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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여성 가방 속 콘돔, 세상을 바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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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ttyimage/이매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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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가 고프면 ○○ 가서 포도 따듯이 툭툭 따먹어" "몸이 좋은 여성들 봉씌먹(봉지 씌우고 먹다)" "박고 싶어서". 최근 서울대 남학생들의 단체카톡방 사건에 올라왔던 문자 일부이다. 그들에게 동료 여학생들은 몸만 가진 존재, 성욕의 대상으로만 극도로 단순화되어 있다.

성폭력 예방 교육을 할 때 중년의 교육 대상자에게 늘 묻는다. "20대 따님 가방에서 콘돔이 나오면 어떨 것 같아요?" 성별과 직업에 무관하게 거의 한결같이 질겁하는 모습이다. "민망하겠지만 내 딸은 책임감 있는 성생활을 하고 있구나라고 내심 안심할 것 같은 부모님 있나요?"라고 물으면 다들 기막히다는 듯 웃고 만다. 학생들에게도 수업 시간에 같은 질문을 몇 년째 하고 있다. 대부분 "너 무슨 짓 하고 돌아다니는 거야"라고 부모님이 실망하면서 화를 낼 거라고 예측한다. 실제로 한 남학생은 누나와 자기가 둘 다 콘돔 소지를 하다 엄마에게 들킨 일이 있었는데 자기에게는 별말씀 없던 엄마가 누나에게는 욕설을 하셨던 경험을 이야기하였다.

요즘 부모들은 딸이 연애를 하는 것에 대해서는 관심도 많고 긍정적이다. 딸이 대학에 들어간 뒤 내가 많이 들었던 덕담식의 질문은 "딸 연애하나요?"였다. 내 친구들 사이에서 딸이 남자친구가 있다는 것은 자랑거리인데, 딸이 남자들에게 인기 있고 결혼도 무난하게 할 것 같은 증거이기도 하고, 청춘을 즐기는 상징도 되기 때문이다. 가장 성적일 수밖에 없는 활동인 연애는 지지하고 기대하면서 피임을 생각하면 몸서리가 쳐지는 것은 왜일까?

한국 사회에서 20대 여성(특히 초·중반)의 성에 대한 시선은 복잡하고 모순적이다. 가장 집중적으로 성적 대상으로 선망되거나 이용되면서, 가장 성적으로 무지하거나 순진할 것을 기대받는다. 서울대 단톡방 사건같이 20대 남학생들만 비슷한 나이대의 여성을 극도의 성적 대상으로 보고 있을까? 2014년 기업이 룸살롱이나 요정 등에서 접대비나 회식으로 쓴 돈이 1조2천억원이다. 기성세대 남성에게 젊은 여성은 일상적인 성적 대상이다. 한편 젊은 남학생들도 또래 여성이 성적으로 무관한 혹은 무지한 삶을 살았길 기대하는 경우가 많다. '혼전 성관계는 오케이, 그러나 내 여자는 내가 첫 남자'였으면 좋겠다는 남학생들이 적어도 늘 반 이상은 된다.

극단적인 성적 대상화는 돈으로 상대방의 성을 지배할 수 있다거나 나의 욕망만이 중요하다고 여길 때 가능해진다. 상대도 욕망을 가진 존재임이 고려되는 환경에서는 일방통행식의 상상이나 관행이 쉽게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젊은 남성의 성욕과 다양한 성적 활동은 사실 이른 청소년 시기부터 자연스럽게 비친다. 내가 만난 엄마들은 청소년 남성의 성욕을 이해하는 차원에서 아들의 자위 등을 위해 티슈를 준비해 주라는 어떤 성교육 강사의 주장을 바람직한 지침으로 자주 이야기했다. '왜 엄마가 그것까지 챙겨야 해'라며 내심 반발했지만, 청소년기 남성들의 성 욕망은 존중 혹은 인정되는 것이 분명하다. 청소년 시기만 지나면 상대 성과의 섹스도 당연한 것이 된다.

반면에 청소년기 여성의 성적 욕망에 대해서는 우리 사회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나? 문화매체를 통해 서구 사회에서 이들이 강한 성욕을 보이는 모습은 자주 확인하지만 우리는 어떤 이야기도 사회적 차원에서 하지 않고 있다. 20대 여성은 언제 성욕을 가진 존재로, 섹스를 하는 존재로 인정되는가? 성인식 이후에? 연애는 몰라도 섹스는 아니다. 30대는 되어야 성욕을 드러내는 것이 그래도 받아들여지는 듯하다.

그러나 20대 여성은 사회나 가족이 무엇을 기대하든 많은 성적인 활동과 결정을 하고 있다. 20대 여성을 위한 피임약 광고는 그 현실성을 반영한다. 섹스, 피임, 임신, 낙태, 출산은 이들의 삶에 함께하는 주제들이다. 이를 이야기하지 않는다고 20대 여성의 삶이 성과 무관해지지 않는다. 감추고 외면할수록 남성들의 일방적인 성적 대상화는 계속 이상하게 진행되고, 여성들의 성적 삶을 불편하고 수치스럽게 바라보는 시선이 이어질 것이다. 무엇보다도 이런 시선이 20대 여성들의 피임이나 임신에 대한 결정에 혹은 그 결정과 관련한 사회문화에 계속 재앙과 같은 영향을 미칠 것이 걱정이다. 높은 20대 낙태율, 세계 3위라는 미국으로의 영아 입양, 동성애 다음으로 차별받는 미혼모라는 현실의 한가운데 이 시선이 자리잡고 있다.

* 이 글은 <한겨레>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