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팟캐스트, 남자만의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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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ttyimage/이매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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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꼼수다'에 푹 빠졌던 경험 이후 인기 정상의 정치 팟캐스트 몇 개를 열심히 듣고 있다. 최신 정치 관련 정보를 방송이나 신문보다 깊게 분석하지만 가벼운 형식으로 주변 이야기와 함께 전달하니 이해도 쉽고 재미있다. 지난 몇 년 몰염치와 몰상식의 현 정부와 무슨 짓을 해도 확고한 그들의 지지층을 보며 생겼던 우울감과 분노를 매주 이 팟캐스트들의 새 에피소드 업로드를 기다리며 달래왔다. 인기 있는 정치 팟캐스트의 영향력은 대단하다. 100만 다운로드 이상의 에피소드도 많아 중요 정치사안에 대한 정보와 분석 제공뿐만 아니라 특정 정치인의 평가나 홍보의 장도 되고 공동행동의 선동의 장이 되기도 한다. 많은 정치인이 앞다투어 출연하고 있고, 김어준씨의 팟캐스트는 민주언론시민연합과 함께 '종편 때찌'라는 프로젝트를 시작했는데 기금 마련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한 지 한 주 만에 매월 수천만원을 정기후원하는 약정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아쉬운 점도 있다. 남성 독점이 너무 심하다는 것이다. 중요 정치 팟캐스트는 대부분 남성들로만 구성되고 여성들은 정치인으로 소개되는 것 외에는 패널로서 거의 초대되지 못한다. 정치나 관련 지식의 남성 독점이 심했던 한국의 현실에서 당연한 면도 있다. 정치 팟캐스트 특유의 자아도취적 독불장군식의 말투에 여성들이 잘 적응 못하는 느낌도 든다. 하지만 편향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에 대한 조심스러움도 없고 혹은 나아지려는 조짐도 보이지 않을 때는 답답해진다.

7월 초 인기 정상의 '노유진'을 잇는 '노유진 2'의 야심찬 첫 기획으로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과 함께 '낱낱이 파헤쳐주마! 맞춤형 보육'이라는 한국의 아동보육 문제를 논하는 자리가 마련되었다. 그런데 패널은 모두 남자였다. 사회자는 맞춤형 보육이라는 단어를 제대로 읽지도 못할 정도로 낯설어 하였다. 다른 남자 패널 두 명도 보육 문제에 대한 경험이나 지식을 쌓을 기회도 없었던 사람들로, 그나마 그중 한 명이 약간 공부를 하고 온 정도였다. 내용은 유시민씨가 장관 시절의 경험을 토대로 보육 전반에 대한 철학을 펼치는 것으로 채워졌다. 보육을 시장 논리에 맡기는 것이 현 실정에선 낫다는 것과 가정양육에 적게 지원되는 차별을 줄여야 한다는 등의 이야기였다. 논란이 많은 주제를 다루면서 경험과 논리가 우세한 사람이 한 명만 출연한 것이 우선 아쉬웠다. 무엇보다 관점이 문제였다. 보육의 효율성 혹은 어린이집의 양과 질을 통제하는 방식만 이야기될 뿐, 보육을 주로 전담하고 보육정책에 의해 취업이나 생활방식이 좌우되는 여성의 삶을 어떤 시각에서 함께 봐야 할지에 대해서는 언급조차 없었다. 물론 한 번의 논의 안에 모든 시각을 두루 갖추지 못할 수 있다. 그러나 애초에 보육을 논하면서 여성 전문가 패널을 한 명도 부르지 않았다는 것이 그저 놀라울 뿐이었다.

얼마 전 '김어준의 파파이스'는 더불어민주당 전국여성위원회 위원장(여성 최고위원 겸직) 선거에 나선 두 명의 후보를 초대해 그들에 대해 알아보는 자리를 마련하였다. 김어준씨 자신도 253개 지역여성위원회를 총괄 지휘하는 중요한 자리라며 초대의 변을 세웠지만 막상 후보들에게 단 한 번도 여성과 관련한 질문은 하지 않았다. 후보들이 여성위원회를 어떻게 이끌지, 여성 유권자에 대한 시각은 어떠한지, 여성 관련 주요 의제는 무엇인지에 대해 묻지 않았다. 여성과 관련된 활동 경험이 어느 정도인지도 확인할 길이 없었다. 유은혜 후보가 답변 중에 관련 이야기를 조금 하였지만 사회자는 관심을 주지 않았다. 김종인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등 현 정치판에 대한 평가와 원외·원내 후보의 차이 등이 관심 주제로 이야기되었다. 그러나 청취자 중 상당히 있을 당원들이 후보의 차별성을 확인하는 주제로서 여성에 관한 이야기는 없었다. 여성위원회를 누가 더 알차게 끌고 갈 수 있을지, 혹은 더민주에서 여성의 이슈를 어떻게 세워야 할지 고민할 기회를 무시하면서, 결과적으로 누가 더 나은 후보인지를 판단할 기준을 망가뜨려버렸다.

이것저것 배려하지 않는 독단적이고 일방적인 주장의 전개가 팟캐스트의 재미이기도 하고 어떨 땐 속이 후련해지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여성의 삶이 얽히는 문제에 이런 식의 여전한 겁 없음, 무지 또는 무시는 곤란하다. 그것이 차별의식과 왜곡된 시선을 위장하는 용도로 늘 쓰이기 때문이다.

* 이 글은 <한겨레>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