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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 장군의 자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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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문명사회에서 공공장소는 어디나 성 중립적이다. 즉 성별과 무관하게 누구나 이용할 수 있다. 예외가 있다면 공중화장실과 사우나 정도일 것이다. 공공건물에서 화장실의 위치는 보통 나란히 서 있는 남녀의 모습으로 표시된다(남자만 그려져 있으면 엘리베이터가 있다는 표시이다). 그런데 요즘은 미국과 유럽의 몇몇 나라에서부터 시작하여 화장실의 성별 구분을 없애는 새로운 추세가 생겨나고 있다.

이것은 우선 자신이 생각하는 성과 겉으로 드러난 성이 일치하지 않는 사람들을 고려해서이다. 성 정체성은 염색체뿐 아니라 호르몬과 초기 사회화 등에 의해 중복 결정된다. 그 결과 생물학적 성과 사회적 성의 차이, 혹은 생물학적 성 자체의 모호함으로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이 생기게 된다(예를 들어 XX 염색체를 가졌더라도 태내에서 남성 호르몬에 과다하게 노출된 신생아는 신체적으로 남성의 특징을 일부 갖고 태어난다). 이들 중 일부는 수술과 호르몬 치료를 통해 자신이 원하는 성의 모습을 갖추지만, 일부는 외모로 인해 크고 작은 차별을 겪는다.

gender neutral restroom

성 중립적 화장실은 장애인이나 유아처럼 화장실을 이용할 때 타인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 장애인 화장실은 지금도 남녀 구별이 없다. 하지만 비장애인은 남녀를 구별하면서 장애인만 구별하지 않으면 '장애인이 된다는 것은 성적 정체성을 잃는다는 것'이라는 메시지로 해석될 수 있다. 그럴 바에야 모든 화장실을 중성화하는 게 낫다.

화장실을 성 중립적으로 만든다는 것은 쉽게 말해 소변기를 없앤다는 뜻이다. 사실 남자 화장실의 구조는 나에게 일종의 문화적 충격이었다. 남자들은 소변을 볼 때 옆에 누가 있기를 바라는 것일까? 그들은 모르는 사람과도 이런 식으로 연대를 추구하는 것일까? 그래서인지 한국 영화에는 남자들이 늘어서서 노상방뇨를 하는 장면이 걸핏하면 나온다. 반면 여성의 노상방뇨는 영화적 금기이다. 영화 '피아니스트'에는 여주인공이 길에서 쪼그리고 앉아 소변을 보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 장면을 연기한 이자벨 위페르는 '대담하다'는 찬사를 받았다. 노상방뇨 장면을 찍은 수없이 많은 남자 배우들이 아무런 칭찬도 받지 못한 것과 대조적이다.

성 중립적 화장실은 그 이용방식 역시 성 중립적이어야 한다. 즉 남녀가 모두 동일한 자세로 화장실을 사용해야 한다. 자세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서서 볼일을 보는 것은 한국 고유의 풍습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 일제강점기에 조선에서 청소년 시절을 보낸 일본 작가 나카지마 아쓰시의 단편 '순사가 있는 풍경'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온다. "문득 옆을 보니, 한 남자가 길거리에 쭈그리고 앉아서 소변을 보고 있다. 그는 무심히 '서서 오줌 누는 법'을 모르는 이 반도 사람들의 풍속을 생각해보았다." 사실 허리띠를 풀면 바로 흘러내리는 한복 바지를 입고 재래식 화장실에서 서서 소변을 보려면 고난도의 기술이 필요할 것 같다. 앉은 자세로 소변을 보는 것이 남성성에 대한 모욕이라고 믿는 사람은 이순신 장군 역시 그런 자세로 일을 치르셨으리라는 점을 기억하도록 하자.

한두 평에 불과한 욕실에서 변기 뚜껑을 열고 서서 소변을 보면 미세한 오줌 방울이 99.9%의 확률로 그 옆에 있는 칫솔에 튀게 된다. 이런 이유로 위생에 민감한 많은 가정에서는 이미 화장실의 성 중립적 사용을 실천하고 있다(우리 집도 그중 하나다). 이는 "누가 변기를 닦을 것인가?"라는 사소하면서도 폭발력이 큰 문제를 평화롭게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된다.

* 이 글은 한겨레 신문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