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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급봉투와 '공동체 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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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exkich via Getty Im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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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카노 로동' 보다 조금 더 전의 일인데, 나는 군에 입대하기 전 삼성동의 어느 고깃집에서 일을 한 적이 잠시 있었다. 고깃집 알바가 늘 그렇듯 힘들고 고된 일이었다. 불을 넣고 빼다가 화상을 입을 뻔한 적도 있었고, 술 취한 손님에게 맞을 뻔한 적도 있었고 뭐 다들 겪을 법한 일들을 겪고 그랬었다.

그 고깃집은 임대료가 꽤나 비싸 보이는 강남의 한복판에 있었지만 영업이 잘 되지 않았다. 직장인들이 꽤 많은 오피스 밀집 구역이었으나, 회식이라도 있을 법한 목, 금요일마저 자리가 꽉 차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사장님은 대기업을 은퇴하셔서 목돈으로 어렵게 가게를 창업하셨었는데, 늘상 얼굴에 수심이 깊어가는 사장님과 사모님을 보는 것이 나로써도 참 안타까운 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단 한 번도 월급을 떼인 적이 없었다. 장사가 어려운 것이 내가 봐도 티가 났지만 한 번도 사장님은 급여를 가지고 티를 내신 적이 없으며, 내가 불 옆에 오래 놓여 있던 쇠집게를 잘못 집어 한쪽 손을 크게 다칠 뻔했을 때 다 팽개치고 달려와 응급처치로 손에 치약을 발라 주신 분은(실제로 치약은 효능이 있다.) 다른 알바생도 아니고 사모님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사장님은 가게 문을 일찍 닫자고 하시더니 일하던 알바생들을 모두 불러 같이 고기나 굽자고 하셨다. 불안한 예감이 스쳤지만 사장님이 소고기를 내 오셨던 것에 휩쓸려(...) 다 잊어 버리고 또래 알바생들과 신나게 소고기를 구워먹고 술도 마시던 중 사장님이 조용히 말문을 열었다. 가게 문을 닫게 된다는 것이었다.

미안하다. 제 2의 인생 열심히 잘 살아 보려고 했고, 내가 또 사람 써 본 적 있는 사람인데, 월급 그 돈 그거 내가 좀 내사정 어렵다고 주는 거 미루는 거 나는 쉽지만, 받는 사람 입장에서는 피 말리는 것 알아서 여태껏 티를 안 냈다. 그런데 도저히 영업이 잘 되지 않아 이제 가게 문을 닫아야 할 것 같다. 자식 같은 너희들 데리고 지내온 시간 너무 뼈아프게 사무칠 것 같지만 어떡하냐, 사장이 능력이 없어서 너희에게 너무 미안하다.

그리고는 그달 월급이라며 우리들에게 봉투 한 장씩을 쥐어주셨다. 늘상 은행으로 입금이 되었던 돈인데 이번만큼은 꼭 '월급봉투'를 주고 싶었단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인데 이 사장님은 그때 이미 가게를 다 처분하시고 나셔도 빚이 많으셔서 급여는커녕 당장 이자 갚기에도 힘드신 상태였다고 한다. 봉투 안에는 만 원짜리 새 돈이 두툼하게 들어 있었다. 이자 독촉당하기도 바쁠 은행에 가서 어떻게 새 돈을 바꿔 오실 생각을 하셨을지.... 우리는 말없이 고기만 우적우적 씹다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울기 시작했다.

사장님 저희 돈 안 받을 테니까 어떻게 조금이라도 더 버텨봐요, 이야기했지만 듣지 않으셨다. 더 이상 젊은 너희들한테 쓸데없는 고생 시키고 싶지 않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오늘 이 시간부로 연락도 하지 말라셨다. 괜히 얽혀서 좋을 것이 없다며.... 결국 나의 처음이자 마지막 월급봉투는 그렇게 아픈 기억 속에 묻혀 버리고 만 것이다.

한 국회의원이 '알바비 떼여도 신고하지 않는 것이 공동체 의식' 이라고 했다. 글쎄, 나는 태어나서 그 월급봉투를 받았던 순간만큼 공동체 의식을 느껴 본 적은 없었던 것 같다.

* 이 글은 필자의 페이스북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