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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에서 머리가 가장 좋은 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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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ttyimage/이매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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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승의 영혼공작소 | 뉴로리더십

신경과학자들이 정의한 '인생의 중년'은 나이 45살부터 68살까지다. 즉, 회사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수행할 때다. 평균 수명이 70년을 훌쩍 넘은 이 시대에 '조직 내 리더로서의 삶'은 대개 중년의 문턱에서 시작한다. 좁게는 팀의 리더에서, 넓게는 한 기업의 최고경영자(CEO)까지, 중년의 우리는 리더의 삶을 맞는다.

꼭 조직의 리더가 아니더라도, 중년이 되면 삶의 주인이라는 측면에서 누구나 리더로서의 삶을 산다. 달고 짜고 쓴 삶의 의미도 어느 정도 알고, 다양한 선택의 무게도 이해한다는 측면에서, 중년은 삶의 책임을 지는 그런 시기다. 그러나 중년이 되면 어느 날 문득 '뇌의 노화'를 절감한다. 기억력이 예전 같지 않다고 느끼고, 반응속도도 현저히 느려지며, 무엇보다 눈이 침침하고 소리가 잘 안 들린다. 총체적인 난국이란 생각이 들어 새벽녘에 문득 깨기도 한다. 어떤 리더들은 내게 찾아와 "혹시 제가 치매 초기가 아닌지 모르겠어요"라는 말을 조심스럽게 꺼내기도 한다. 물론 대부분은 치매가 아니라, 그냥 나이가 들고 있는 것이지만.

다들 그 나이가 되면 치매를 걱정하고 치료법이 있는지 묻는다. 뾰족한 대책이 거의 없다는 걸 알게 된 뒤에는 '뭘 먹어야 머리가 좋아지나요?'라는 질문으로 마무리가 된다. 우리 뇌는 특별히 뭘 먹는다고 좋아지거나, 치매가 예방되진 않는다는 답변을 드릴 무렵에는 체념의 상태가 된다. "그저 운동을 열심히 하세요. 호두 먹는다고 머리가 좋아지는 거 아니에요. 호두가 뇌를 닮았으니 호두 먹으면 머리가 좋아지겠지라고 생각하면 오해예요. 모양이 닮았다고 기능이 같은 건 아니잖아요. 먹는다고 기능이 향상되는 건 더욱 아니고요."

하지만 뇌에 대한 중년의 불안은 생각보다 뿌리가 깊다. 실제로 중년이 되면 가청 주파수대가 급격히 낮아져서 평소 즐겨 듣던 로큰롤이나 헤비메탈이 시끄럽게 느껴지고, 영화관에 가면 사운드가 거슬린다. 너무 가까운 것도, 너무 먼 것도 잘 안 보여서 다초점 안경이 필요하다. 할아버지처럼 안경을 내려 쓰며 맨눈으로 빼꼼히 핸드폰 문자를 봐야 하는 자기 자신을 발견하면 불안은 더욱 증폭된다.

중년이야말로 절정의 뇌

맛을 느끼는 능력도 현저히 떨어지긴 마찬가지다. <내셔널 지오그래픽>에 따르면, 젊은 시절 약 2만종의 맛을 구별하던 인간은 나이가 들면서 1만종의 맛을 섬세하게 구별하기도 버거워진다. 어머니의 음식솜씨가 예전 같지 않다고 가족 모두는 느끼지만, 그걸 못 느끼는 건 '어머니와 같이 나이 들어가는 아버지'뿐이다.

중년의 기억력 감퇴는 제일 먼저 이름과 얼굴을 잊어버리는 데서 시작한다. 맥락없는 정보인 이름과 얼굴이 잘 떠오르지 않거나(그 사람이 그 이름을 가져야 할 이유는 없으니까!), 혀끝에서 이름이 맴도는 경우가 종종 생긴다. 단기 기억능력도 예전 같지 않고, 들을 땐 기억해낼 것 같지만 그것이 장기 기억으로 넘어가는 비율은 현저히 줄어든다.

실제로 반응속도가 무척 느려진다. 반응속도는 나이에 정확히 반비례한다. 10대를 20대가 이길 수 없고, 30대가 20대를 이길 수 없으니, 40대가 예전 같지 않는 건 너무나 당연한 현실이다. 신호등 앞에서 대기할 때도 직진신호에 출발이 늦고, 자녀와 게임을 해도 반응이 느려 핀잔을 듣기 일쑤다. 누구나 40대가 되면 겪는 일이다.

