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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이 직업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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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줄 긋기> 『소명으로서의 정치』, 막스 베버 지음, 박상훈 옮김, 후마니타스,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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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이자! 분노하자! #내려와라 박근혜 3차 범국민행동' 문화제가 12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려 시민들이 촛불을 들어올리며 박 대통령의 퇴진을 촉구하고 있다.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근대국가의 발전은 어디서나 군주가 그와 공생해 왔던 독립적이며 '사적인' 행정 권력을 소유한 계층의 권한을 박탈함으로써 시작된다.

고등학교 시절. 좋아했던 선생님도 있었지만, 지금 생각해도 고개를 젓게 만드는 선생들도 있었다. 그렇다면 '싫어하는 선생'을 이야기할 때 내가 가장 먼저 떠올리는 사람은 누구? 수학 선생님? 100점 만점에 9.5점이라는 가공할만한 점수를 받았던 나이지만, 그렇다고 수학 선생님을 특별히 싫어하지는 않았다. 선생님도 나를 포기했고, 나 역시 수학을 포기했으므로 맘 편하게 지냈다(아직도 기억난다. 선생님이 칠판에 문제를 쓰시고 나를 호명하시고는 "니, 모르재?"라고 하셨던거... 얼마나 고마웠던지). 서로(?) 방해만 하지 않으면 됐었으니까. 아니면, 나중에 사생활이 문란하다고 소문이 자자하게 퍼지고만 지리 선생님? 역시 아니다. 선생님도 인간이고 '선생님으로서의 사생활'이 있는 거니까. 그럼 누구? 다름 아닌 문학 선생이었다.

문학. 문학은 국어, 영어, 작문 등과 더불어 내가 수업을 듣고 공부했던 몇 안되는 과목이었다. 물론 문학이라고 해봐야 결국 2학년 때부터 수능 언어영역 문제지를 펴놓고 수업하는 것에 불과했지만. 그래도 언어영역 지문을 읽는 게 내 학교 생활의 즐거움 중 하나였으니 불만은 없었다. 그런데 한 사건 때문에 나는 남자 문학 선생을 가장 싫어하는 선생으로 기억하고 있다. 당사자는 기억하지 못할지도 모르지만 나는 그 순간을 생생히 기억한다. 그 결정적인 사건은 고 3때 여름 벌어졌다.

문학시간. 그 선생의 특기는 문학 자습서를 들고 들어와서 교탁에 펴놓고는 주욱 읽어대는 것이었다. 보통 상의를 벗어서 교탁 앞에다가 펴놓고는 자습서를 가렸다. 물론 가린다고 우리들이 모를 리 없었지만. 어쨌든 그날도 수업은 지루하게 계속되고 있었다. 내 눈꺼풀은 지루함을 이기지 못하고 내려앉고, 몸은 자연스럽게 수면 모드로 접어들 무렵. 우리 반의 한 친구가(사실은 1년 재수해서 형이라고 불렀다) 문학 선생에게 불려 나갔다. 이건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는데, 잠을 자다 걸리거나 한 거 같지는 않다. 만화책을 보다 걸렸나, 아님 떠들다 걸렸나 그랬을 거다. 뭐, 그게 중요한 건 아니니까, 수업 중에 딴짓을 하다가 걸렸다고 해두자. 선생은 무척이나 화가 났는지 학생에게 고래고래 소리를 치기 시작했다. 수업 받기 싫으냐, 여기 왜 앉아있냐, 니 놈이 정신이 있냐, 등등. 그러다가 급기야 교실에서 나가라고 소리를 쳤고, 교실 분위기는 더욱 썰렁해졌다.

자, 여러분이 만약 이런 상황에 처했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글쎄, 나라면 그냥 나갈 거 같다. 나가라고 했으니까. 안 나가는 것도 반항처럼 보일 것 같고 그러니까. 그 친구도 역시나 나와 같은 생각이었는지 나가라는 소리를 3번 정도 듣자 힘없이 걸어서 뒷문을 열고 나갔다. 그 찰나. 그 선생의 얼굴이 더욱 울그락 불그락해지더니만, '저 XX가 어디가냐', '저 XX 잡아와라'는 둥 더 소리 치기 시작했다. 나도 그제서야 알아챘다. 아... 나가면 안되는 거였구나. 맨 뒤에 앉아있던 친구가 뒷문을 열고 복도로 걸어가던 그 친구를 불렀다. 그리고 다시 선생 앞에 섰다. 다음은? 건장한 체격의 그 선생은 기대에 부응이라도 하듯 그 친구의 뺨을 세차게 후려치기 시작했다. 나가란다고 진짜 나가냐, 선생이 니 장난감으로 보이냐, 라고 소리치면서. 그 친구의 얼굴이 뻘개져서 붓기가 오를 때까지 때렸다. 그리고는 다시 나가라고 소리를 쳤다. 두 번째 질문. 이럴 때 여러분은 어떻게 할 것인가? 슬슬 헷갈릴 거다.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그 친구는 어찌해야할지 헷갈려서 그냥 고개 숙이고 서 있었고, 결국 욕만 더 먹고 교실 밖으로 나가야 했다.

