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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은 어떻게 '경마 천국'이 되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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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ng Kong Jockey Clu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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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인구 열 명 중 여덟 명이 도박에 열중하는 나라, 19세 이하 청소년 열 명 중 네 명이 도박하고, 그중 세 명은 10살 이전에 도박을 배우는 나라.

정부 각료, 의원, 문화예술계 저명인사, 대기업 CEO, 심지어 교육계 고위인사가 도박조직의 회원, 또는 회원이 되기 위해 발버둥 치는 나라. 이런 나라가 있다면 제대로 된 나라일까? 이러고도 나라가 굴러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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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마일 경마꾼들이 밀물처럼 밀려든다. < 사진 출처: Hong Kong Jockey Club >

2016년 5월 마지막 주, 퀸 엘리자베스 2세 대상경주가 열리는 홍콩 샤틴 경마장을 찾았다. 하루 몇 번씩 비가 내리는 날씨에도 일요일 오후부터 꾸역꾸역 지하철이 사람을 풀어놓는다. 하루 80만 명이 경마장 또는 시내에 있는 화상경마장을 찾는다. 땅값 비싸다는, 부동산 가격이 세계 최고라는 비좁은 홍콩에서는 보기 힘든 잔디가 펼쳐지고, 정면에는 푸른 강이 흐른다. 초록의 경주로와 베이징올림픽 크로스컨트리 경기장으로 사용했던 잔디가 펼쳐진다. 1경주에 출전하는 말이 예시장에 선보인다. 말마다 주인이 따로 있다. 말의 주인인 마주(馬主)와 마주의 가족, 친구들이 예시장에 가득 찬다. 결혼식에 나온 듯 말끔한 넥타이 차림이다. 여자들은 챙이 긴 모자에 화려한 드레스를 썼다. 경주를 보러 온 관객에 대한 인사와 팬 서비스다. 우리나라 경마장에서는 찾을 수 없는 모습이다. 대형화면을 통해 앵커와 해설자가 한 마리, 한 마리 경주마를 소개한다. '뷰티풀!', '액셀런트'를 연발한다. 12 필의 말이 녹색 잔디로 나오고 경주가 시작된다. 굽 소리가 난타하는 북소리 같다. 환호와 탄성이 쏟아진다. 결승선까지 10여 필의 말이 한꺼번에 몰려 들어온다. 홍콩 경마는 열 경주 중 서너 경주가 말의 머리 차 또는 코 차로 승부가 난다. 나머지 경주도 말 한 마리 거리 차를 넘기는 법이 없다. 누가 우승했는지 가늠하기 어렵다. 우승한 말의 마주, 기수, 환호하는 경마꾼의 모습이 모니터에 비친다. 우승한 기수가 경주로를 다시 지나가며 세레모니를 펼친다. 마권을 맞힌 사람, 못 맞힌 사람 모두 축하한다. 2등 한 말, 3등 한 말, 4등 한 말이 관중석을 지나가며 인사한다. 모두 맥주 마시며 파티를 즐긴다.

홍콩은 경마의 나라, 도박의 나라다. 홍콩 경마는 1841년 영국인이 홍콩에 상륙하면서 시작됐다. 175년의 역사를 가졌다. 경주를 주관하는 도박조직, 홍콩자키클럽(Hong Kong Jockey Club: HKJC)은 130년 전에 설립된 비영리조직이다. 처음에는 시내에 있는 해피밸리경마장에서 경마가 있었다. 지금은 수요일에만 이곳에서 경마가 열린다. 1978년 시 외곽에 샤틴 경마장을 개장하고 주말 하루 경마를 연다. 2차 세계대전 때 잠시 경마를 멈춘 것을 제외하고는 중단 없이 경마가 이루어졌다. 8월 한 달만 쉬고 연중 경주가 벌어진다. 경마 도박 방식도 다양하다. 1등 말 맞히기, 1․2 등 말 맞히기는 기본이고, 1등부터 4등까지 순서대로 맞히기, 4개 경주의 우승마 맞히기, 두 개 경주 1․2등 맞히기 등 다양하다. 맞히기만 하면 10불 걸어서 1억을 벌 수도 있다. 이렇게 배당이 크다는 것은 적중해서 맞히는 사람이 한 사람이면, 못 맞혀서 돈 잃는 사람이 수만 명이라는 말이다. 돈 잃은 사람은 화나지 않을까?

