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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아바타가 댓글 달고 모바일쇼핑하는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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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승의 영혼공작소] 확장된 자아 '아바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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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린든랩이 처음 선보인 '세컨드 라이프'는 수많은 아바타들이 모여 사는 온라인 3차원 가상세계다. 과학자 필립 로즈데일은 머지않아 평소 나의 페이스북, 카카오톡 대화 등을 통해 파악한 내 캐릭터가 담긴 '가상의 나'가 나를 대신해 소셜미디어에서 돌아다니는 시대가 올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나는 누구인가?'

우리는 누구나 정체성에 관한 질문을 품고 살아간다. 타자와 구별되는 자아의 본질은 무엇인지, 그 정체성의 본질을 찾고자 하는 욕망을 간직하고 있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자신의 정체성을 찾으려는 욕구와 함께 현재의 정체성에서 벗어나고 싶은 모순적인 욕망 또한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미국의 과학소설가 닐 스티븐슨은 자신의 공상과학소설 <스노 크래시>(1992)에서 가상의 나라 '메타버스'(Metaverse)를 창조하고 그리로 들어가려면 '아바타'라는 가상의 신체를 빌려야만 하는 세상을 기발한 상상력으로 그려낸 바 있다. 평소 피자 배달부로 살고 있는 주인공 히로는 가상세계인 메타버스에서 뛰어난 검객이자 해커다. 히로는 메타버스 안에서 퍼지고 있는 신종 마약 '스노 크래시'가 가상공간 속 아바타의 주인, 즉 현실세계 사용자의 뇌에 치명적인 손상을 입힌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스노 크래시의 실체를 추적하면서 거대한 배후 세력과 맞닥뜨리게 된다.

사이버 공간에 대한 개념조차 모호한 시절, 이 독창적인 이야기는 천재 과학자 필립 로즈데일에게 창조적 영감을 준다. 이 소설을 읽는 순간, 그의 뇌 속에는 이미 메트릭스 같은 세상이 통째로 들어서게 됐고, 그는 '필립 린든'이라는 필명으로 '세컨드 라이프'(Second Life)라는 3차원 가상세계를 창조한다.

'꿈꾸는 모든 것이 이루어지리라'

2003년 린든랩이 처음 선보인 '세컨드 라이프'는 수많은 아바타가 모여 사는 온라인 3차원 가상세계다. 우리는 그 안에서 나만의 아바타와 이름을 가지고 현실세계와는 다른 두번째 삶을 시작한다. 사용자는 자신이 꿈꾸는 모든 일을 할 수 있으며 새로운 인물을 창조하고 자신이 그 인물이 될 수도 있다. 그 안에서 물건을 만들어 팔 수 있고, 토지를 소유할 수도 있다. 또 그 안에서 통용되는 전자화폐를 현실 화폐로 환전할 수도 있다.

이 사이트는 처음 만들어지자마자 현실의 정체성에서 벗어나고 싶어하는 많은 미국인들 사이에서 신드롬을 일으켰다. 학생들과 직장인들은 일과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 세컨드 라이프의 주민이 될 수 있는 시간만 기다렸다. '세컨드 라이프'를 창조한 린든랩은 21세기 가장 전도유망한 벤처기업으로 떠올랐다. '세컨드 라이프의 조물주'란 별명이 붙은 로즈데일의 목표는 소설 <스노 크래시>처럼 '꿈꾸는 모든 것이 이루어지게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비즈니스 관점에서 바라보자면 이 혁명적인 아이디어는 얼마나 성공을 거두었을까? 한때 영화까지 나오면서 화제가 되었던 아바타 개념은 새로운 세상을 창조했는가?

2007년 한국을 방문하기도 했던 린든랩의 최고경영자 필립 로즈데일은 세컨드 라이프를 웹, 온라인 게임, 소셜네트워킹, 사용자 생성 콘텐츠, 창의적인 애플리케이션, 통신기술 등이 통합된 차세대 인터넷의 비전으로 선보였고, 게임, 영화, 음악, 문구 팬시 등 다양한 콘텐츠로 확장해나갔다. 한때 세컨드 라이프 안에서 이뤄지는 경제 규모가 미국 뉴욕시의 4배에 달했고, 실제로 세컨드 라이프에서 창업하고 돈도 버는 사람들이 수만명에 이른 적도 있다. 린든랩 자체 추산으로는, 세컨드 라이프 주민들이 창출한 국내총생산(GDP)이 5억달러를 넘어선 적도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냉정하게 말하자면 지난 10년간 린든랩이 벌어들인 돈은 정작 큰 금액이 아니었으며, 세컨드 라이프는 세상의 기대만큼 그다지 붐비지 않았다. 한때 세컨드 라이프에 등록된 가입자는 전세계적으로 2천만명에 육박했고 폭발적으로 늘어날 것처럼 보였지만 그 기세는 이내 주춤해졌다.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가입자의 수는 5%도 채 되지 않았으며,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별로 화제가 되지 않았다. 린든랩은 다양한 형태로 다른 분야에 영감을 주었지만, 세상의 기대만큼 폭발적이진 못한 게 현실이다.

