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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 실존인가 물리적 현상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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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승의 영혼공작소] 연재를 마치며

2015년 11월 이 연재를 시작할 때 했던 얘기를 다시 상기해보자. 지구상의 인구 70억명 중에서 '영혼'의 존재를 믿는 사람이 무려 93%다. 다시 말해 대부분의 사람들은 인간의 고귀한 정신작용은 물리학 법칙으로 환원될 수 없으며, 생물학적인 원리로는 설명되기 어렵다고 믿는다. 400년 전 '마음은 몸으로 설명될 수 없다'고 주장한 데카르트의 이원론을 다들 지지하고 있는 셈이다.

과연 영혼은 존재하는가? 인간의 정신은 '뇌'라는 물리적인 토대로는 설명하기 어려운가? 물론 많은 신경과학자들은 지난 100년 동안 온갖 실험을 통해 '영혼의 가설'을 부정해왔다. 이들은 지금까지 '영혼'이라는 비물질적인 가설로 설명해온 정신작용들이 뇌의 생물학적 기저로 설명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세로토닌 같은 뇌 속 신경전달물질의 양을 바꾸고, 전전두엽처럼 특정 뇌영역에 전기 자극을 줌으로써 정신의 조절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혼이 존재한다고 믿는 학자들도 상당히 많다. 영혼을 추적해온 학자들의 노력 또한 그 역사가 깊다.

벌새 한 마리, 초콜릿바 한 개, 미화 5센트짜리 동전 5개. 미국의 과학저널리스트 메리 로치에 따르면, 이들에는 공통점이 있다. 언뜻 보기엔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이들 사이의 공통점은 '인간 영혼의 무게 21그램'과 같다는 사실이다.

'영혼 무게 21그램'은 왜?

인간 영혼의 무게가 21그램이라는 얘기를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스푸크〉(파라북스, 2005)라는 책을 통해 영혼의 존재를 추적했던 학자들의 노력을 유쾌하게 그려낸 메리 로치에 따르면, 의학계에는 '죽음의 순간, 인간은 21그램을 잃는다'는 속설이 있다. 이 속설을 통해 인간의 삶과 죽음 이후의 세계에 대해 다룬 〈21그램〉(알레한드로 곤살레스 이냐리투 감독, 2003)이라는 영화까지 탄생했으니 말이다.

이 영화의 모티브가 되기도 했던 유명한 실험이 있다. 1901년 4월10일 오후 5시30분, 미국 메사추세츠주에서 이름 높던 외과의사 덩컨 맥두걸은 4년간 준비해온 '엄청난 실험'을 시행하게 된다. 인간의 영혼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사람이 죽는 순간 무게의 변화를 측정하려 했던 것이다.

실험 대상은 결핵으로 죽어가는 환자들이었다. 오랜 투병생활 끝에 에너지를 소진하고 죽어가는 결핵환자들은 죽는 순간에도 움직임이 거의 없어, 저울에 영향을 줄 만큼 흔들리지 않는다고 한다. 몸무게가 매우 가볍고 무엇보다도 몇 시간 전에 사망 시각을 예측할 수 있었다. 죽는 순간 무게의 변화를 측정하기에 더없이 적절한 환자라고 맥두걸은 판단한 것이다.

맥두걸은 이날 동료 의사들과 함께 3시간40분 동안 첫번째 환자가 죽어가는 모습을 지켜봤다. 맥두걸은 '표준의 미국인 기질을 지닌' 환자가 운명하는 순간을 이렇게 기록했다.

"갑자기 환자의 죽음과 동시에 저울대 끝부분이 떨어지면서 아래쪽 멈춤쇠에 부딪히는 소리가 귀에 들릴 정도로 난 후 눈금은 다시 올라가지 않았다. 줄어든 무게는 4분의 3온스였다."

임종의 순간, 영혼의 무게 '21그램'이 사라진 것이다. 정말로 영혼의 무게가 21그램이냐고? 당연히 아니다. 이 실험은 다른 과학자들이 재현하려고 노력했으나 재현되지 않았다. 더군다나 물리적인 속성으로 설명되지 않는 것을 비물질적인 것으로 설명하고자 영혼이라는 개념을 도입한 것인데, 그런 영혼이 물리적인 속성인 무게를 가질 리 없지 않는가? 영혼이 왜 무게를 가져야 하는가!