하지만 내가 그를 싫어하는 이유는 그게 아니다. 그 사건이 그렇게 끝났다면, 기억력 좋지 않은 내가 이리 생생하게 기억할 리가 없다. 당시 남고 학생들 사이에서 그렇게 두들겨 맞는 것은 자주 볼 수 있는 광경이었으니까. 내가 그 선생을 기억하는 건, 폭력 때문이 아니라 '말' 때문이었다. 선생은 '무대' 위에서 그 친구를 내보내고나서도 잠시 씩씩 거리다가 우리에게 낮은, 그러나 흥분한 음성으로 설교하기 시작했다. 옛날에는 선생의 그림자도 밟지 않았다는 등의 뻔한 이야기. 하긴, 수업에 집중하지 않는 학생을 보며 모멸감을 느꼈을 수도 있겠다 싶다. 하지만 당시의 내가 그 소리를 귀담아 들었을 리는 만무하고, 그저 빨리 수업이 끝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을 뿐이었다. 그가 하는 말을 한귀로 듣고 한귀로 흘리고 있던 그 순간. 결정타 한 방이 들어왔다.

"선생이 직업이가!!!"

그랬다. 그 사람은 선생을 직업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전교조니 어쩌니 하는 것들도 이해할 수 없는 거였다. 신성한 교육을 수행하는 것은 직업이라고 할 수 없으며, 또한 노동이라는 말을 붙이는 것은 더욱 가당치 않은 일이었던 것이다. 그는 그렇게 이야기하면서 학생을, 그것도 다른 모든 친구들이 보는 앞에서 폭행했던 것이다. 그리고 '자율학습 감독비'라는 가당찮은 명목의 돈을 부모들로부터 받았던 거다. 또 그러면서도 자율학습 시간에 술냄새를 풍기며 자율학습 태도가 불량한 학생을 복도로 불러내어 각목으로 엉덩이를 가볍게 두들겨줬던 거다. 그가 지껄인 그 말을 들은 이후 나는 그를 무척이나 싫어하게 되었고, 그 이후로 그를 선생님이라고 부른 적이 없다.

뻔뻔스럽게도 "선생이 직업이가!!!"를 외친 그 선생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던 걸까. 그의 머릿속에 들어있는 '직업'과 '노동'의 개념은 어떤 것이었을까. 교사가 직업이 아니라면 대체 뭐란 말인가. 그는 분명 교사로서의 직업적 소명의식도 없었음에 분명하고, 또 스스로도 그것을 알았음에 틀림없다. 그렇지 않고서야 배우는 입장인 우리들에게 선생이 직업이냐고 되물었을 리가 없다. 지금에서야 그에게 대답을 하지만, 선생은 '직업'이다. 그리고 직업은 '일'을 한다는 것이고, 일을 한다는 것은 '노동'을 의미한다. 그건, 부끄러운 것이 절대 아니다. 노동이 '소명의식'과 더해진다면, 그건 되려 자랑스러운 것이다.

막스 베버의 강연을 엮어 책으로 만든 게 바로 '직업으로서의 정치'다. 여기서 직업은 '소명'으로도 번역할 수 있다. 막스 베버는 모든 직업에는 소명이 필요하며, 특히나 정치인은 더욱 특별한 소명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는 다음과 같은 말로 강연을 마무리했다.

자신이 제공하려는 것에 비해 세상이 너무나 어리석고 비열해 보일지라도 이에 좌절하지 않을 자신이 있는 사람, 그리고 그 어떤 상황에 대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라고 말할 확신을 가진 사람, 이런 사람만이 정치에 대한 '소명'을 가지고 있다.

슬프게도, 현 대통령은 자신이 차지하고 누리려는 것에 비해 세상이 너무나 고분고분하지 않은데도 좌절하지 않는 사람인 것 같다. 그러면서도 지금 바닥조차 보이지 않는 이 상황에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라고 말할 확신을 가진 것 같아 무섭다. 진심으로 묻고 싶다. 당신에게 대통령은 '직업'이냐고. 그 자리에 요구되는 최소한의 소명이 당신에게 있기나 하냐고. 언제나 그렇듯 당신은 답하지 않을 것이기에, 우리가 먼저 답을 해야할 것 같다. 대통령은 직업이다. 그것도 소명의식이 필요한 중요한 직업이다. 무능한 데다 부패하기까지 했다면, 물러나 죄에 맞는 처벌을 받는 것이 당연하다. 당신은 이미, 대통령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