왜일까? 세계에서 가장 앞선 정보기술(IT) 환경에 살고 있는 한국 사용자들을 공략하기에 세컨드 라이프는 문제가 많았다. 가상공간 내 커뮤니케이션을 위해 가장 중요한 한글 서비스가 턱없이 미흡했고, 우리나라 사용자들에게 인지적으로 친숙한 환경도 아니었다. 게다가 국내 게임산업진흥법은 온라인 게임에서 얻은 유무형 결과물의 환전을 금지하고 있어 세컨드 라이프와 '퍼스트 라이프'(현실세계) 사이의 관계는 아직 불투명하다.

대중적 욕망을 정확히 포착한 매력적인 비즈니스 모델인데도 사람들이 세컨드 라이프에 아직 매력을 느끼지 못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사람들은 수많은 게시판과 채팅방을 통해 이미 '세컨드 라이프적인' 삶을 살고 있다. 3차원 사이버 공간과 아바타만 없을 뿐, 세컨드 라이프가 채워줄 욕망을 이미 수많은 게시판 사이에서 해소하고 있다. 익명의 아이디로 악플을 달며 평소 나와는 다른 캐릭터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대표적인 예일 게다. 세컨드 라이프가 사람들을 모으기 위해서는 게시판과 채팅방, 블로그 등이 채워줄 수 없는 커뮤니케이션 환경을 제시해야만 한다.

페이스북과 네이버 오갈 '또다른 나'

그런 의미에서 필립 로즈데일이 한때 준비했으나 아직 실현되지 않고 있는 '두번째 프로젝트'를 주목할 만하다. 지금의 아바타는 린든랩이 만든 가상세계 세컨드 라이프에서만 활보할 수 있다. 그러나 그는 앞으로는 컴퓨터에 접속하는 순간, 아바타가 나를 대신해 웹페이지 사이를 이동하며 인터넷 스페이스를 활보할 수 있는 '가상공간 이동 프로그램'을 아이비엠(IBM)과 함께 내놓을 예정이었다. 지금은 플랫폼이 달라지면 아바타의 이동이 불가능하지만, 앞으로는 세컨드 라이프 속 아바타가 페이스북과 구글, 네이버 속으로 돌아다닐 수 있다는 얘기다.

실제로 미국의 기술 컨설팅 회사 가트너는 앞으로 평소 나의 페이스북, 카카오톡 대화 등을 통해 파악한 내 캐릭터가 담긴 '가상의 나'가 소셜미디어에서 돌아다니는 시대가 올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내가 가상의 나를 보고 그 캐릭터 속에서 나를 발견하는 날이 올 것이란 얘기다.

이 기술이 실현된다면, 폭발적인 인기를 끌 것으로 예측된다. 이제 사람들은 하루 중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인터넷 안에서 진정한 '나의 분신' 아바타를 만들 수 있게 될 것이며, 본격적인 세컨드 라이프가 시작될 것이기 때문이다. 인공지능이 파악한 내 캐릭터를 즐기고, 실제 대화를 방불케 하는 아바타들과의 대화를 신기해할 것이다.

차세대 아바타는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는 근사한 비즈니스 모델이 될 것이다. 지금 현재 게임이나 소셜미디어에서 사용하는 나의 아바타에 옷을 입히고 아이템을 추가하고 근사하게 꾸미는 데 드는 매출 규모는 약 1조원. 그러나 웹 공간을 마구 활보하는 아바타가 등장한다면, 이 시장은 10배 이상 확대될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내가 만든 아이디 하나만으로 새로운 인물이 되기엔 역부족이었지만, 인터넷을 활보하는 아바타가 나로 인식되는 순간, 우리는 현실세계에서 옷을 사고 화장을 하듯 아바타를 가꾸는 데 돈과 시간을 사용할 것이다.

이 비즈니스 모델이 크게 성공할 것이라 전망하는 건 사람들은 나와 늘 함께할 수 있다면 쉽게 아바타를 '나의 확장된 자아'로 인식하기 때문이다. 사실 이는 신경과학의 핵심 연구주제와 일맥상통한다. '사람들은 나를 어떻게 나라고 인식할까?' '나의 손을 어떻게 내 손이라고 인식하는 걸까?'라는 본질적인 질문 말이다.

