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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4수' 끝에 당선된 전재수 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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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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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성장하는 정치' 꿈꾸는 전재수
- 선거 함께 뛴 스물 셋 청년을 보좌진으로 기용... 청년문제 해결, 담론보다 실천으로

5월 30일 20대 국회가 열렸다. '4수' 끝에 당선된 전재수 의원은 더불어민주당 '최고령 청년(만45세)'이다. 10년 4수생 삶을 살며 화장품부터 태극기 판매에 이르기까지 돈벌이가 될 만한 일은 다 해봤지만 '결국 내 몸에는 사업가의 피가 한 방울도 흐르지 않았다'는 교훈만 얻었다는 그를 개원 나흘 전 서울 서교동의 작은 녹음실에서 만났다. "오늘날 나만큼 힘들지 않은 청년은 없다. 청년 정책과 담론은 넘치지만 실천을 위한 관심과 애정이 부족한 게 문제"라는 전재수 의원의 청년 이야기, 정치 이야기를 들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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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개 부탁드린다.
= 부산에서 10년 동안 세 번 떨어지고 네 번째 만에 당선된 전재수다. 왜 세 번이나 떨어졌을까가 의문스러울 정도로 이번에 압도적 승리를 했다. 무려 1만 400표를 이겼는데 이럴 줄 알았으면 잠도 3시간씩 더 자고 그랬을 텐데... (웃으며) 너무 크게 이긴 것 같다.

- 앞으로 나흘 뒤면 국회의원이다. 기분이 어떤가?
= 법적으로는 그런데 마음은 이미 의원이다, 하하하. 10년 동안 한 마디로 '지옥 불구덩이까지 다녀온 내 인생의 영혼이여'라고 표현할 수 있을 정도로 힘들었다. 내가 우리당 규정에 의하면 아직 청년으로 분류가 되던데 세 번씩 떨어지고 네 번째 만에 당선되니깐 청년의 기상은 온데간데없다. 하도 진을 많이 빼서 지금은 사실 방전이 돼버렸다.

- 그래도 오래 꿈꿔온 국회라는 직장에 들어갔다. 신입사원같은 마음이 있을 것 같다.
= 당선되면 눈물도 나고 초등학생마냥 뛸 듯이 기쁠 줄 알았다. 보좌관으로 처음 국회에 들어간 지 17년 만에 다시 의원이 되어 들어가는 것이니 남다른 기분이 들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당선되고 나니 그런 게 별로 없더라. 이번에 부산 북구의 유권자들께서 무려 1만 400표를 이기게 해주셨다. 이제는 정말 일을 해서 일로 평가를 받아야 하는구나 라는 부담감, 그리고 그 부담감으로부터 오는 조급함이 생기더라. 이런 것들 때문에 기쁨 같은 것을 느낄 수 있는 여유가 없어진 것 같다.

- 가족들은 그래도 '고생 끝 행복시작' 이렇게 생각할 것 같다.
= 내가 항상 떨어지기만 했으니까 당선되고 난 뒤에는 가족들이 당연히 기뻐할 것이라 생각을 했다. 그런데 전혀 그렇지가 못하더라. 부모님은 바깥 출입을 못하고 계신다. 밖에 나갔더니 이웃 주민들이 '주차장 만들어내라,' '왜 교통 딱지를 이렇게 많이 끊냐' 등 이런저런 요구들을 많이 하니까 나가시기가 두렵다더라. 난 내가 좋아서 하는 정치이지만 집사람과 아이들, 부모님께는 늘 미안하다. 떨어지면 떨어지는대로 가족은 남몰래 눈물 흘려야 하고 당선되면 당선되는 대로 당신 한 마디에 아들에게 누가 되진 않을까 걱정하셔야 하고... 이래저래 아들로서, 부모로서, 남편으로서 참 미안하다. 개인적으로 갚을 길이 없기 때문에 좋은 정치로 보여드리는 길 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 2006년에 첫 출마를 했다. 참여정부 인기가 바닥을 치던 시기여서 선배들도 출마를 주저했던 때라고 들었다. 그런데 당시 막내였던 전재수가 출마를 결심했다.
= 선배들한테 가장 강렬한 인상을 남겼던 때가 2006년 선거였던 것 같다. 그 당시 노무현 대통령이 코너로 몰릴대로 몰려있던 상황이었다. 안 좋은 일만 생기면 '노무현 탓'하던 그 시절이다. 그래서 2006년 지방선거에 청와대 출신 누구도 출마를 안 하는 상황이 됐다. 그런데 내가 출마를 하겠다고 깃발을 드니 청와대 담배 피는 공간에 내가 나타나면 선배들이 다 도망을 가더라. 캠프에서도 막내였고, 청와대에서도 거의 막내급인 내가 그 어려운 상황에 구청장 선거를 나가겠다고 깃발을 들었으니, 혹시나 내가 같이 출마하자는 이야기를 할까봐 피했다고 하더라.

