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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치보다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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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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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최해선 더좋은민주주의연구소 선임연구원

하나의 유령이 여의도를 배회하고 있다. '협치(協治)'라는 유령이. 낡은 여의도의 모든 권력이, 국회선진화법을 폐기하자던 여당이, 선명야당을 부르짖던 제1야당이, 독자노선을 고수한다던 제3당이, 이 유령을 앞세워 신성동맹을 체결했다.

4.13 총선으로 여소야대의 3당 체제 의회가 출범하면서 '협치'가 한국정치의 핵심 단어로 부상했다. 먼저 새누리당 신임 원내대표가 '협치'를 20대 국회의 화두로 내걸었고,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도 "대화와 타협의 정치"를 하자며 호응하는 제스처를 취하고 있다. 국민의당은 한 발 더 나아가 '연정'까지 제안했다가 비판 여론이 거세지자 황급히 말을 거둬들였다. 언론과 사회 유명인사도 앞 다퉈 협치를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3당원내대표

ⓒ더불어민주당

그러나 '협치'의 실상은 상대방의 통 큰 양보를 기대하는 '동상이몽'에 불과한 듯 보인다. 여소야대 정국을 맞은 새누리당에게는 앞으로 여당을 도와달라는 뜻이고, 더불어민주당에겐 여당이 대통령을 설득해달라는 의미다. 캐스팅보트를 쥔 국민의당은 원구성에서 얼마나 많은 전리품을 얻어낼 수 있을지 협상력을 높이겠다는 뜻에 다름 아니다. 인터넷포털 지식검색에 "협치의 뜻이 뭐냐"는 질문까지 등장할 정도니 마케팅에 성공한 것은 틀림없는데, 진의가 무엇인지는 도무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그간 협치라는 단어는 통상적으로 '민관협치'의 의미로 사용됐다. 사회경제문제를 당사자의 직접 참여와 논의를 통해 해결해나가는 것이다. 행정부 주도의 일방적 통치(Government)와 비교되는 개념으로, 거버넌스(Governance)라고도 한다. 오직 선거 때만 투표를 통해 민의를 반영할 수 있는 대의민주주의의 대안 또는 보완제로 인식된다. 일종의 직접민주주의 혹은 참여민주주의 방식이다. 어찌 보면 자신의 역할과 효용에 대한 회의와 위협으로 여겨질 수 있는 이 단어를 대의기관인 의회가 마케팅에 활용하는 아이러니라니.

20대 국회가 말하는 '협치'의 의미를 협의제 민주주의(consensus democracy)로 해석하기도 한다. 소수의 이익도 보장하고 정치 과정을 통해 사회통합을 이뤄내자는 것이다. 승자독식 다수제 민주주의의 한계를 극복하려는 노력이다.

그러나 여기에도 전제는 있다. 각 정당이 대표하는 사회경제적 집단이 명확히 존재해야 한다. 각 정당이 선거에서 일시적 확장전략을 구사하더라도 더 이상 포괄할 수 없는 고유의 지지기반이 있을 때, 비로소 상대를 인정하고 협상이 가능해진다. 구성원의 인종, 언어, 종교, 지역적 차이가 뚜렷해 사회 갈등이 상존하는 국가들에서 협의제 민주주의가 발전된 이유다. 정당 간 차별점이 적고 유권자 스펙트럼도 상당부분 겹치며, 하부 기반 없이 명사 중심으로 운영되는 우리의 후진적 정당 구조에서 '협치'는 자칫하면 정치엘리트 간 '야합'으로 변질될 수 있다.

본래 듣기 좋은 말은 아무 것도 의미하지 않는 경우가 태반이다. 이제 그만 공허한 '협치 마케팅'을 멈추자. 독선과 독단으로 치닫는 청와대와 행정부의 '눈치'만 보지 말고 견제를 하라. 반대를 위한 반대만 거듭하며 지리멸렬하게 '대치'하던 의회를 바꿔 달라. 제대로 '정치'를 하자.

* 이 글은 더좋은민주주의연구소 홈페이지에도 게재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