신경과학적 측면에서 간단하게 말하자면, 인간은 자신이 컨트롤할 수 있고 눈이나 피부 등으로 감지할 수 있으면 나의 일부라고 인식한다. 나의 정체성 안에는 '감각과 통제'라는 가장 말초적인 대뇌 과정이 필수적 요소로 자리하고 있다. 예를 들어, 내 손을 붓으로 살살 간지럼을 태우면 간지럼을 느낄 수 있고 손을 뺄 경우 벗어날 수 있다면 그것이 내 손이라고 인식하는 것이다.

너무 당연한 얘기를 한다고? 그래서 신경과학자들이 흥미로운 실험을 한 적이 있다. 피험자의 손을 투명한 상자에 넣게 한다. 그러나 상자 안으로 보이는 손은 내 손이 아니라 어설프고 둔탁한 마네킹 손이다.(피험자의 손은 상자 아래 부분에 존재하게 된다. 그리고 피험자들도 그 사실을 잘 인식하고 있다.) 그러고 나서 실험자가 붓으로 마네킹의 손을 살살 간지럽게 한다. 피험자는 그 상황을 보고 있는데, 흥미롭게도 그때 상자 밑에 있는 피험자의 실제 손도 붓으로 간지럽게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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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바타는 분신·화신을 뜻하는 산스크리트어 '아바타라'(avataara)에서 유래했다. 2009년 개봉한 제임스 캐머런 감독의 영화 <아바타>의 한 장면.

내가 나를 인식하는 뇌 영역

그러면 놀랍게도 피험자들은 그 마네킹 손이 자신의 손이라고 착각한다. 내가 보고 느끼는 상황에서 경험이 일치했기 때문이다.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냐고? 갑자기 마네킹 손을 작은 망치로 내리치려 하면, 피험자들은 순식간에 자신의 손을 상자에서 빼려고 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자아'라는 개념은 매우 쉽게 확장될 수 있다는 얘기다.

실제로 필립 로즈데일은 일본 연구팀과 함께 흥미로운 뇌파 실험을 진행했다. 사람들의 뇌파를 통해 그들의 마음을 읽고 세컨드 라이프의 캐릭터를 움직이도록 하는 실험에 성공했다. 물론 이런 뇌-컴퓨터 인터페이스 연구는 전신마비 환자들이 불편 없이 일상을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데 기여할 목적으로 연구되어 왔었다. 하지만 앞으로는 몸이 불편한 사람들이 세컨드 라이프를 이용해 활력을 되찾고 건강회복 효과도 얻을 수 있을 뿐 아니라 실생활에서 대화를 나누고 쇼핑도 할 수 있는 기회도 제공될 것이다. 세컨드 라이프의 다양한 발전가능성을 보여주는 증거 중 하나다.

세컨드 라이프에 존재하는 아바타는 아직은 여전히 '타자'다. 이제는 친숙한 단어가 된 아바타는 분신·화신을 뜻하는 산스크리트어 '아바타라'(avataara)에서 유래했다고는 하지만, 아직은 나를 대신해줄 사이버 공간의 분신으로는 역부족이다. 최근 신경과학자들 사이에선 '내가 나를 인식하는 뇌영역'(self-center)이 어디인지 찾는 데 분주하다. 만약 내 아바타를 봤을 때 이 뇌영역이 활성화되는 날이 온다면, 그때부터 세상은 로즈데일 편이 될 것이다.

아직 이른 판단이지만, 아바타는 아주 자연스런 '확장된 자아'가 될 수 있다. 내가 컨트롤할 수 있고 내가 가장 공감할 수 있는 존재로 변모할 것이다. 사람들은 아바타와의 동일시를 통해 앞으로 온라인상에서 '제2의 인생'을 살게 될 것이다. 이제 온라인쇼핑몰이 유혹해야 할 대상은 '우리들의 아바타'인 것이다.

흔히들 사이버 공간은 '무한한 캔버스이자 창조적인 놀이터'라고 말한다. 우리는 누구나 그곳에서 나에 대한 세상의 기대와 의무, 도덕적 잣대와 법적 심판에서 벗어나 매력적인 일탈을 꿈꾼다. 설령 그것이 한낮에 꾸는 나비 꿈일지라도 말이다. 그러나 현실세계가 세컨드 라이프와 점점 더 닮아가는 오늘날, 안타깝게도 내 일탈의 꿈은 점점 더 현실이 되고, 생활이 되고, 그저 꿈이 된다.

* 이 글은 <한겨레>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