문제는 40대 중반, 회사 내에서 팀의 리더가 되거나 임원이 되면, 떠맡게 되는 역할이 더욱 증대된다는 데 있다. 회사 내 상황을 전체적으로 파악하고 중요한 판단과 의사결정을 해야 한다. 조직 구성원을 잘 설득하고 다독이면서 리더십과 커뮤니케이션에도 능해야 한다. 무엇보다 업계의 큰 흐름을 읽고 트렌드를 파악하고 비전을 제시하는 능력이 요구된다. 다시 말해, 회사 내에서 정말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하는 것이다. 뇌 기능은 급격히 떨어지고 있는데, 과연 나는 내 업무를 잘 수행할 수 있을까? 리더에게 요구하는 능력을 나는 과연 잘 처리할 수 있을까? 도대체 성공한 리더의 뇌에선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어쩌면 '스티브 잡스의 뇌'가 궁금한 이유다.

이런 질문들에 대답하기 위해서 최근 경영학과 신경과학이 융합된 '뉴로리더십'(Neuroleadership)이라는 분야가 생겼다. 리더가 제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뇌 상태를 정확히 파악하고, 단점은 보완하고 장점은 살려나가야 한다. 뛰어난 리더들의 뇌에선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유추해보면서 조언을 주고, 리더로서의 자신의 역량을 강화하는 것이 이른바 뉴로리더십의 핵심이다.

시이오들에게 뇌 관리 조언

뉴로리더십을 배우기 위해, 요즘 미국 기업의 임원들이나 시이오들은 뉴로리더십 콘퍼런스에 참여하기도 하고, 뉴로리더십 저널을 구독하기도 한다. 특급 뇌과학자들이 초대된 이런 행사에서 경영 전략과 리더십에 대한 조언을 얻기도 하고, 자신의 뇌를 스캔해달라고 부탁하기도 한다.

일례로, 올해 11월 뉴욕에서 열리는 뉴로리더십 콘퍼런스에는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 매슈 리버먼, 컬럼비아대 케빈 옥스너 같은 신경과학의 대가들이 최신 신경과학의 연구 결과를 소개하고, <당신은 혁신가입니까> 같은 책을 쓴 <뉴욕타임스> 저널리스트인 애덤 브라이언트 같은 사람들이 신경과학을 바탕으로 리더들에게 실질적인 조언을 하기도 한다.

언젠가 뉴로리더십학회에서 애덤 브라이언트의 강연을 들은 적이 있는데, 그는 자신의 저서 <사장실로 가는 길>(The Corner Office)에서 많은 시이오들의 인터뷰 내용을 종합·분석해, 비즈니스 리더로서 성공하는 데 필요한 태도, 습관, 훈련법을 제시했다. 이런 강연을 통해 그는 시이오들에게 신경과학, 심리학, 인지과학 등 과학적인 근거를 가지고 매우 구체적인 조언을 하고 있었다.

뉴로리더십 분야가 가장 강조하고 있는 것 중 하나는 '자신감'이다. 자신의 뇌가 급격한 노화를 겪고 있으며, 리더로서의 업무를 수행하기에 부족함이 많다고 느낀다면 신경과학은 당신에게 '앞으로는 그럴 필요 없다'고 조언한다. 지금 당신의 뇌, 그러니까 중년으로 접어든 당신의 뇌가 지금 인생에서 가장 '절정의 뇌'라는 연구 결과가 신경과학 분야에서 꾸준히 증명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시애틀 세로연구소는 1956년부터 7년마다 6000명을 대상으로 뇌 인지능력을 검사해오고 있다. 그들이 주목한 것은 뇌의 여섯 가지 능력이다. 얼마나 많은 단어를 제대로 이해하고 그것의 동의어를 얼마나 많이 찾을 수 있는가를 보는 '어휘 능력', 얼마나 많은 단어를 기억할 수 있는가를 보는 '언어 기억 능력', 사칙연산을 얼마나 빨리 할 수 있는가를 보는 '계산 능력', 사물이 180도 돌아갔을 때 어떻게 보일지 얼마나 잘 식별할 수 있는가를 판단하는 '공간 지각 능력'(공간 정향 능력), 빨간색 화살표가 계속 나오다가 불규칙적으로 녹색 화살표가 나올 때 얼마나 빨리 단추를 누를 수 있는가를 보는 '반응속도', 끝으로 논리적 문제를 얼마나 잘 풀 수 있는가를 보는 '귀납적 추리 능력'이 바로 그것이다.