대부분 화내지 않는다. 자신의 선택이 잘못되었고, 자신에게 운이 없었다. 행운이 아직 자신의 것이 아니었다. 기분 나쁘지 않은 더 중요한 이유가 있다. 경마를 시행하는 홍콩자키클럽(HKJC)은 비영리 단체다. 경마해서 번 돈을 자기들이 갖는 조직이 아니다. 경마해서 번 돈은 어디에 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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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마장에는 가장 화려한 차림으로 온다. < 사진 출처: Hong Kong Jockey Club >

홍콩은 쇼핑의 천국이라고 한다. 물건 살 때마다 내야 하는 부가가치세, 영업세 같은 간접세가 없다. 세금이라고는 개인소득세, 자산 소득세, 사업소득세뿐이다. 그 세율도 15%, 16%에 불과하다. 홍콩 정부를 유지하는, 홍콩을 움직이는 세수는 어디서 확보할까? 최대 세금납부자가 홍콩자키클럽(HKJC)이다. 작년 한 해만 200억 홍콩 달러를 세금으로 냈다. 도박꾼인 홍콩시민이 자신이 배팅해서 잃은 돈을 홍콩 정부에 세금으로 냈다. 배팅해서 잃은 돈은 세금으로 냈다? 조금 위로가 된다.

이게 전부는 아니다. 홍콩 경마꾼이 돈 잃어도 기분 나쁘지 않은 이유는 HKJC의 목적과 사명에 나와 있다.

'말을 통해 지역사회에 독특한 임무를 수행하는 것, 정부의 세수 확보에 기여하고, 홍콩시민을 위해 최고의 자선과 기부, 복지를 제공하는 것'이다. HKJC의 연차보고서를 보면 경마도박단체의 보고서인지, 사회봉사단체의 보고서인지 구분이 어렵다. 목차와 CEO 메시지, 회장의 메시지, 회계자료 모두가 자선사업, 더욱 나은 홍콩을 위한 복지 사업, 소외계층 기부사업, 미래 홍콩을 위한 전략사업으로 구성된다. 클럽 회장의 메시지는 이렇게 시작된다.

'2015년은 HKJC 130년 역사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해였다. 한해 우리의 자선과 기부금액이 39억 홍콩 달러를 기록했고, 홍콩정부에 200억 달러를 세금으로 냈으며, 우리의 자선재단이 홍콩사회의 장기발전을 위해 필요한 3대 핵심 복지․기부전략을 수립하는 해였다. 홍콩 시민과 더불어 홍콩을 더 나은 사회로 만들기 위해 함께 성장했고 홍콩의 말들이 세계 랭킹에서 급상승한 해이기도 하다.'


HKJC의 비전은 경마와 스포츠 엔터테인먼트 분야에서 세계를 선도하는 것, 최고의 기부와 자선단체, 후원자가 되는 것이다. 자선과 기부, 사회복지 기여가 HKJC의 궁극적인 목표점이라는 것을 분명히 하고 있다. HKJC는 세금을 제외한, 최소 운영경비를 제외한 전액(이익잉여금)을 자선·기부·복지사업에 사용한다. 홍콩 인구의 75%가 이 혜택을 받고 있다. 규모 면에서 자선 기부단체 세계랭킹 6위에 올라있다. 도시국가 홍콩의 기관이다. 대단하지 않은가?

130년 역사를 가진 자선 기부재단인 만큼 이 분야에는 남다른 전문성과 역량을 보유하고 있다. 수동적인 기부에 머물지 않는다. 미래 홍콩에 필요한 사회복지 요구를 대학과 함께 예측해서, 스스로 프로젝트를 만들어 낸다. 2015년에는 희망찬 미래를 위한 청소년의 역할 강화, 노인층에 친숙한 홍콩, 스포츠를 통한 즐거운 삶이라는 3대 복지 분야를 미래 사업방향으로 선정했다. 기부, 지역사회 프로젝트가 189개에 달한다. 일일이 나열할 수 없다. 특색 있는 몇 가지만 나열하면 이렇다. 유명한 홍콩과학기술대학, 홍콩시민병원을 직접 운영한다. 2만 실의 대학생 기숙사 제공, 부자와 사회보장계층 사이에 끼어 있어서 의료비 부담을 느끼는 샌드위치 계층에게 원스톱 의료서비스와 병원비를 제공하는 서비스, 재난안전센터운영, 정신장애인을 위한 재활단지 건립 운영, 노인치매치료센터 운영, 홍콩문화예술 지원, 역사적 가치가 있는 홍콩중앙경찰청 건물 복원 및 도시 활성화 사업....... 헤아릴 수 없다. HKJC 직원 1,200명도 6만 시간 자원봉사활동을 펼쳤다. 이쯤 되면 베팅해서 잃은 돈이 기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그 돈, 홍콩의 최고복지단체가 홍콩시민을 위해, 가장 효과적으로, 가장 필요한 곳에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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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발표한 3대 복지사업전략 가운데 하나인 '희망찬 미래를 위한 청소년의 역할 강화' 사업. < 사진 출처: Hong Kong Jockey Club >

