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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까지 '고대사의 사이즈'에 집착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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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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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도종환 내정자 청문회에서는 역사학계에서 우려했던 현실이 그대로 나타났습니다. 그 압권은 당연히 김세연 의원일 텐데, 진실에 부합하는 얘기는 별로 없었습니다(여기에 대해서는 따로 반박할 예정입니다). 도종환 내정자의 표정에서 '봐 나만 그런 거 아니잖아'라는 속내를 읽으며(제 느낌이 틀리길 바랍니다), 대부분의 국회의원들이 비슷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참으로 암담했습니다. 그런데 그게 결국 우리 근대사의 비극이 초래한 현실이니만큼 그들의 잘못이라고 탓할 수만도 없을 것 같습니다.

요 며칠 동안 제 페이스북에 포스팅한 역사 관련 글에 대한 댓글 중에 "역사학계에서 국민들의 공감을 얻을 수 있는 연구를 해달라"는 선의의 당부가 꽤 있었습니다. 이게 아마 우리 국민들의 역사 연구에 대한 일반 정서이자 기대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전문적인 학문의 영역에서 역사 연구는 국민의 공감을 얻기 위해서 하는 게 아닙니다. 진실을 추구하기 위해서 하는 것이지요. 물론 그 진실이 국민의 공감을 얻을 수 있으면 제일 좋겠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에도 증거에 입각한 진실이 우선일 수밖에 없습니다. 학문의 존재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으니까요. 물론 어떤 역사 연구자도 고대의 완벽한 역사적 진실에 도달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설사 그렇다고 해도 최대한 그렇게 추구해야 한다는 말씀이지요.

이러한 측면에서 제가 한 가지 강조하고 싶은 사실은 설사 일제 식민사학자들의 연구라도 학문적으로 인정받을 만한 것은 인정해줘야 한다는 점입니다. 물론 그들의 한국고대사 연구에서 정치성을 배제할 수 없는 건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들의 연구를 제대로 살펴본 연구자들 누구나 그 전반적인 연구 수준이 당시로서는 아주 높았음을 부인하기도 어려울 것입니다. 일제 식민지 트라우마가 너무 커서 한국고대사를 연구하는 학자들 누구나 이 사실을 알면서도 감히 얘기할 수가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당시 일본 학자들은 다 식민사학자이니 그들의 연구는 무조건 배척해야 하고, 그들로부터 교육을 받은 이병도 선생의 연구 역시 당연히 마찬가지로 취급해야 한다는 한국에 만연한 인식은 너무나 감정적입니다. 저 역시 이병도의 친일에 분노하고 독립운동가인 신채호 선생을 추앙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친일파의 연구라도 맞는 부분은 취하고, 아무리 독립운동가의 연구라도 비판받을 부분은 비판할 수 있어야 하는 게 학문의 세계라고 믿습니다.

저는 지금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역사논쟁의 본질적 원인이 바로 여기에 있다고 봅니다. 이미 70년이 넘어선 일제 식민지 청산의 관건은 결국 "한국인들의 자신감 회복"에 달려 있는 것 같습니다. 지난 수십 년간 전 세계가 부러워할 정도로 발전한 우리가 왜 이렇게 고대사의 사이즈에 집착해야 하는지 안타까울 뿐입니다.

과연 한국의 역사학자들이 어떤 길을 걸어야 할지 여러분들이 판단해주시기 바랍니다.

* 이 글은 필자의 페이스북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