동물을 대상으로 같은 실험을 해보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실제로 실험을 해본 과학자들이 있다. 개가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 측정해보니, 무게의 변화가 없었다고 한다. 역시나 재현 불가능. 물론 영혼의 존재를 믿는 학자들은 '이로써 동물에게는 영혼이 없음을 증명했노라!'고 자랑스러워했지만.

메리 로치는 "할리우드는 이 수치를 미터법으로 환산해 제목으로 달았는데, 그 까닭은 오로지 '21그램'이 듣기에 더 좋다는 것뿐이었다"며 "'0.75온스'라는 제목의 영화를 누가 보겠는가"라고 비꼬았다. 영혼이 있기를 바라면서도 영혼에 대한 증거 없이는 무턱대고 믿지 못하는 소심한 사람들에게나 이런 실험이 유익할 것이다. 영혼의 존재를 확신하지 못하면 '영혼을 위한 닭고기수프'를 즐겁게 먹을 수 없으니까.

어웨어 연구 "카드 본 영혼은 없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메리 로치의 〈스푸크〉에는 영혼 존재의 증거에 대한 역사적 기록을 근거로 전세계 사후문화와 과학자들의 연구 결과를 통해 영혼의 존재를 파헤쳐가는 학자들의 땀과 눈물이 담겨 있다. 그들이 결국 영혼의 존재를 증명했냐고? 물론 아니다. '죽음 이후 우리 영혼이 맞이하게 될 운명에 대한 탐구서'라고 할 수 있는 이 책은 그 결과가 얼마나 헛된 것인지 보여준다.

대표적인 예가 임사 체험이다. 호흡이나 맥박, 뇌파 등이 모두 정지된 상태였다가 다시 살아난 사람들 중에서 10~20% 정도는 사후세계 혹은 유체이탈을 경험했다고 주장한다. '임사 체험'이라는 말은 레이먼드 무디 박사의 저서인 〈잠깐 보고 온 사후의 세계〉(Life after Life)를 통해 세상에 처음 소개됐다. 무디 박사는 11권의 베스트셀러를 낸 작가이기도 한데, 이 책들은 전세계에 1300만부가 팔려 나갔다.

코네티컷대 켄 링 교수(심리학) 역시 그의 저서 〈마인드사이트〉(Mindsight)에서 임사 체험자들의 경험을 기술한 바 있다. 임사 체험 연구저널에 게재한 그의 논문에 따르면, 임사 체험자들은 대부분 공통된 경험을 한다고 한다. 어두컴컴한 터널을 지나 눈부신 빛을 향해 간다거나, 죽은 지인을 만난다거나, 평화롭고 아늑한 분위기에 둘러싸여 너무도 황홀해서 그곳에 남아 있고자 갈망한다거나 말이다.

그러나 과학자들은 이런 현상을 뇌에 산소 공급이 끊어지면서 일종의 환각작용을 일으킨 것이라고 설명한다. 임사 체험자들이 하는 얘기는 공통점은 있으나 충분히 환각으로 설명이 가능하며 재현이 어렵다는 점에서 아직 신뢰할 만하지 않다.

아직 논쟁은 끝나지 않았다. 영국 사우샘프턴의대 샘 파니아 교수는 매우 독특한 방법으로 이 문제에 해답을 찾으려 한다. 그가 진행하는 '어웨어 연구'가 바로 그것이다. 그는 응급실에서 실제 임상적으로 죽었다가 깨어난 환자들을 대상으로 실험을 하고 있는데, 영국과 호주, 미국의 15개 대학병원이 참여하고 있다. 그는 심장마비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환자들을 대상으로 임사 체험을 인터뷰해왔다. 특히 병실의 천장에서 20㎝ 정도 떨어진 곳에 특수한 문양의 카드를 놓아두었다. 즉 천장 가까이 올라가야만 볼 수 있도록 말이다. 유체이탈을 한 사람만이 볼 수 있는 카드들이다. 그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수백명의 임사 체험자가 있었고 유체이탈을 경험했다고 주장하나 이 카드를 보았다고 보고한 환자는 없었다.