그래도 경마 도박해서 번 돈으로 자선․기부․복지사업을 한다는 게 조금은 꺼림칙하지 않을까? 도박으로 인한 부작용, 특히 도박중독자를 양산하면서 기부와 자선을 강조하는 게 옳을까?

홍콩과기대학이 2012년 연구한 결과에 따르면, 홍콩 사람의 도박중독에 대한 관심은 컸다. 문제도박 또는 도박중독 위험이 높은 도박은 경마, 축구 토토, 마카오 카지노 순이었다. 홍콩인에게는 로또가 가장 대중적인 도박이었고, 마작이나 포커, 경마, 마카오 카지노, 축구토토 순으로 참여도가 높았다. 이 가운데 HKJC는 경마, 로또, 스포츠 토토를 운영한다.

중국인들이 도박을 매우, 매우, 매우, 매우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데 세계의 모든 학자가 동의한다. 중국인만큼 도박을 즐기는 사람은 없다. 15세부터 64세까지 인구의 67.4%가 일상적으로 도박을 즐긴다. 절반이 10살 전후에 도박을 시작한다. 그런데 문제가 되는 도박 또는 도박중독의 가능성이 있는 사람은 1.4%다. 그 수치도 점점 낮아지고 있다. 세계적으로도 낮은 수준이다. 미국 3.2%, 영국 2.5% 등 청교도 정신이 뿌리내린 나라보다 낮은 수준이다. 어떻게 이게 가능할까?

98%의 홍콩주민들은 과도한 도박을 자제하라는 정부의 슬로건을 잘 알고 있었고, 조사대상자 모두가 HKJC가 제공하는 반 도박 프로그램과 도박 끊기 지원에 대해 알고 있었다. 도박 상담 핫라인과 도박중독 상담․치유센터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었다. HKJC는 도박중독 예방을 위해 3억6천만 홍콩달러를 지원하고 있고, 가장 효과적으로 도박중독 예방활동을 벌여, 세계도박협회가 인증하는 도방 중독관리 최고등급인 레벨 4등급을 획득했다. 이 등급을 획득하려면 ① 도박중독을 줄일 수 있도록 경주를 디자인해야 하고, ② 이해관계자가 도발중독 예방활동에 몰입해야 하며, ③ 일반에게 도박중독의 위험과 예방에 대한 교육을 상시 실시하고, ④ 종업원에게 도박 관련 업무보다 중독을 막기 위한 책임도박이 우선임을 교육하며, ⑤ 도박 시행체가 문제도박과 중독예방에 대한 치유 서비스 제공하고, ⑥ 개인의 책임 하에 감당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도박하도록 하는 방법과 제도를 마련하며, ⑦ 이런 모든 활동이 제대로 수행되는지 정기적으로 점검해야 하는 엄격하고 어려운 절차를 통과해야 한다. HKJC는 이 등급을 아시아 최초, 세계 두 번째로 획득했다. HKJC의 창구직원은 의무적으로 도박중독자들이 도박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통제하는 교육을 받아야 하고, 이런 고객에 대처하는 방법을 훈련받는다.(경마보다 도박중독 예방이 우선이라는 이들의 인식은 경주일정에서 보여준다. 경마일정을 부정기적으로 배치했다. 정기적으로 경주를 열면 도박 매출은 늘어나지만, 도박중독자를 양산한다. 연중 금․토․일 3일간 정기적으로 경마하는 한국과는 큰 차이가 있다. 연중 정기적인 경마는 도박중독자 양산의 지름길이다. 한국의 사행산업감독위원회가 도박중독예방에 관심 있다면 눈여겨볼 대목이다.)

도박을 시행하는 모든 나라가 가장 골머리를 앓는 것이 불법도박이다. 불법도박이 합법도박보다 도박중독자 발생비율이 높을 뿐 아니라, 개인과 도박중독자 가족에게 큰 피해를 주기 때문이다. 불법도박에 참여하는 사람은 관리도, 교육도, 치유와 상담도 어렵기 때문이다. 세수 유출도 크지만, 불법도박 자금은 범죄조직의 자금으로 흘러들어 가 또 다른 범죄로 이어진다. 우리나라의 바다 이야기, 배추밭 현금다발 사건, 스포츠 토토, 축구경기 조작 등에서 보듯 도박참여자와 관계자를 죽음으로 몰아가는 경우도 많다.

