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허핑턴포스트 블로거의 분석과 의견이 담긴 생생한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최인호 Headshot

왜 독립하지 못하는가?

게시됨: 업데이트됨:
인쇄

the

[대한민국에서 디자이너로 살아간가는 것⑤]

출근하지 않는 디자이너가 되려면 먼저 퇴사(독립)가 선행되어야 한다. 아니면 소속회사에서 재택근무(리모트 근무)를 인정하든가. 2016년 산업디자인 통계조사에 따르면 혼자 일하는 디자이너(프리랜서, 1인 디자인 기업 등)는 41,214명이다. 이들은 대부분 회사를 다니다가 독립해 혼자 일하는 디자이너들이다. 적어도 한번쯤은 퇴사라는 경험을 해본 사람들이다. 퇴사의 목적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크게 두 가지로 압축된다.

이직과 독립

이직은 이전 회사보다 한 가지라도 더 나은 상황을 찾아가는 것이 좋다. 더 안 좋은 조건을 일부러 찾아 회사를 옮기는 경우도 있을까? 또 하나의 목적인 독립. 독립을 하면 1인 디자인 기업이 되거나 직원을 고용해 스타트업을 시작하기도 하고, 프리랜서가 되기도 한다.

퇴사, 누구나 꿈꾸지만 녹록치 않은 현실 탓에 쉽게 결정하지 못한다.
우리는 왜 독립을 못할까?

회사에게 디자이너란 소모품이다.

회사에 다니고 있는 디자이너들과 만나면 항상 힘든 이야기를 한다. 야근 이야기, 스트레스 이야기, 직장 내 파벌. 정치 이야기... 그럼 내가 항상 묻는 이야기가 있다.

"왜 퇴사를 안 해요?"
"나가고는 싶지. 하지만 안정적인 삶을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에 나갈 수 없어."

우리는 왜 회사를 못 나올까? 이에 대한 대답 중 하나가 이것이다. 그럴 수 있다. 독립한 디자이너들은 굉장히 불안정한 시기를 거친다. 회사에서 받던 월급이 없는 상태에서 퇴직금 까먹으며 한 달 두 달 버티다 보면 이게 맞는 건가 싶다. 부양하는 가족이 있다면 문제는 더욱 심각해진다. 한 달에 들어가는 고정비가 있기 때문이다. 가족들 식비, 차량 유지비, 애들 학비, 부모님 용돈, 대출금까지. 월급을 받을 때는 당연하게 지출했던 여러 고정비들이 월급이 끊기면 엄청난 부담으로 다가온다.

두 번째 대답으로는
"사업을 해본 적이 없어서..."

첫 번째와 마찬가지로 사업을 해본 적이 없기 때문에 안정적인 삶에 대한 보장이 없다는 건데, 나는 이렇게 반문하고 싶다.

"그럼 지금 당신의 삶은 안정적인가?"

현재는 그 어떤 시대보다 불확실한 시대임에는 틀림없다. 당장 내일 아침 내가 다니던 회사가 없어질 수 도 있다. 대기업은 안정적인가? 일반 기업보다 더 효율을 따지는 게 대기업이다. 오늘 이 회사가 구조조정을 했으면, 내일은 저 회사가 구조조정을 한다. 명예퇴직 신청하라는 메일이 매일 아침 날아온다. 진행하던 사업의 실적이 안 좋으면 제일 먼저 쳐내는 게 홍보 계열이고 디자인계열이다. 기업에 있어 디자이너란, 싼 가격에 언제든 새로 찾을 수 있는 소모품에 불과하다.