영혼의 존재를 빌미 삼아 장사하는 사람들도 많다. 지금도 지구촌에선 영매산업이 성업 중이다. 산 자와 죽은 자의 소통을 중재하는 영매. 이른바 신들린 그들이 정신이 허약한 사람들의 일상을 좀먹고 돈을 갈취하며 거대 산업을 유지하고 있다. 죽은 자를 편히 보내고, 억울함을 풀어 액을 없앤다는 식으로 말이다.

육체가 죽은 뒤에도 정신이 무언가를 경험한다면, 그것은 영혼의 존재를 보여주는 증거가 될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은 한결같이 육체의 부활과 함께 정신의 경험을 보고하고 있다. 아직은 영혼의 존재를 증명한 어떠한 증거도 없다는 얘기다.

행복감이나 신뢰감처럼 고차원적이고 복잡한 개념이 뇌 내 신경전달물질로 조절된다는 것은 설령 영혼이 존재하더라도 뇌와 연결되어 있음을 암시한다. 아직 뇌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어서 속단하긴 이르지만, 이런 노력이 지속되면 우리는 굳이 '영혼'이라는 가설을 도입하지 않고도 인간의 고귀한 정신작용을 뇌의 생물학적 기작만으로 설명할 수 있을지 모른다. 나는 그렇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노력하는 7%의 사람들 중 하나다.

특히 뇌를 연구하는 물리학자에게 정신은 가장 놀라운 물리적 현상이다. 100억개가 넘는 신경세포들은 그저 전기신호를 주고받을 뿐인데, 하나의 신경세포의 속성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놀라운 현상인 '정신'이 그들의 상호작용으로 탄생한 것이다. 무엇이 생명 이전과 이후를 가르고 있으며, 무엇이 의식 이전과 이후를 만들어낸 것일까? 이 창발성이야말로 물질세계의 가장 놀라운 속성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다.

증명되지 않으면 늘 회의해야

우리는 왜 영혼이 존재하길 바라는 것일까? 인간의 고귀한 정신이,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정체성이 1.4㎏의 뇌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이 인간의 존엄성을 훼손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육체가 소멸되면 정신도 함께 사라진다고 생각하면, 우리는 도덕적으로 살 필요가 없다고 느낄 수도 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을 때 그 상실감을 감당할 능력도 없다. 죽어서 다시 만날 수 있다는 희망마저 없다면 어찌 이 험한 세상을 버텨내란 말인가?

하지만 그것이 냉정한 지구의 법칙, 우주의 속성이라면 영혼이라는 눈속임 없이 세상을 직시해야 한다. 육체가 우주의 먼지로 돌아갈 때 내가 너무나도 사랑했던 존재마저도 소멸할 수 있음을 받아들일 때 우리는 비로소 살아 있을 때 후회 없이 사랑하는 존재로 거듭난다.

다시 한번 강조하건대, 우리는 정신이라는 위대한 속성을 탄생시킬 만큼 물질이 그 자체로 경이로운 존재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물질은 정신이 위대한 만큼 더불어 위대하며, 이 우주는 물질을 통해 '정신이라는 물질'을 이해하는 토대를 비로소 만들어낸 것이다. 덧붙여, 우리 사회가 영혼이라는 개념이 떠받치지 않고도 제대로 돌아갈 수 있는 사회가 되길 바란다. 죽음 이후에 대한 불안감이야말로 인간의 가장 고통스런 숙명 아닌가? 종교라는 아편이 없다면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하지만 증명되기 전까지는 존재한다고 믿지 않는 회의주의적인 태도, 그러나 존재할 수도 있다고 믿으면서 열심히 탐구하는 열린 태도, 이 두 가지 태도를 함께 가지고 있으면서 세상의 모든 존재하지 않은 것들에게 휘둘리지 않는 것이 삶을 지탱하는 가장 중요한 태도라고 본다. 존재하지 않은 것들에게 휘둘리기에 우리의 짧은 삶은 너무나도 소중하니까.


* 한겨레와 함께 게재한 '정재승의 영혼공작소' 연재를 마칩니다. 지난 연재 글은 한겨레허프포스트 사이트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