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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귀머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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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귀머거리다'는 청각장애인인 작가가 자신의 일상을 소재로 그린 웹툰이다. 지인의 추천으로 보기 시작했는데, 너무 재미있어서 중간에 놓지 못하고 결국 밤을 새워 끝까지 보고 말았다. 이 웹툰 덕택에 청각장애인들이 우리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부분에서 어려움을 겪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초인종 소리를 못 듣기 때문에 누가 와도 문을 열어줄 수 없다거나, 보고 싶은 한국영화가 있어도 자막이 없어서 포기해야 한다거나(웹툰의 주인공은 송강호를 좋아하지만 영어자막이 달린 <설국열차>밖에 볼 수 없었다).... 이 작품의 미덕은 일상의 여기저기에 놓인 이런 장애물들을 묘사하면서도 시종일관 유머감각을 잃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독자들은 주인공을 동정하는 대신, 주인공과 함께 유쾌하게 웃으면서, 어떻게 하면 이 장애물들을 없앨 수 있을지 생각해보게 된다.(예를 들어 초인종 소리에 반응하는 전등을 만들어서 벨이 울릴 때마다 불이 켜지게 만들면 어떨까?)

사실 장애는 장애인(이라는 잘못된 명칭으로 불리는 사람)의 내부에 있는 게 아니라, 그를 둘러싼 환경 속에 있는 것이다. 오래전에 본 공익광고 한 편이 떠오른다. 어떤 사람이 경사로를 걷고 있다. 양옆으로는 휠체어가 씽씽 지나간다. 그는 휠체어를 피하면서 간신히 도서관에 도착한다. 그런데 열람실의 책이 모두 점자로 되어 있다. 안내데스크에 문의하니 수화로 대답해준다. 이런 세계에서는 점자를 읽을 수 없고 수화를 이해하지 못하고 휠체어 한 대 없이(!) 걸어다녀야 하는 사람은 꼼짝없이 장애인이 된다.

이 광고는 프랑스에서 제작된 것이다. 비슷한 동영상이 더 있나 싶어서 유튜브를 검색해보았다. 그러면서 깨닫게 된 점인데, 동일한 목적의 공익광고여도 한국에서 만든 것과 프랑스에서 만든 것은 초점이 확연히 달랐다. 한국에서는 장애인이 차별받고 무시당하는 모습을 공공연하게 그리면서 동정심을 끌어내려 한다. 반면 프랑스에서 제작된 영상들은 한 명의 사회인으로 당당하게 살아가는 장애인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시민들에게 약간의 배려를 촉구하는 형식이다. '인간극장'류의 슬픈 음악은 절대 사용하지 않는다.

고등학생들이 과제물로 만든 동영상이 많다는 점도 놀라웠다. 동영상을 단순히 보여주는 것보다 직접 만들어보게 하는 것이 훨씬 교육적 효과가 클 것이다. 장애인들이 유치원에 와서 어린이들에게 장애에 관해 설명해주는 모습을 담은 동영상도 있었다. 한국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광경이다. 한국에는 어린아이에게 장애인의 모습을 보여주어서 정신적인 충격을 주는 것은 좋지 않다고 생각하는 부모들이 많다.

영상에 나오는 프랑스 아이들도 처음에는 조금 무서워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곧 호기심을 보이면서 이것저것 질문했다. 휠체어를 타보고 소감을 이야기하기도 했다. 이런 교육의 효과는 장애를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극히 평범한 상황으로 인식하게 한다는 것이다. 장애는 가슴을 치면서 아파해야 할 비극이 아니다. 그저 인구의 몇 퍼센트는 겪기 마련인 통계적인 현실일 뿐이고, 약간의 배려와 창의성만 있으면 얼마든지 극복할 수 있는 문제인 것이다.

이런 교육은 아이들 자신을 위해서도 도움이 된다. 나이를 먹으면 누구나 조금씩 장애를 갖게 되기 때문이다. 팔다리를 못 쓰게 되거나 인지장애를 겪거나 귀가 어두워지거나 눈이 멀거나.... 장애의 88%는 후천적이라고 한다. 장애인을 배려하는 것은 미래의 우리 자신을 배려하는 것이다. 장애인에게 편한 것은 모두에게 편하다.

* 이 글은 <한겨레>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