도박을 시행하는 모든 나라가 불법도박을 엄중히 단속하지만, 범죄자 입장에서는 이보다 매력적인 사업을 찾기 어려우므로 근본적인 단속은 어려운 실정이다. 우리나라만 해도 합법도박의 규모가 20조(2014년)인 데 반해, 불법도박의 규모는 101조에서 160조(한국형사정책연구원)에 이른다.

홍콩은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했을까? 중국의 통치철학답게 오랑캐로 오랑캐를 물리치는 방법, 이이제이 병법을 택했다. 합법도박 사업자인 HKJC에게 불법도박을 막게 한 것이다. 불법도박 색출과 수사단속권을 준 게 아니다. 합법도박을 불법보다 매력 있도록 지원하는 방법을 택했다. 불법도박의 매력인 배팅 금액 무제한, 높은 환수율, 배팅손실액에 대한 리베이트, 도박장에 손쉬운 접근 등 불법도박이 무기로 내세우는 것을 HKJC가 한발 앞서 할 수 있도록 허용해 준 것이다. 모든 불법 조직이 내세우는 무기, 합법조직에는 허용하지 않는 무기를 HKJC의 손에 쥐여 준 것이다. 직관에 반하는 조치다. 배팅 금액을 무한대로 하면 더 많은 중독과 파산자가 나오지 않을까? 하지만 합법도박에서 이걸 막으면 그들은 불법도박시장으로 간다. 어차피 막지 못하는 것이다. 차라리 합법조직에서 허용하고 관리하는 것이 낫다. 환급률이 낮아지면 세수가 줄어들지 않을까? 환급률을 고수하다 불법도박에 뺏기는 세금이 더욱 크다. 쉽게 도박장에 접근할 수 있도록 홍콩 곳곳에는 화상경마장이 있다. 편의점 가듯 마권을 살 수 있다. HKJC 도박매출의 90%가 경마장이 아니라 화상경마장에서 나온다. 모든 이를 합법도박시장으로 끌고 온 다음, 이들에게 자신의 책임 하에, 감당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도박하는, 책임도박정책을 교육하고 중독자를 조기에 발견해서 상담하고 치유하는 방법이다. 그래서 도박중독자와 불법도박의 규모가 줄었냐고? 홍콩의 불법 도박은 0.1%로 세계 최저 수준이다. 합법도박을 엄격하게 통제하고 불법도박을 단속하는 어떤 나라보다 낮은 수치다. 문제도박 또는 도박중독률 1.4% 또한 어떤 나라보다 낮은 수치다. 중국계 인구비율이 높은 싱가포르와 마카오가 불법도박과 도박중독으로 머리를 앓고 있는 것과 대조적이다. 이들 국가에서는 불법 축구토토가 만연해 있고, 범죄조직은 월드컵 경기까지 조작하며 이익을 얻으려 한다. 홍콩에는 이런 문제가 없다.

이쯤에서 또 다른 반론을 제기할 수 있겠다. 경마, 그거 동물 학대 아닌가요?

맞는 말이다. 세계적으로 경마가 동물 학대라는 동물보호단체의 목소리가 높다. 미국에서는 캘리포니아에서만 600마리의 말이 경주 중 부상으로, 또는 다리가 부러져 죽는다. 경주마의 다리가 부러지면 타고 있던 기수도 떨어져 크게 다친다. 경주만 위험한 게 아니다. 훈련에서 부상하는 말이 더욱 많다. 미국의 경우 이미 부상을 입고, 고통받는 말을 통증 마취제 처치 후 경주에 내보내, 경주마가 부상으로 죽어 나가는 것이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한국의 경우 넓은 초지를 뛰놀던 말을 하루 23시간 비좁은 마방에 가두어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리게 하는 것이 문제가 된다. 경마 시행체인 마사회는 이 부분에 무관심으로 일관하고 있다. 하지만 동물복지단체가 가장 비난하는 것은 경주 중 또는 훈련 중 부상이 아니다. 경주마로서 수명이 끝난 말의 처리다. 미국에서는 해마다 경주마를 포함해 매년 9만 필에서 14만 필의 말이 도살장으로 간다. 버려지거나 보호받지 못한다. 도살되어 고양이 먹이로 팔린다. 호주도 다르지 않다. 호주에서는 해마다 10,000여필의 말을 장총으로 살해하고 동물 먹이로 사용한다.

