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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지성이 인공지능보다 뛰어난 까닭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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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승의 영혼공작소] 인공지능 VS 인간 지성

안타깝게도, 대한민국은 지난 수십 년 동안 사람들의 뇌에게 마치 인공지능을 흉내내라는 듯 교육해왔습니다. 모든 사람들의 머릿속에 같은 것만 넣어주면서, 실수 없이 정답 맞히기만을 강조하고, 숫자와 언어로만 학습을 평가하고, 정량평가를 통한 한줄 세우기에 급급해왔습니다. 그러나 이런 낮은 수준의 숫자와 언어 능력은 조만간 인공지능이 우리를 앞지르게 될 겁니다. 따라서 우리는 인공지능이 처리한 숫자와 언어 데이터들 속에서 통찰을 얻고 깊이 추론하는 분석적 능력, 자신의 생각을 언어와 숫자 외에도 그림, 음악, 몸짓 등 다양한 방식으로 나타내는 표현 능력, 무언가를 실제로 설계하고 만들어보는 공학적 능력, 타인을 공감하고 갈등을 조정하면서 협력하는 사회적 능력이 두루 필요합니다. 다시 말해, 우리 뇌의 다양한 영역들을 통합적으로 사용하는 전뇌적 사고가 인간 지성의 핵심입니다.

요즘 인공지능 강연에서 종종 강조하는 '인간 지성의 힘'에 대한 내 발언이다. 이 발언을 두고 기자들이 강연 요약 기사를 썼다. 그런데 제목이 "정재승 교수, 인공지능 시대에 언어·수학 집중 교육이 웬 말", "정재승 카이스트 교수, AI시대의 공교육, 언어·수학 집착 버려야".

기사들은 수학과 언어만 과도하게 집착하는 현실을 비판하는 내 발언은 길게 요약하면서, 앞으로 어떤 교육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내 생각은 그 안에 담지 않았다. 어떤 맥락에서 나온 말인지도 자세히 언급하지 않았다. 짐작건대 강연은 듣지 않고 강연 요약 기사만 본 기자가 심지어 자신의 기명칼럼에서 내 발언을 인용했다. "정 교수는 20~30년 안에 인공지능(AI)이 완성될 것이라며 에이아이가 잘하는 영어와 수학 공부는 제발 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그는 대신 멍 때리거나 산책하면서 불현듯 창의가 샘솟는 '유레카 모멘텀'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으악, 이때부터 일이 꼬이기 시작했다. '정말 물리학자가 수학과 언어가 쓸모없다고 했단 말인가? 이런 무식한!'이란 목소리가 트위터와 페이스북에 나타나기 시작했고, 한 변호사는 강연장에서 '정말로 수학과 언어 교육이 필요없다고 생각하느냐?'고 내게 따져 묻기도 했다. 한 수학자는 이런 칼럼을 쓰기도 했다. "설마 와전된 거겠지. 언어와 수학은 인공지능이 잘하는 대표적인 영역이니 아이들에게 가르치지 말자는 기사를 보고 할 말을 잃었다. 난데없이 인공지능과의 경쟁 우위가 모든 것의 잣대가 돼버릴 리가. 만사를 경쟁의 문제로 보는 걸까."

인공지능 시대의 수학과 언어 교육은?

공적 발언을 하는 이들에게 '대중의 오해를 허하라'는 태도가 필요하다고 했던가! 발언의 의도가 왜곡되고 충분히 전달되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으니, 운명처럼 감내하라는 뜻일 게다. 그럼에도, 소심하다 보니 지난 몇 주간 이런 식의 곤혹을 치르면서 마음이 불편했다.

이번 칼럼은 '인간 지성이 인공지능과 무엇이 다른가?'에 대해 기술해 보려 한다. 물론 억울함을 풀어보려는 개인적인 욕심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인공지능과 더불어 살아가야 할 인간에게 인간 지성에 대한 성찰이 우선적으로 필요하기 때문이다. 우리를 둘러싼 테크놀로지들과 우리가 무엇이 다른지 이해하는 것이 미래를 준비하는 첫걸음일 테니 말이다.

인간 지성을 인공지능과 비교하기 위해서는, 먼저 컴퓨터의 기원에 대해 주목할 필요가 있다. '컴퓨터'라는 개념을 세상에 내놓은 과학자는 존 폰 노이만과 앨런 튜링이다. 컴퓨터 이전 시대에는 세상에 등장했던 모든 기계장치들이 저마다 만들어진 목적, 혹은 수행하는 특수적 기능을 가지고 있었다. '무엇에 쓰는 물건인고?'라고 물으면 대답할 수 있는 기능들을 하나씩 가지고 있었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 자동차는 무엇에 쓰는 물건인고? 하고 물으면, 인간이나 물건을 빠르게 먼 거리로 이동하게 해주는 교통수단이라고 설명할 수 있듯이 말이다.