아직도 내 밥통은 안정적이라고 생각이 되는가?

the

1인 기업 포럼이라는 정기 모임이 있다. 1인 기업가들이 모여서 만든 '1인 기업회식 날'이라는 프로젝트에서 발전한 모임인데, 매월 혼자 일하는 1인 기업가들이 모여 네트워킹도 만들고 비즈니스 정보도 나눈다. 포럼에 참가하는 1인 기업가들의 퇴사 이유가 다양하긴 하지만 생각보다 타의에 의해 퇴사한 경우도 많다. 구조조정을 당하기도 하고, 보직 변경으로 인해 퇴사한 케이스도 생각보다 많다. 퇴사는 분명 선택의 영역이지만, 선택지가 하나인 선택일 수 도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또 하나의 대답으로 "그런 생각할 시간조차 없다" 가 있다. 디자이너는 바쁘다. 항상 바쁘다. 일을 쳐낼 시간도 모자란데, 전시도 봐야 되고, 영화도 봐야 되고, 책도 읽어야 한다. 디자인은 트렌디한 직업이니까, 유행에 뒤쳐지면 망하니까. 다람쥐 쳇바퀴 도는 듯한 삶의 굴레 속에서 벗어날 여유가 없는 것이다. 오죽하면 생각도 일이라고 하겠는가.

퇴사하고 혼자 일하는 것은 직업상의 변화만 뜻하는 것이 아니다. 퇴사 이후의 삶에 대한 라이프스타일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집과 회사, 월급만을 보며 직진만 하던 삶에서 가끔 후진도 해보고 커브도 틀어보며 방향과 속도를 내 마음대로 정하는 삶으로 바뀌는 것이다. 물론 퇴사 이후의 삶이 아름다운 꽃길이라고는 말할 수 없다. 그런데, 퇴사 이전의 현실도 어차피 꽃길은 아니다.

연봉 1억의 디자이너?

우리나라에 억대 연봉자가 59만 6천 명(2015년 기준, 2016년 발표)이나 된다고 한다. 그런데, 그중에 디자이너는 몇 명이나 될까? 디테일한 조사가 없어서 인용은 못하겠지만 그리 많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분명히 우리나라에도 억대 연봉을 받는 디자이너는 존재한다. 방송에 성공한 디자이너로 나오는 몇몇 디자이너 출신 CEO들은 가능할 듯싶다. 회사에 소속된 디자이너로서 억대 연봉을 받는다면? 나라면 그 회사에 뼈를 묻고 충성을 다 할 것이다.

1인 디자인 기업으로 독립하고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이 한 해에 얼마나 버느냐이다. 나는 2005년에 독립했는데, 그때 당시 내 또래 디자이너들이 대부분 3~4년 차들이었으니까 내 목표는 적어도 그들보다는 많이 버는것 이었다. 한 달에 300만 원 정도만 벌면 되니, 그다지 부담되는 금액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독립 후 3개월간은 정말 힘들었다. 다니던 회사에서 디자인 업무 공백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발주한 프로젝트 하나를 진행하고 3개월간 아무 일이 없었다. 3개월 동안 회사 이름도 짓고, 로고도 만들고, 홈페이지를 만들었다. 그 이후엔 조금씩 일이 들어오면서 1년 정도 되었을 때는 비슷한 연차의 디자이너들보다는 훨씬 많은 연봉을 받고 일하고 있었다. 그때 착각했던 것이, 내 경쟁상대는 또래 디자이너들이 아니라 나와 같은 분야의 일을 하는 디자인 회사였다는 것이다. 나는 소박하게도 또래 디자이너들 보다만 많이 벌면 된다라고 생각하고 사업을 했으니, 사업의 규모가 커질 리 만무했다.

꿈은 크게 가지라고 했던가? 연봉 1억은 대부분의 디자이너들이 갖고 있는 꿈의 숫자가 아닐까 싶다. 독립하고 처음으로 매출이 1억이 넘었을 때 세상을 다 얻은 느낌이었다. (물론 비용을 제한 순익은 뚝 떨어지긴 했다.)

누구에게나 처음은 있다. 처음엔 누구나 힘들다.

사업을 경험해보고 독립하는 케이스가 있긴 있지만 많지 않다. 대부분 아무런 경험 없이 맹수들이 우글대는 필드에 서게 된다. 나도 마찬가지다. 회사를 다니며 일했던 분야로 독립을 하긴 했지만, 거래처는 양심상 그대로 두고 몸만 빠져나왔다. 어떻게 영업을 하여야겠다는 플랜이 있었기 때문에 굳이 동종업계 선배들과 척을 지고 싶지 않았다. 영원한 적은 없으니까 말이다.