우리나라에서는 1년에 1,500필의 경주마가 생산된다. 경주마로 오기 전에 다치고, 안 팔리고, 질병으로 죽는 말이 대략 500필이다. 천 마리가 경마장으로 들어온다. 훈련과 경주에서 치명적인 상처를 입어 안락사하는 말이 연중 100필에서 150필이다. 750필에서 850필이 세 살 때까지 살아남는다. 이 가운데 절반은 건강한데도 성적 부진으로 도태된다. 1,000필이 경마장에 들어오면 1,000필이 나간다. 1,000마리의 말이 나오면, 평균적으로 100필이 번식용으로 새로운 삶을 찾는다. 성적을 낸 암말이다. 평균적으로 200필이 부상으로 죽는다. 나머지 700필은 승마장으로 간다. 승마장으로 가면 승마용으로 적합한 몇십 두를 제하고는 나머지는 어떻게 처리되는지 모른다. 아무도 모른다. 2014년에는 멀쩡한 경주마를 잔인한 방법으로 다리를 부수거나, 머리를 내리치는 방법으로 보험금을 타려던 목장주와 마주가 경찰에 적발되어 충격을 주었다. 국제 동물보호단체는 경주가 끝난 말에 대한 비인도적인 처리에 분노한다. 홍콩은 다를까?

그들은 다르다. 우선 경주마의 부상이 적다. 우리나라는 1,600두의 말 가운데 270두가 부상으로 휴양 중이다. 열 마리 중 두 마리가 부상 중이라는 말이다. 홍콩은 1,100두의 말이 있지만 쉬는 말은 10두 내외다. 공식적인 데이터는 없지만, 그들이 보유한 부상치료를 위한 마구간이 10개뿐이라는 것으로 짐작한다. 한국의 경주마가 두 살 후반에 경주마로 데뷔해서, 대략 2년도 있지 못하고 퇴역해서 행방불명되지만, 홍콩 말들은 12살, 13살 말이 수두룩하다. 오히려 이 나이에 최고의 능력을 발휘한다. 얼마나 효율적으로 말을 관리하는지 알 수 있다.

은퇴한 말은 어떻게 될까? 해마다 은퇴하는 소수의 말은 더욱 특별히 관리한다. HKJC가 운영하는 BREC이라는 승마센터가 이 역할을 담당한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되고, 가장 좋은 퇴역경주마 관리시설이다. 경주마에서 은퇴하는 말은 수의사의 건강검진을 받고 적합한 용도를 결정한다. 이후 장기간에 걸쳐 단계적으로 국제적으로 공인된 영국의 전문 인력이 경주마를 승용마로 변환하는 교육을 수행한다. 길고 오래 걸리는 작업이다. 말의 체형을 바꾸고, 태도와 마음가짐을 바꾸는 작업이다. 누가 타도 안전하고 순종적인 말로 전환하는 작업이다. 이렇게 순치가 끝난 말은 우선적으로 해당 말의 마주에게 제공된다. 은퇴하는 순간 소유권은 HKJC로 넘어가지만, 마주는 영구임대권을 보유해서 임대료를 지불하고 영원히 그 말을 탈 수 있다. 필요한 말 관리 지식과 승마기술은 HKJC와 BTEC가 끝까지 제공한다. 마주가 타지 않겠다고 하는 경우, 그 말은 BREC에서 일반인을 태우거나, 말을 효과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중국 본토의 승마장에 기증한다. HKJC는 7개의 승마시설을 직접 운영하고 있고, 승마 비용은 우리 돈 5만 원 정도다. 최근에는 말이 절실히 필요한 개발도상국에 기증하는 사례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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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EC를 찾은 홍콩 시민들 < 사진 출처: Hong Kong Jockey Club >

