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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기영 박사가 과학계를 위해 해야 할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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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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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기영 박사님,

참여정부가 언제부터 지지율이 떨어지기 시작했는지 아십니까? 바로 황우석 사태 이후입니다. 황우석은 DJ 정부부터 키워왔죠. 그러나 본인의 홍보 외 충분한 과학적 증거 없이 전폭적으로 지원하다가 2005년 희대의 사기극을 만들어 낸 것은 황우석 개인만이 아니라 당시 한국 사회 문화, 그리고 정치인들과 참여정부의 전폭적 지원입니다. 그리고 노무현 대통령의 지지도는 떨어졌습니다. 참여정부를 지지할 만한 인사들이 속속 지지를 철회했습니다. 박사님은 한번도 그 책임을 지신 일이 없습니다. 심지어, 참여정부 인사들이 이후 정부에서 곤혹을 치를 때도 박사님은 아무 일도 겪지 않으셨던 걸로 압니다. 민주당 공천을 받기 위해 노력하신 걸로 압니다만. 열심히 과실련 등의 단체 일을 하기도 하셨죠. 예전 과기부 공무원들과의 인연도 유지하고 계셨던 걸로 들었습니다.

기억합니다. 청와대는 국보급 과학자라고 황우석에게 경호차량까지 두 대를 상시 제공했었죠. 새벽부터 밤까지 다니는 길 편하게 다니라고. 우리 과학자들은 생색내지 않고 원래 그렇게 일합니다. 모르셨나 봅니다. 그나저나 실로 통 큰 지원이었습니다. 연구비 지원과는 또 다른 차원입니다. 이 모든 의사 결정은 박기영 교수께서 하셨죠. 분명히, 조심해야 한다는 경계의 조언을 들으셨는데도 말입니다. 그런 조언을 들은 일이 없었다고요? 기억에서 지워버렸을지 모르겠지만 말이죠, 그 자리는 모든 정보가 다 모이는 자리 아닙니까? 분명히 다른 이야기들을 들으셨습니다. 저도 했었는 걸요. 그래서 단순히 황 박사에게 속았다거나, 어리석은 판단으로 2005년 사이언스지에 이름을 올렸다라는 말들이 절대로 변명이 되지 못합니다. 개인적인 잘못은 언제든지 용서할 수 있고 넘어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국가적으로 중대한 의사 결정에서 결정적 오판을 지속적으로 했다면, 또 점점 더 잘못된 결정을 내렸다면, 그건 사과의 범위를 넘어서는 것입니다. 입 다물고, 나서지 않고, 대한민국 과학계를 위해 조용히 지내시는 것. 그것이 진정한 속죄이고 사과라고 생각합니다.

노 대통령은 이만하면 됐다고 넘어가자고 하셨습니다. 황우석 사태 이후 진실 공방에서 상처 받는 사람들이 많으니까 하신 말씀이겠죠. 이도 적절치는 않았으나 아마도 박기영 박사님을 포함한 사람들이 다치는 걸 원치 않으셔서 하신 말씀일 겁니다. 그분은 지금 우리가 아무리 뵙고 싶어도 뵐 수 없는 곳에 계십니다. 돌아가신 노 대통령께 미안하지도 않으신지요? 노 대통령이 계셨다면, 그만하라고 하셨을 겁니다. 그러니, 그 자리에서 내려오십시오.

박기영 박사님께서 맡으신 혁신본부장 자리는 과학 기술인들과 함께 일하는 자리입니다. 지금 과학 기술계 여론이 들끓고 있습니다. 당신의 동료들이 당신이 그 자리에 있어서는 안된다고 말합니다. 그런데도 일할 기회를 달라고요? 국무회의에 들어가는 특급 차관 자리입니다. 상식을 열망하는 시민의 촛불혁명으로 탄생한 이 정부의 성공을 빈다면, 제발 뒤에서 조용히 계셔주세요.

비통한 심정으로 이 글을 씁니다. 저는 지금까지 30년을 과학도로 살았습니다. 좌로도 우로도 치우치지 않는 공부를 하는 게 얼마나 큰 특권인지 아느냐고 후배들에게, 학생들에게, 딸에게 떵떵거렸습니다. 사람들은 교수는 방학도 있고 아무 때나 해외 학회 간다고 부러워합니다. 그러나 우리 과학자들은 그런 말을 들으면 어떻게 반응할지 난감해 합니다. 방학이고 학기 중이고 매일 출근하여 연구실에서 일하고, 강의 준비하고, 학생 지도 상담하고, 학교 일, 국가가 부르시는 온갖 정책 연구 다 하고, 그리고 아이 키우고, 그렇게 휴가도 없이 살았습니다. 방학 때 학교 나오지 않는 교수들을 보며 부러워한 적도 없고 그저 소처럼 일했네요. 오로지 과학자라는 자부심으로 살았습니다. 슬쩍, 제대로 공부하지 않는 일부의 비이공계 교수들을 보며 학자로서의 우월감을 느끼기도 했다고 고백합니다.

