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ffpost Korea kr
블로그

허핑턴포스트 블로거의 분석과 의견이 담긴 생생한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권인숙 Headshot

모병제, 여성에게 취업 길 열린다

게시됨: 업데이트됨:
1
연합뉴스
인쇄

2차대전 시기를 다룬 <라이언 일병 구하기> 영화 제목에서 라이언이 여성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을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2000년대 초 미국의 이라크 침공 당시 유명해진 '린치 일병'과 '잉글랜드 상병'이란 이름을 듣고 당연히 남성일 거라고 생각했다면 세상 소식에 뒤처진 사람이 된다. 둘 다 여자 병사였으며, 린치는 전쟁포로 구출사건의 조작된 영웅으로, 잉글랜드는 고문 가해자로 미국과 세계를 혼란과 충격에 빠뜨렸던 인물들이다. 이 둘은 이라크전의 추악한 이면을 드러내는 데도 큰 역할을 하였지만 더 이상 병사, 군대, 영웅, 전쟁, 희생이 남성 위주로만 상상되고 이야기될 수 없는 세상이 되었음을 많은 사람에게 확인시켰다.

주로 간호사로 대표되던 군대 참여 여성들이 이제는 많은 국가에서 병사로서 더 자연스러워진 것은 모병제의 결과다. 여성의 입장에서 여성 배제와 차별의 강력한 제도로 기능하였던 징병제보다 모병제는 훨씬 반가운 제도다.

오랫동안 많은 국가가 상시적으로 혹은 전쟁 시 징병제를 선택해왔다. 징병제는 시민권의 쌍생아라고 할 만큼 서구에서는 근대적 시민권의 성장에 큰 역할을 한 제도다. 징병제를 통해 '시민'은 신분, 계급을 초월하여 국가와 민족을 위해 자기희생을 하는 민족주의 국가를 키워왔다. 징병제하 군대는 여러 계층의 남성들이 같이 먹고, 자며, 훈련하고, 전투하는 남성연대의 격렬한 체험의 장이었고, 소수민족 남성이 공동체 성원권과 발언권을 얻는 최적의 통로이기도 했다. 목숨을 건 희생을 전제로 한 공적 역할로 남성들은 국가와 사회의 진정한 주체로서, 여성과 아이를 보호하는 '진짜 사나이'로서 위치를 다져나갈 수 있었다. 이 때문에 스웨덴같이 남녀평등의 성취가 높은 사회에서도 여전히 남은 성차별의 원인으로서 징병제를 지목하기도 하였다.

최근 여러 서구 국가들이 모병제를 선택하면서 여군의 비율이 급격히 올라가 미국, 프랑스에선 15%선에 이른다. 영국, 캐나다 등에서도 여성 비율을 높이려 하고 있고, 군대의 여성 통합에 대한 평가는 긍정적이다. 여군에게 금지했던 전투 조항이 여러 국가에서 해제되는 등 점점 성적인 역할 구분이 약화되고 있다. 여군의 선호도가 높아지는 데는 많은 나라의 군대에서 유엔 평화유지군 활동의 비중이 커지는 추세가 영향을 끼치기도 했다. 파견국 주민과의 유대를 형성하는 데 여성 군인이 장점이 많고 성매매, 성폭력에서 자유롭기에 효율적인 선택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여성 직업군인이 늘어나면서 '강한 남성-약한 여성', '보호하는 자(남성)-보호받는 자(여성)', 남성연대, 전우애 등 특정의 남성성을 실현하는 기관으로서 군대의 변화를 요구하는 목소리는 계속 커진다. 최근 여러 나라에서 사회적 이슈로 크게 떠오른 군대 내 성폭력 때문에 더욱 그렇다. 미국의 경우 2010년 이후 군대 내 성폭력은 하루도 언론에서 뉴스로 등장하지 않은 날이 없다고 할 만큼 폭발적인 관심과 대책을 이끈 이슈였다. 여성이 늘어나서 성폭력이 많아진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이 아니다. 예로 미 공군은 미 해병대보다 여성 비율이 훨씬 높지만 성폭력 발생률은 현저히 낮다. 소수인 여성을 약자화하는 문화, 약자를 폭력적으로 대하는 서열문화, 여성을 성적 대상화 하는 문화가 성폭력의 중요한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고, 변화를 위해 군대가 지향하던 남성성에 대한 고민도 깊어진 것이다.

모병제와 관련하여 여성의 입장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로 볼 부분은 취업 기회의 확대다. 저임금과 비정규직 같은 고용 불안정의 더 큰 피해자인 여성에게 상대적으로 안정된 직장인 군대의 취업은 의미가 크다. 군대가 가난한 남성의 공간이 된다는 것이 모병제에 대한 중요한 반대논리이지만 여성은 상대적으로 많은 계층에서 선택한다. 직업적 안정성뿐만 아니라 여성에게는 드문 공적 권력자(군인)가 된다는 선망과, 미국과 같이 대학교육 기회를 제공하는 경우 일찍 독립적 삶을 기획하는 데 유리하기에 다양한 계층의 여성이 참여한다.

한국에서도 모병제 이야기가 나오고 있고, 일부 여론조사에서는 찬성이 반대보다 높게 나온다. 기사를 쓴 이도 댓글을 다는 이도 거의 모두 남자들이다. 그러나 여성의 삶에 참정권만큼 징병제, 모병제는 중요한 제도다. 당연히 여성들도 열심히 판단하고 논쟁해야 한다. 여러 사회에서 여성 병사가 당연한 것처럼 한국에서도 군대제도는 여성에게도 중요한 이슈임을 알리는 것이 첫 출발점이다.

* 이 글은 <한겨레>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