이쯤 되면 경마도박협회인 홍콩자키클럽의 회원이 되기 위해 내로라하는 사람들이 발버둥 칠만 하겠다. 회원이 되어도 말의 소유주인 마주가 되는 길은 맨발로 만리장성을 넘기보다 어렵다고 한다. 마주가 되었다는 것은 홍콩사회의 주류 지도층으로 공인받았다는 것이고, 부와 명예를 과시하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이 주말에 경마장에 있으니 홍콩의 정책은 경마장에서 결정된다는 말이 회자한다. 말 가격이 최저 1억이 넘고, 경주에 나가서 받은 상금으로는 말의 훈련비와 관리비, 말값에 턱없이 부족한데도 말 사려는 사람이 넘쳐나는 이유다. 수용할 수 있는 마구간은 1,100두로 한정되다 보니 말을 더 사도 둘 곳이 없다. 말살 권리는 추첨으로 정한다. 정말 운이 좋아야 좋은 말이든, 나쁜 말이든 살 수 있다. 그렇게 어렵게 한 마리 갖게 되면, 이 말이 경주하는 날은 집안의 잔칫날이다. 가족과 친구, 친지 모두가 경마장에 모인다. 우승이라도 하면 가문의 영광이다. 말을 가운데 두고 사진 찍고, 웃고, 기념하고 난리가 아니다.

우리 한국은? 돈만 있으면 누구나 마주가 된다. 일부 마주의 불법과 탈세, 경마부정이 한 해가 멀다 하고 기사화된다. 그런 사람을 뽑아 놨다. 2015년 마사회장이 된 사람은 취임 일성으로 '말 빼고 다 바꾸라'고 지시했다. 실제로 멀쩡한 정문 부수고, 잘 자라는 나무 뽑고. 쾌적한 경주로 안쪽 가족공원 파 헤집고, 수명이 수십 년 남은 의자까지 다 바꾸었다. 경마관계자와 극한 대립을 펼치며 제도와 법까지 모두 바꾸었다. 오직 한 가지, 학대 받는 경주마, 말을 학대하는 현장만 그대로 두었다. 소홀한 도박중독 예방활동과 불법도박 현장만 그대로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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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경마장에서는 경주가 끝날 때마다 이런 모습을 볼 수 있다. 말의 우승은 집안의 경사다. < 사진 출처: Hong Kong Jockey Club >

어느 나라든 역사적 발전경로(path dependence)를 무시할 수 없다. 역사적 발전경로에 따라 다른 모습을 가진다. 경마는 영국에서 결혼기념일, 아내의 생일 같은 기념할 만한 날에, 아내를 위한 이벤트로 영국의 귀족들이 말 달리기 시합을 하던 관습에서 출발했다. 말 달리기는 곧 서민들의 큰 구경거리가 되었고, 귀족들은 고가의 말을 사고, 큰 비용을 들여 경주하는 것을 평민들을 위한 봉사 또는 기부, 노블레스 오블리주로 여겼다. 그 전통이 기부와 자선으로 발전했다.

한국 경마는 일제 강점기 전쟁에 필요한 말을 확보할 목적으로 일본총독부가 시행했다. 경마에 대한 부정적 시각의 출발점이다. 해방 후에는 정부가 세수확보를 목적으로 - 경마로 인한 도박 중독과 사회적 폐해는 눈감으며 - 매출 확대에만 매달렸다. 국가기관인 사행산업감독위원회 조사 결과 도박중독자가 5.4%에 달할 정도로 심각한 도박중독국가가 되었고, 경마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부정과 범법행위가 사회면을 장식했다. 화상경마장이 허용되면서 마사회의 이익은 비약적으로 증가했지만 이렇게 번 돈은 흔적 없이 사라졌다. 국정감사가 있을 때마다 국회의원들은 시행체인 마사회 직원의 과다한 급여와 복리후생비를 지적했고, 경마부정과 직원의 불법을 지적했다. 심지어는 낙하산으로 앉은 마사회장 또한 재임 중 비리 또는 재직 후 비리가 밝혀져 구속되는 사례가 다반사였다. 도박중독자가 양산되면서 사행산업감독위원회가 발족하고, 가장 기본적인 정책 자료인 도박 중독률을 발표하자, 그 수치의 정확성을 두고 3년째 논쟁만 벌이고 있다. 도박중독자를 위한 조치를 마련하기도 전에 중독률 숫자 싸움으로 해를 보낸다. 경주마에 대한 일상적인 학대는 시설 노후화와 함께 해마다 심해진다.

말 학대와 불법도박, 도박중독, 경마관계자의 도덕적 해이가 만연한 우리에게 홍콩은 신선한 충격이다.

말을 사랑하고 퇴역마를 끝까지 보살피는 곳, 불법도박을 합법도박으로 슬기롭게 대처하는 곳, 가장 아름다운 기부와 자선이 가장 추한 도박과 공존하는 곳, 사람이 있는 곳에는 도박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양지에서 관리하는 곳, 가진 사람들이 기부와 자선에 더욱 힘쓰는 곳.

경마 도박도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