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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되지 않은 운동의 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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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5일 강남에서 혼자 왁싱숍을 운영하던 여자가 손님으로 가장한 강도에게 살해되었다. 범인은 아프리카티브이(TV)에서 이 왁싱숍을 소개하는 동영상을 보고 범행을 결심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네티즌들 사이에서는 이 사건을 '여성혐오 살인'으로 보아야 한다는 의견이 확산되었다. 문제의 동영상은 왁싱숍 여주인이 혼자이고 미인이라는 점을 강조했고, 제모 과정을 성적 서비스라도 되는 것처럼 선정적으로 묘사했다. 동영상에 달린 댓글들 역시 음담패설 일색이었다. 즉 이 사건은 우리 사회의 뿌리 깊은 '강간문화'를 배경으로 일어났다. 실제로 범인은 피해자를 강간하려고 시도하기도 했다. 그러므로 이 사건을 계기로 강남역 10번 출구에서 여성혐오를 규탄하는 집회가 열린 것은 아주 자연스럽다. 하지만 작년과 달리 이 집회에는 사람이 거의 모이지 않았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이 질문에 답하려면 먼저 작년 봄 강남역 10번 출구를 뜨겁게 달군 추모의 물결이 어떻게 생겨난 것인지 생각해보아야 한다. 이 물결은 우연의 산물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자발적이고 비조직적인 방식으로 퍼져나갔다. 아무도 그것을 지휘하지 않았고, 누구도 그것이 그렇게까지 커지리라고 예상하지 못했다. 소셜미디어, 특히 트위터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순수한 마음의 연대가 만들어내는 힘은 그렇게 컸다. 하지만 단지 거기까지였다.

'뉴요커' 기자인 네이선 헬러에 따르면 소셜미디어가 핵심적인 역할을 한 운동들은 폭발적으로 확장되는 반면, 쉽게 스러지는 특징이 있다. 2004년 이라크전 반대 운동이 그랬고, 월가 점령 운동이 그랬으며, 2014년의 인종차별 반대 시위('Black Lives Matter')가 그랬다. 이 운동들은 마치 참여자의 자기 효능감 증진이 목적이었던 것처럼, 엄청난 주목과 지지를 받은 뒤에 아무 성과 없이 사그라졌다. 새로운 운동 모델이라고 찬양받는 특징, 즉 수평적이고 느슨한 연결에 의지하며 지도부가 없다는 점이 바로 한계였다. 성공한 사회운동들은 분명한 목표와 그 목표를 위해 전략을 짜고 지배권력과 협상할 수 있는 지도부를 가지고 있다. 목표와 지도부가 없는 운동은 협상의 단계로 접어들었을 때 분열하고 쇠퇴한다.

강남역 추모 시위에 대해서도 같은 평가를 할 수 있다. 이 시위의 가시적 성과는 여론의 압박을 통해 판사로 하여금 범인에게 이례적인 중형을 선고하도록 만들었다는 것뿐이다('부당한 중형'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범인이 정신질환자였음을 고려하면 말이다). 돌이켜보면 이 사건을 대하는 지식인들의 반응에는 어딘가 의심스러운 부분이 있다. 그들은 진실이 무엇인지 숙고하기보다는 대중의 견해를 무조건 추인하는 쪽을 택했다. 왜냐하면 그들은 오래전에 사회운동에 대한 지도적 역할을 포기하고 관망하는 위치로 물러났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기들이 이끌 수도 없고 만들어낼 수도 없는 운동에 감히 '찬물을 끼얹는' 말을 하지 못한다. 그저 모처럼 붙은 불이 꺼지지 않도록 열심히 부채질을 할 뿐이다.

그러므로 나는 강남역 살인을 둘러싼 작년 한 해의 놀라운 열기, 그리고 올해의 대조적인 냉담함에서 똑같이 어떤 위기의 징후를 읽는다. 그 위기는 지식인의 위기이기도 하고 여성운동의 위기이기도 하다. 과거의 페미니스트들에게는 분명한 목표(참정권 획득이나 호주제 폐지 같은)가 있었다. 오늘날의 페미니스트들에게는 어떤 목표가 있는가? 그들은 어떻게 그 목표를 이루려고 하는가?

* 이 글은 한겨레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