그런데 그렇게도 기대한 문재인 정부의 과학계 인선을 보고는 뒤통수를 얻어맞은 심정이었습니다. 과학이 무엇인지 모르시는 듯 친 창조과학자적 발언을 하신 과학기술정통부 장관의 청문회 이야기를 듣고는 헐~ 하고 기가 떡 막혔고. 그나마 유일하게 기대했던 과학기술혁신본부장에 참여 정부에 가장 큰 타격을 입힌 인사를 앉히셨다는 소식에는 황망한 좌절감만 느꼈네요. 멍하니 책상 앞에 앉아있다가 그냥 있어선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난 십 년 제가, 우리가 쌓아온 과학의 역사를 송두리째 무시당할 수는 없었으니까요. 한국일보에 기고를 하고 친구 수락만 하던 페이스북을 처음 제대로 연 건 박기영 본부장 임명 덕입니다. 과학자인 제가 정치인들에게는 기껏 우직한 마름 정도였다는 걸 이제사 눈치 채게 되었구요.

정부에서 불러서 일하라고 하면 일하고, 대학의 최고 의사결정권자를 포함 문과 교수님들이 일하라고 하면 주말에도 일하고, 그 와중에 또 밤새워 논문 쓰고 살았는데. 그게 그냥 정치인들에게는 말 잘 듣고 성실한 머슴이었네요. 박기영 박사님, 우리가 연구비를 잘 나눠주기만 하면 되는 심부름꾼으로 보이는지요? 똑똑하다고 착각하지만 부리기 쉬운 일꾼으로 생각하셨나요? 그리고, 본인은 그런 과학자로 사는 게 싫어서 나눠주고 부리는 혁신본부장을 해야겠다고 욕심을 부리시는 건지요? 일할 기회를 달라시다니. 음... 이해되지 않습니다. 연구실도 있고 강의도 하실 수 있는 걸로 아는데. 저는 연구실에서 항상 일하는데요. 지금은 제 일을 뒤로 미뤄두고 박기영 박사님이 벌이신 이 난장판을 어떻게든 제자리로 되돌리려 고군분투 하느라 제 일을 다 못하고 있는 지경입니다만. 먹거리는 과학자들이 만들어내고, 그걸 즐기는 건 노동하지 않고 권력을 즐기는 정치인과 행정가라고 생각하시는 한 당신은 미래의 4차 산업혁명(?)을 논할 자격이 없습니다.


대통령님,

과학 기술에 대해 전문적으로 아시기는 힘드나 대통령님을 자문하실 분들은 많기 때문에 걱정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아무리 바쁘셔도 현재 과학 기술인들이 느끼는 허망함과 자괴감을 돌아봐주셔야 합니다. 박기영 박사님 말고도 혁신본부장을 잘 하실 분들은 차고 넘칩니다. 청문회도 하지 않는 자리인데요. 그런데 굳이, 명예를 먹고 사는 과학기술인들의 자존심을 꺾어가면서 이만한 인사가 없으니 그냥 넘어가자고 하신다면, 대통령님은 우리 과학 기술계를 버리시는 겁니다. 대통령님과 우리가 꿈꾼 미래가 다른 미래였던 것이었나요? 과학과 공학을 전공하여 세계 최고가 되겠다는 우리 청소년들과 대학생 청년들에게 어떤 미래를 보여주실 겁니까? 4차 산업 혁명은 어떻게 이끄시려구요? 물론, 혁신본부 출범을 무조건 환영하고 박기영 박사의 임명을 박수칠 인사들도 많이 있을 겁니다 (신기하게도 말입니다). 그분들은 예전 황우석 사태 때도 문제제기하는 정의로운 과학자들을 어리석다, 기껏 커진 연구비 파이 줄어든다며 혼내시던 분들입니다. 진실 따윈 관심 안 두는. 단언컨대 지금 박기영 신임 혁신본부장 앞에서 박수 치시는 분들, 대통령이 어려울 때 지지하지 않으실 분들입니다.

저는 촛불 시민의 힘으로 탄생한 정부가 성공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박기영 교수의 혁신본부장 임명 철회를 외칩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영원히 제 마음의 대통령입니다. 오늘 제가 이런 감성적인 글까지 쓰게 된 데는 제가 노 대통령께 마음의 빚이 있기 때문입니다. 박기영 교수가 더 이상 돌어가신 노무현 대통령께 누가 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이미 박기영 교수 때문에 황우석 사태를 다시 이야기하게 되면서 참여 정부의 실책을 이야기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 사건은 간단히 연구 부정 사건이라고만 말할 수 없습니다. 대통령님, 1800명이 넘는 청년 과학 기술인들이 참여한 성명서를 읽어보십시오. 그리고 서울대 교수들의 성명서와 반대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도 들어주십시오. 문재인 정부의 성공을 위해 박기영 혁신본부장의 인사를 철회하여 주십시오.


* 이 글은 필자의 페이스북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