- 왜 출마를 결정했나?
= 그런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우리가 좋은 정책들을 준비해서 열심히 하고 있었는데 왜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낭떠러지로 몰려있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런 내용들을 설명하기 가장 좋은 공간이 선거라고 생각했다. 서울 수도권에 출마하라는 권유도 있었지만 거기서 내가 천지개벽할 일을 만들어낸들 아무런 추억도 없고, 아무런 인연도 없는 곳에 가서 무슨 감흥이 있겠나. 나를 키워준 부산으로 가서 일하는 게 맞고 이 어려운 판에 수도권보다는 더 어려운 곳으로 가자는 결심을 했었다.

- 2006년 지방선거에서 열린우리당은 처참하게 패배했다. 특히 선거 직전 당시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 피습사건이 기억난다. '대전은요?' 발언으로 선거를 평정했던... 그런데 이와 별개로 전재수 의원은 당시 꽤 많은 득표를 했다.
= 그 때는 명함을 받는 사람도 거의 없을뿐더러 우리 후보들이 불특정 다수를 만나러 길거리에 나갈 수 없을 정도로 험악한 상황이었다. 벌써 10년 전이니 지역주의 장벽이 견고하던 시절이었고, 또 박근혜 대표가 테러까지 당했기 때문에 우리당 후보에 대한 공격성이 극단적으로 표출됐던 선거였다. 그런 상황에서 '악'이 생기더라. 더 독하게 선거 운동을 했다. 밤 10시 넘어서 술집에 선거운동 하러 들어가면 멱살을 잡혀 이리 저리 끌려 다녔다. 새벽에 집에 들어가면 와이셔츠 단추 두 세 개는 항상 없었다. 어머니가 단추를 달아주시며 "야야 손아..."하시며 안타까워하셨던 기억이 늘 난다. 그런 때문인지 33%나 득표했다.

- 첫 선거에서 꽤 선전했기 때문에 오히려 '조금만 더'라는 심정으로 선거에 계속 도전한 것 아닌가?
= 맞다. 내 이름이 전'재수' 아닌가. 나는 첫 출마 하면서도 '떨어져봐야 재수밖에 더 하겠냐, 다음에는 되겠지'라는 생각을 했다. 결과적으로 4수를 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첫 출마를 안 했을지도 모른다.
나는 매번 선거를 마지막이라고 생각했다. 이번에도 선거 마칠 때 '손톱만큼이라도 여한을 남기면 안 되겠다'는 생각으로 모든 걸 다 쏟아 부었다. 떨어지더라도 미련이나 정치적으로 동원 가능한 자원이 하나도 안 남아 있어야 언제든지 홀연히, 흔쾌히 떠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 10년이란 세월이 결코 짧지 않다. 인고의 세월을 보냈을 것 같다.
= 한 철학자(라캉)가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타자의 욕망을 욕망한다." 우리는 남이 원하는 것을 내가 원하는 것으로 착각하고 살아간다는 거다. 얼마 전에 내 모교인 중학교에 특강을 갔었는데 학생들에게 뭐가 되고 싶은지 물었더니 전부 교사, 의사 이러더라. 우리들 대부분은 사회가 원하는 것을 마치 내가 원하는 것으로 착각하고 살아간다. 특히 많은 아이들은 부모님이 원하는 것을 자기가 원하는 것으로 착각하고 살아간다. 나도 선거에 몇 번 떨어지면서 왜 고민을 안 했겠나. 이것이 진정으로 내가 원하는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수없이 많이 했다. 내 경력에는 선거 세 번 떨어진 것만 나와 있지만 그 사이사이에 엄청나게 많은 방황과 좌절을 했다. 그런데 이 과정이 진짜 내가 원하는 것을 찾아가는 과정이었던 것 같다.
선거에 떨어지고 사업을 할 때 순간순간 희열을 느낄 때도 있었지만 단 한 번도 내 가슴을 울리지 못했다. 그런데 선거 때가 다가오면 가슴이 울렁울렁하더라. 이웃들 삶 속에 들어가 있는 게 가장 편하더라. 내 심장을 벌렁거리게 하는 일은 결국 정치구나 싶었다. 그것을 찾아나가는 과정이었기 때문에 두 번 떨어지고 세 번 떨어져도 버틸 수 있었던 것 같다.

