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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로남불'이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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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로남불'과 침소봉대가 문제다. 한반도를 둘러싸고 서로 내가 하면 로맨스요 남이 하면 불륜이란다. 또 확대해석하고 과장하는 것도 오랜 버릇이다. 해서 위기는 끝을 모른다.

"압도적인 힘의 우위를 기반으로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으로부터 대한민국을 보호"하겠다고 한다. 대한민국만 '압도적인 힘'을 추구한다면 대한민국은 진작 안전한 나라가 되었을 것이다. 문제는 대한민국의 압도적인 힘이 북에는 절대적인 불안의 근거가 된다는 현실이다. 북도 살기 위해서는 힘을 추구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북이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압도적인 힘을 추구하면 한국도 역량을 더 한층 강화할 수밖에 없다. 결국 한반도에서 군비경쟁은 날이 갈수록 치열해진다.

모두가 알고 있는 현실이다. 국제정치학자들은 안보 딜레마라는 이름까지 붙여놓았다. 그래도 이 딜레마를 빠져나오지 못한다. '내로남불' 때문이다. 내가 군사력을 증강하는 것은 '로맨스'이지만 남이 군사력을 강화하는 것은 '불륜'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오늘 한반도에 역지사지는 설 자리가 없다. 나의 '로맨스'가 남에게는 '불륜'으로 보일 수도 있다는 인식의 여유는 남아 있지 않다. 해서 압도적 힘을 추구하겠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발언은 우리 모두의 로맨스다. 북의 핵·미사일은 우리 모두의 불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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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로남불'이 판을 치는 세상에서는 당연히 물어야 할 질문들이 설 자리를 잃는다. 북은 도대체 왜 이 핵무기와 미사일들을 개발하고 있을까? 한국의 '압도적인 힘의 우위'가 그 구조적 이유는 아닐까? 한국의 경제 규모가 북의 45배이면 북은 위협을 느끼지 않을까? 북이 정부 예산의 다섯 배를 국방비로 지출해야만 한국의 국방비를 따라잡을 수 있다면 북은 위기감을 느끼지 않을까? 거기에 세계 최강의 군대를 보유하고 있다는 미국이 1950년부터 북에 핵무기 사용 계획을 가지고 있다면?

문제는 한국이 '압도적인 힘의 우위'를 누리지 못하는 것이 아니다. 한국과 미국이 너무도 압도적인 힘을 행사하고 있는 것이 문제이다. 북이 필사적으로 핵무기와 미사일에 매달리는 것은 압도적인 힘의 열세를 만회해보자는 것 아닌가. 여기에 또 '내로남불'을 들이대면 남는 것은 군비경쟁의 악순환밖에 없다.

이 악순환은 이제 침소봉대로 더 가속화된다. 북이 핵·미사일을 완성하면 미군을 몰아내고 적화통일을 추구할 것이라고 한다. 북한 정부 성명에서 언급한 "영토완정"을 김일성의 "국토완정"과 동일시하는 것은 그 정점이다. 김일성의 "국토완정" 발언이 한국전쟁으로 이어진 것처럼 김정은의 "영토완정"은 제2 한국전쟁을 시사한다는 것이다.

과장하지 말자. 이번 성명은 "나라의 주권과 령토완정을 수호"하기 위한 것이라고, '수호'에 방점이 찍혀 있다. 북한이 지배하는 영토를 수호하겠다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마찬가지로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도 과장하지 말자. "북한을 완전히 파괴"하겠다는 그의 유엔 연설에는 중요한 조건절이 있었다. "미국과 동맹을 방어해야 한다면" 북을 파괴하는 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전형적인 억제정책의 천명이다. 거기에는 선제공격도 예방전쟁도 없었다. 미국이 지난 60년 이상 유지해온 정책을 되풀이한 것뿐이다.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대표가 중국 방문 중 중요한 발언을 했다. "자위를 이유로 다른 나라의 평화를 위협하는 어떤 행위도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내로남불이 아니라면, 한국과 미국에도 이 발언이 적용된다면 한반도 평화의 단초는 여기서부터 만들 수 있다.

* 이 글은 한겨레 신문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