하지만 컴퓨터는 특별한 기능을 위해 만들어진 장치가 아니다. 한 가지 목적, 한 가지 기능만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범용으로 사용될 수 있는 장치인 것이다. 숫자와 언어로 이루어진 상징체계를 사용해 컴퓨터가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논리적 완결성을 가진 업무 방식을 제안하면, 그것을 수행한다. 그것이 무엇이든 완결성만 가지면 그 작업을 수행하는 장치다. 상징기호들로 표현된 업무 지시서를 '프로그램'이라고 부르는데, 정확하게는 '컴퓨터는 프로그램으로 표현 가능한 모든 일을 수행하는 장치'라고 정의할 수 있다. 논리적 완결성을 가진 프로그램 속 논리체계를 '알고리즘'이라고 앨런 튜링은 명명했다.

컴퓨터라는 개념을 최초로 제안한 학자인 존 폰 노이만과 앨런 튜링이라는 수학자들이라는 대목이 각별히 중요하다. 컴퓨터는 수학적으로 매우 아름다운 장치이지만, 논리적이고 수학적으로 표현 가능한 업무만 수행 가능하도록 디자인된 것은 컴퓨터의 성과이자 한계가 되었다.

반면, 인간의 뇌에서 벌어지는 과정은 전적으로 생물학적이다. 신경세포가 시냅스를 만들어가면서 거대한 네트워크 안에서 신호를 주고받으며 '사고'를 만들어가는데, 이 과정을 통해 우리는 세상을 인지하고, 감정과 욕구를 느끼며, 상황을 판단하고 의사결정을 내린다. 이런 내 자신을 의식하는 능력 또한 여기서 비롯된다.

생물학적으로 더없이 아름다운 장치인 뇌가 사고하는 이런 일련의 과정이 과연 컴퓨터의 알고리즘으로 표현 가능한가? 다시 말해, 뇌의 생물적인 인식 과정이 과연 숫자와 언어의 상징체계로 표현할 수 있는가? 그 과정은 수학적으로 완결성을 갖는가? 이 질문들은 아직 아무도 답을 모르는 열린 질문들이다.

어쨌든 이런 차이 때문에, 컴퓨터는 숫자와 언어라는 기호로 표현 가능한 문제, 논리적으로 완결성을 갖는 질문들만 풀 수 있다. 즉, 우리보다 미적분 문제를 더 잘 풀고, 특정 단어가 들어간 문서를 쉽게 찾아내며, 유사 이미지를 빠르게 찾는 데 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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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사물을 매우 쉽게 구별하지만, 인공지능은 사물 구별을 가장 어려워한다. 페이스북의 인공지능 테스트에서 구별하는 데 실패한 빵과 개, 개와 사람의 사진들이다. 페이스북 제공

알고리즘 대신 빅데이터 활용

대신, 단어와 문장을 '이해'하거나, 문맥을 파악하거나, 문장들을 읽으면서 불현듯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떠올리는 일은 컴퓨터에게 어렵다. 그런 과정 자체를 어떻게 숫자와 언어로 표현해 컴퓨터에게 넣어줄 수 있는지 우리가 아직 잘 모르기 때문이다. 뇌의 생물학적인 정보처리 과정이 컴퓨터의 수학적인 정보처리 과정과 다르기 때문에, 그들의 능력과 성과를 내는 분야가 서로 다른 것이다.

개와 고양이를 구별하거나, 남자와 여자를 구별하는 과제가 인간에게는 전혀 어려운 문제가 아니지만, 인공지능에겐 만만치 않은 문제다. 개/고양이, 남자/여자를 구별하는 만능의 규칙이 없기 때문에, 알고리즘적으로는 답을 찾기 어렵다. 머리카락이 길다거나, 다리가 가늘다고 해서 여성은 아니지 않은가? 머리가 크다거나 덩치가 크다고, 남자라고 간주할 수 없으니까.

그래서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이런 식의 패턴인식 문제는 인공지능에게 정확도를 높이기 어려운 난제였다. 이런 난제를 극복할 수 있게 된 계기는 '빅데이터'였다. 알고리즘적으로 극복하기 어려운 문제들에서 정확도를 높이기 위해 빅데이터를 활용해 문제를 해결한 것이다. 규칙을 가르치는 대신, 엄청난 양의 데이터를 입력해주면서 개/고양이 차이, 남자/여자 차이를 패턴에서 찾으라고 가르치는 것이다. 충분히 많은 데이터를 넣어주기만 하면 인간처럼 높은 성과를 올릴 수 있다는 걸 인공지능 연구자들은 알게 됐다.