- 사업도 여러 번 망행다고?
= 2009년 5월 23일 노무현 대통령이 돌아가셨다. '돈' 때문에 한 나라의 지도자였던 분이 모욕당하는 것을 보면서 '돈 한 번 벌어보자'는 생각을 했다. 화장품, 태극기, IT 제품 등 숱하게 많은 아이템들을 팔러 다녔지만 결국 확인한 것은 '내 몸에는 사업가의 피가 한 방울도 안 섞여 있다'는 것이었다.

- 아이템이 문제였던 것 아닐까?
= 그럴지도. 그런데 나는 이런 경험들이 있기 때문에 정부, 정치권에서 청년들에게 창업하라고 하는 모습에 아주 화가 난다. 창업, 진짜 장난이 아니다. 잘못하면 한 청년의 인생을 송두리째 망가트릴 수도 있다. 도전정신을 갖고 창업하라, 도전하라고 함부로 이야기하면 안 되는 것이다. 일자리를 만들어야지 왜 엄한 창업을 하라고 하나. 정부가 청년들에게 창업을 하라고 권하려면 좀 더 디테일하게, 빠진 밑구멍은 없는지 잘 살펴야 한다.

- 요즘 청년들은 단군 이래 최초로 부모세대보다 못 살게 된 세대라고 말한다. 청년들이 직면한 문제들이 정말 심각하다.
= 우리 사회가 청년문제에 대한 정책적 대안을 적게 갖고 있어서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청년과 관련된 담론이 부족한 것도 아니다. 청년문제에 대한 대안과 사회 전반적인 담론들은 차고 넘치는 것이 현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청년들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지 생각해보면 결국 정치권의 문제다.
우리 당만 하더라도 이번 당선자 워크샵에서 이런 이야기가 나왔다. 우리가 어르신들을 위해서는 참 많은 고민을 하고 대책을 세우는데, 정작 선거 때 우리에게 표를 주는 청년들을 위해서는 어르신들을 위한 고민의 10분의 1도 하지 않았다. 우리당만 그런 것이 아니라 정치권 전체가 그렇다. 다들 청년들을 대상으로 한 철 장사만 하고 마는 것이다. 진정한 애정을 갖고 이 사람들의 미래가 대한민국의 미래라는 생각으로 예산도 배정하고 중기, 단기 대책을 디테일하게 배치하는 노력이 정치권은 물론이고 정부에서도 부족한 것이다.
결국은 관심, 애정의 문제다. 지금 청년들이 실제 체감하고 있는 실업률은 20%, 30%다. 그래서 나는 정책, 담론보다 애정과 관심을 기반으로 하는 실천만이 남았다고 생각한다.

- 이번 국회의원 선거에서 청년층의 투표율이 크게 올랐다고 한다. 이러한 목소리에 대한 응답이 필요하다.
= 투표율에 따르면 60대 이상의 정치적 의사는 과잉 반영되어 있고, 40대 이하의 의사는 과소 반영되어 있다. 여기서 청년들이 해줘야 하는 역할도 있다. 과소 반영되어 있는 40대 이하의 청년들이 정치적 의사결정 과정에 깊숙이 관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정치권에서도 의제 설정에 있어 청년의 문제를 우선순위에 둘 것이다. 정치는 사회적 가치와 자원을 배분하는 영역이기 때문에 정치적 의사가 균형적으로 반영이 된다면 청년의 문제는 예산과 정책에 있어서 우선순위를 점할 수 있다고 본다.

- 하지만 더불어민주당도 그렇고 정치권 노령화가 심해지고 있다. 당에 청년들을 위한 공간이 그리 있어 보이지는 않는다. 이번 더민주 당선자 123명 중 30대 당선자는 단 1명에 그쳤다.
= 이번 총선을 기점으로 임계점을 넘었다고 본다. 이번에 청년들의 투표율이 많이 높아졌고 이에 대해 당이 반응을 하기 시작했다. 당선자 워크샵에서도 이러한 내용이 공론화돼서 구체적으로 대책을 마련하자는 논의가 이루어졌다. 어떤 그릇으로 담아낼 것인지 추후 논의를 더 해야겠지만, 청년의 문제를 담아내는 그릇들을 하나씩 만들어내는 계기는 마련되었다고 본다. 그런 과정에서 나도 적극적으로 역할을 찾아낼 것이다.