난 독립한 첫해에 얼마를 벌었을까?

사업자등록을 한 후 제일 처음 세금계산서를 발행한 금액이 200만 원이었다. 퇴사 직전 내 월급이 200만 원 남짓이었으니 일주일 만에 월급을 번 셈이다. 첫 매출을 퇴사한 회사에서 받았으니, 월급의 연장선인 것 같기도 했다. 이후 3개월간은 일이 없었고, 궁여지책으로 선택한 일이 말도 안 되는 단가의 일이었다. 당시 업계 평균단가의 10분의 1 수준의 일을 수주했다. 대신 양이 많았으니 잘만 처리하면 괜찮을 듯싶었다. 강연을 주로 하던 컨설팅업체였는데 강연자료와 홍보용 브로슈어를 꽤 많이 의뢰했다. 단가는 낮았지만 업무량이 많아서 그럭저럭 괜찮았다. 내 창업 첫해는 그렇게 작은 금액들이 모여 4,000만 원 정도의 매출을 만들어냈다.

매출 규모를 늘려야겠다고 생각했던 건 3년 차 때부터이다. 1년 차 때 시장에 진입하기 위해 썼던 저가전략이 내 발목을 잡았다. 싼 가격에 높은 퀄리티의 작업물을 납품했으니 일을 많이 해도 매출은 늘지 않았다. 그래서 이런 방법을 썼다. 저가로 받았던 고객은 그대로 유지하고, 신규 고객이 의뢰했을 경우 높은 단가로 작업을 수주받았다. 그렇게 단가를 조금씩 높여나가니 매출도 조금씩 상승했다. 그리고 어느 순간 저가로 처리하던 고객의 일을 받지 않아도 될 정도의 매출이 나오기 시작했고, 해당 고객들에게는 더 이상은 그 단가로 진행할 수 없다고 양해를 구했다. 어렵던 시절을 함께했던 동지 같은 고객들이라 미안한 마음도 있었지만, 나는 1인 디자인 기업이기 때문에 선택과 집중이 필요했다.

난 이렇게 힘든 '처음'을 극복했다. 처음이란 누구에게나 힘들다. 아니 힘들어야 한다. 그래야 이후의 성공이 더욱 값질 수 있는 것 아닐까?

the

한 번도 디자인 회사에서 일해 본 적 없는 디자이너

나의 회사 생활은 결코 길다고 말할 수 없다. 2년 2개월밖에 안 했으니. 그런데 필드에서 만난 디자이너들 중에는 회사생활을 아예 하지 않았던 디자이너들도 꽤 있다. 취업을 준비하며 틈틈이 프리랜서 생활을 했는데, 생각보다 괜찮아서 1인 디자인 기업으로 자리 잡힌 케이스도 있고, 일반 회사를 다니다가 퇴사하고 디자이너로서 제2의 삶을 사는 케이스도 있다.

퇴사를 경험한 디자이너들은 출신 회사의 영업방식이나 수익구조를 답습하는 경우가 많은데, 나도 그중 하나다. 나도 다니던 회사에서 일했던 업무, 업무 방식 등을 그대로 1인 기업에 맞게 적용해가며 일을 하고 있다. 회사 경험이 없으면 회사의 운영을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었는데, 회사를 다니지 않았던 1인 디자인 기업들을 보면 꼭 그런 것만은 아닌 것 같다.

그들은 그들 나름의 영업방식과 운영방식을 구축해 사업을 영위하고 있고, 디자인스타일도 기존 회사에서 보지 못했던 신선함이 있어서인지 고객만족도 높다. 고용주에게 소속되어 끊임없이 소비되던 디자이너가 아니라 자신만의 방식으로 클라이언트를 찾아 수익을 만들어내는 주체적인 디자이너들이다.

이렇게 아무런 경험도 없는 디자이너도 할 수 있는 디자인 회사를 왜 시작 못할까?
왜, 퇴사하지 못할까? 답은 자신에게 있다.

* 이 글은 필자의 브런치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