하고 / 야경꾼에게 20원 때문에 10원 때문에 / 우습지 않으냐 1원 때문에 / 모래야 나는 얼마큼 작으냐 / 바람아 먼지야 풀아 나는 얼마큼 작으냐 / 정말 얼마큼 작으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