- 의원실 구성은 어떻게 했나?
= 선거가 끝나고 나면 보통 보좌진 구성을 놓고 가십기사들이 많이 나온다. 비판적인 기사의 공통적인 내용은 '실력, 능력이 검증되지 않고 국회경험과 전문성도 없는 사람들을 선거에서 고생했다는 이유로 보은성 채용을 한다'는 것이다. 나는 선거캠프에서 고생했던 사람들 위주로 참모진을 다 구성했다. 우리는 부산이라는 험지에서 무려 1만 400표를 이긴 캠프다. 어떤 전문성, 어떤 역량을 이야기하는지 모르겠으나 전문성이 부족하다면 열정으로 커버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우리 캠프를 무한신뢰한다. 국회경험이 있는 사람이 많지 않지만 선거를 이끈 열정과 역량을 봐서 기회를 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 그래도 국회 일이라는 것이 전문성을 요하는 경우가 많지 않나?
= 전문성을 요하는 일은 전문가 모셔서 잘 공부하면 되는 일이다. 대부분 국회 일들은 국민 상식에 부합하는 수준에서 결정해주면 국민들로부터 손가락질 받을 일이 없다. 대한민국 정치도 마찬가지고, 청와대도 마찬가지다. 정치는 함께 고생하고, 함께 성장하는 것이다.

- 혹시 의원실에 청년이라 부를만한 사람도 있나?
= 물론이다. 올해 대학 졸업반인 스물 셋 친구가 같이 일을 하게 됐다. 함께 선거를 뛴 친구인데 정말 일을 잘 한다.
내가 늘 이야기하는 것인데, 노무현 캠프에서 자신들은 국수 먹으면서 후배들 밥값 걱정해주던 선배들이 있었다. 막내로서 그런 모습을 보고 자랐기 때문에 나 또한 흉내내기 위해서, 따라가기 위해서 노력한다.

- '좌(안)희정 우(이)광재'라 불리던 선배들과 함께 하지 않았나. 이들에게 배운 게 있다면?
= 두 분은 기질적으로 좀 다른 것 같다. 이광재 전 지사는 혼자 생각하는 시간이 많고 결이 부드러우면서 정적인 분이다. 구상도 많이 하고 예지력과 내공이 상당하다. 굉장히 번뜩이는 분이다. 반면에 안 지사는 당구장에서 당구를 치면 이길 때까지 치는 사람이다. 우리 입장에서는 봉이기 때문에 너무 좋다(웃음). 굉장히 역동적이고 관계지향적인 사람이다. 많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지혜를 건져 올리는 스타일이다 보니 겸손의 리더십이 자연스럽게 형성된 것 같다. 그리고 안 지사는 의리나 신의를 호탕하게 표현해주는 사람이다.
이 두 사람을 반반 섞어 놓으면 노무현 대통령을 잇는 불세출의 걸출한 영웅을 만들어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더 많은 이야기가 있지만 그것은 두 분의 정치행보에 상당히 지장이 있는 이야기이기 때문에 여기까지 하겠다(웃음).

- 정치인으로서 이루고자 하는 바가 있나?
= 굉장히 추상적이고 유약해 보이는 표현일 수도 있는데, '따뜻한 이웃이 되는 정치'를 꼭 하고 싶다. 이번 내 선거 캐치프레이즈도 '이웃사람 전재수'였다. 지금 우리 사회는 너무 가혹하다. 세월호 희생자만 봐도 피해자인데, 안아주고 보듬어줘야 할 사람들을 벼랑 끝으로 내몰고 있다. 우리 청년들도 끊임없는 스펙경쟁에 내몰리고 있다. 도대체 어디까지 스펙을 쌓아야 청년들이 행복함을 느끼며 인생을 살아갈 수 있겠는가. 이 가혹한 사회에 브레이크를 걸 수 있는 표현은 느리고 더디지만 '따뜻한 이웃공동체'라고 생각한다. 눈물 흘리는 사람들을 보듬고, 외롭고 슬퍼하고 억울한 사람들을 외면하지 않는 정치, 사람의 도리를 다하는 정치를 하고 싶다.

- 마지막으로 청년들에게 한 마디?
= 우리 청년들이 정말 힘들다. 앞뒤가 꽉 막혀 있는 현실을 살아가고 있다. 내 격려가 손톱만큼의 힘도 안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힘내시라고 말씀드리고 싶다. 그리고 나는 국회의원으로서 역할을 다 할 것이다. 역할을 제대로 해서 청년들이 하고 싶은 일 하고 살아갈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데 최선을 다 할 것이다. 용기 내시라. 응원하겠다.

* 이 글은 더좋은민주주의연구소 홈페이지에도 게재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