이들 여섯 가지 능력이 가장 초절정의 성과를 내는 나이대가 언제인지를 살펴본 것이다. 아마 10대 이하에서는 어휘 수를 포함해 대부분의 능력에서 부족함이 보일 테고, 80대에 접어들면 이 능력들이 예전 같지 않을 것이다. 그사이에 인생에 절정이 있을 텐데, 과연 우리 뇌의 성능이 최고조가 되는 시기가 언제인지 찾아본 것이다.

대부분 사람들은 내 인생에서 내 머리가 가장 좋았던 시기를 수능 시험 전날 정도, 혹은 20대 중반 어느 무렵이라고 떠올린다. 그러나 놀랍게도 이 중 네 가지 능력이 가장 좋은 시기는 45~53살 사이의 중년으로 나왔다. 20대 젊은이들은 사칙연산과 반응속도 검사에서만 중년들보다 좋은 결과를 보였을 뿐 다른 부문에선 모두 중년들에게 뒤졌다.

<뉴욕 타임스> 건강 섹션 편집자인 바버라 스트로치가 쓴 <가장 뛰어난 중년의 뇌>에 따르면, 중년의 뇌는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순발력은 다소 떨어지지만, 복잡한 상황에서 문제를 발견하는 능력, 글을 읽고 주제를 파악하는 능력은 매우 뛰어나며, 결과를 예측하는 능력 또한 우수하다.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 중년의 뇌가 그리 나쁘지 않다는 것이다.

지나친 상업화라는 비판도

다른 실험에서도 젊은 사람보다 중년의 위기관리 능력이 훨씬 더 나았다. 일리노이대학 신경과학자 아서 크레이머는 40~69살의 항공교통관제사와 항공기 조종사 118명을 대상으로 응급상황에 대처하는 시뮬레이션 실험을 했다. 그 결과, 나이 든 조종사들은 처음에 시뮬레이션 장치를 다루는 데는 시간이 걸렸지만, 핵심 조종기술과 문제해결 능력에서는 젊은 조종사들보다 더 뛰어났다. 심지어 엄밀히 얘기하자면 나이가 들수록 기억력이 떨어진다는 통념도 사실과 반드시 일치하는 것은 아니라는 주장도 있다. 미국 뉴욕마운트시나이의대 연구팀이 붉은털원숭이를 대상으로 기억력 테스트를 해본 결과, 나이가 들수록 단기 기억력은 떨어지지만, 중요한 사실에 대해서는 장기 기억 능력이 오히려 좋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는 나이가 들수록 더 지혜롭고 현명해진다는 사실을 경험으로 잘 알고 있다. 그것이 경험에서 온 것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지만, 중년의 뇌 전반에서 일어나는 보편적인 현상이라고 신경과학자들은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 당신이 리더의 자리에 있다면, 스스로에게 냉정히 물어보시라. 지금 이 위치를 언제 오르면 더 좋았을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신선한 뇌를 가진 25살에? 아니면 35살? 순발력은 떨어지지만 의사결정과 판단력이 훌륭한 지금, 감정을 더 잘 다스리고 경험이 충만한 바로 지금이 리더의 업무를 수행하기에 가장 적절한 때라고 쉽게 대답할 수 있을 것이다.

뉴로리더십 분야는 지나치게 상업적이라는 비판을 종종 받고 있다. 아직 신경과학은 리더십을 조언할 만큼 학문적으로 성숙해 있지 않다는 것이다. 섣부른 신경과학적 지식, 어줍잖은 뇌 기반 경영학적 조언이 오히려 사이비 분야를 만들어내는 것은 아니냐는 비판이다. 돈이 몰리는 비즈니스 분야에서 신경과학이 지나치게 확대해석되는 것을 경계하는 태도도 존재한다. 다만 리더십을 새로운 관점에서 들여다보는 계기를 마련한다는 측면에서 뉴로리더십 분야가 빠르게 성숙하길 기대한다.

* 이 글은 <한겨레>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