'21세기 들어 인공지능이 어떻게 갑자기 뛰어난 성과물을 세상에 내놓게 되었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 중 하나가 '빅데이터 시대의 도래'라는 사실은, 역설적이게도 인공지능이 인간의 지성을 따라오려면 아직 멀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간접적인 증거다. 우리가 평생 본 개가 몇 마리나 될까? 우리가 '남자와 여자'를 구별하는 법을 부모에게 배우는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보며 학습을 했을까? 우리는 주변의 수백 마리의 개나 고양이를 보며 그들을 쉽게 구별할 수 있고, 수백 명의 사람들만으로 남녀를 쉽게 구별할 수 있는 능력을 가졌다. 그런데 이 정도의 정확도를 만들어내려면 인공지능에게는 빅데이터가 필요한 것이다. 그만큼 알고리즘이 훌륭하지 못했는데, 소셜미디어 시대가 도래하면서 페이스북에만 들어가도 개 사진이 수백만 장이나 되니, 인공지능도 인간 수준의 개/고양이 구별 능력을 갖게 된 것이다.

1956년 존 매카시가 '인공지능'이라는 개념을 세상에 내놓은 이래, 인공지능은 데이터를 기반으로 사고를 확장해왔다. 모차르트의 교향곡을 모두 인공지능 작곡 프로그램에 입력한 뒤, 모차르트스러운 교향곡을 새로이 작곡하라고 하면, 근사한 작품을 만들어낸다. 더없이 모차르트스럽고 아름다운 곡으로 말이다. 인공지능이 예술의 창의성 영역까지 확대 적용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다.

그러나 바흐에서 모차르트를 거쳐 쇤베르크에 이르기까지, 지금까지 모든 교향곡들을 인공지능 작곡 프로그램에 전부 입력한 뒤에, 입력한 교향곡들과는 다른 교향곡을, 그런데 일정 수준 이상의 미적 가치를 가진 작품을 만들어내라고 하면 그건 잘 못한다. 입력해준 데이터를 부정하는 사고는 아직 인공지능에겐 무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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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핀과 치와와, 고양이와 아이스크림 사진을 놓고 인간은 한눈에 알아차리지만, 인공지능은 헷갈려 한다. 사진은 페이스북이 만든 인공지능이 구별에 실패한 머핀과 치와와, 고양이와 아이스크림이다.

인간 지성의 핵심은 전복적 사고

하지만 이런 사고는 세상의 모든 예술가들의 머릿속에서 벌어지는 창작의 과정이다. 기존의 나온 작품들을 섭렵한 뒤에, 그들과는 다른 무언가를 나만의 스타일로 만들어내는 일. 그것이 바로 인간이 가진 예술적 창의성의 핵심이다. 과학자도 마찬가지다. 세상에 나온 기존 논문들을 금과옥조라 믿고 모두 받아들이기만 한다면 좋은 연구를 하기 어렵다. 그것을 의심하고 회의하며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사고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권위에 눌리지 않고 합리적으로 의심하며, 기존의 상식을 뒤엎는 대담한 가설을 세우고 이를 증명할 창의적인 실험에 몰두하는 일. 그것이 뛰어난 과학자들의 머릿속에서 벌어지는 생각법이다.

인공지능의 핵심이 데이터를 통해 스스로 인식을 확장하는 능력이라면, 인간 지성의 본질은 데이터를 비판적으로 받아들이면서 가치전복적 아이디어를 스스로 만들어내는 능력이다. 자신만의 관점에서 세상을 새롭게 구성하고 이해하는 일, 개인적 경험 안에 인식의 틀을 가두지 않고, 데이터에만 매달리지 않는 비판적 사고가 인간 지성의 중요한 토대다.

역설적이게도 대한민국은 지난 수십년 동안 인간의 뇌를 인공지능처럼 대해왔다. 앞으로는 다음 세대에게 정답을 실수 없이 빨리 찾는 능력보다는 질문을 던지는 능력, 데이터와 지식을 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능력, 자신만의 관점과 세계관을 세우려는 능력을 가르쳐야 한다. 아니, 그런 사고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그런 사유법을 독려해야 한다. 지적 다양성이 인간 지성의 핵심이며 획일화되지 않는 다양성의 존중이 행복한 인류를 만들어내기 위한 첫걸음이라는 지혜를 인간이 먼저 배워야 한다.

* 이 글은 <한겨레>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