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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기는 낡은 공부법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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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MORY BR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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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너선 더멋 스펜스의 〈마테오 리치, 기억의 궁전〉에는 암기의 기술에 대한 여러 가지 재미있는 이야기가 나온다. 마테오 리치는 16세기 말 명나라에 기독교를 전파한 예수회 선교사이다. 그는 중국인들이 과거 시험에 목숨을 건다는 것을 알고 서양의 기억술을 가르쳐주어서 그들의 환심을 사려고 마음먹었다.

그가 중국에 소개한 기억술은 로마 시대부터 내려오는 것으로, 마음속에 궁전을 짓고 그 궁전 여기저기에 기억을 배치하는 방법이다. "말하자면 첫 번째 생각은 앞뜰에 두고, 다음번 생각은 예컨대 거실에 둔다. 나머지는 적당한 순서로 안뜰의 빗물 저수조 주위에 둔다든가, 침실이나 손님용 방뿐 아니라 동상에 두어도 좋다. 이렇게 해두면 사물에 대한 기억을 살릴 필요가 있을 때 즉시 이 장소들을 순서대로 방문하여 저장해놓은 다양한 기억을 끄집어낼 수 있을 것이다." 마테오 리치는 청중이 임의로 고른 수백개의 글자를 그 자리에서 순서대로 외워 보임으로써 이 기억술의 유용성을 과시했다. 그가 이런 재주를 부릴 수 있었던 것은 예수회 수사의 훈련 과정에 기억술이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중국뿐 아니라 서양에서도 암기는 교육의 토대였다.

그러나 근대에 들어서면서 기억술은 불신과 조롱의 대상이 된다. 라블레의 〈가르강튀아와 팡타그뤼엘〉의 주인공 가르강튀아는 가정교사에게 기억술을 배워서 책을 거꾸로 암송하는 경지에 이른다. 하지만 막상 자신의 머리로 생각해서 대답해야 할 때면 "죽은 당나귀에서 방귀가 나오지 않는 것처럼" 입에서 한마디 말도 나오지 않았다. 프랜시스 베이컨은 기억술이 진기한 구경거리에 지나지 않는다고 일축했다. "나는 수많은 이름이나 단어를 한번 듣고 외우는 것을 공중제비, 줄타기, 광대의 속임수 이상으로 보지 않는다."

오늘날 이 문제에 대한 대중의 생각을 지배하는 것은 마테오 리치가 아닌 베이컨과 라블레의 관점이다. 교육개혁이 논의될 때마다 암기식 교육의 폐해를 뿌리뽑자는 구호가 단골로 등장한다. 암기는 정말 낡은 공부방법일까?

암기식 교육을 비판하는 사람들은 인터넷에서 모든 정보를 얻을 수 있으므로 외우는 것은 더 이상 필요 없고 창의성을 길러야 한다고 말한다. 나는 의사인 친구에게 이 주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어보았다. 의사가 되려면 엄청나게 많은 것을 암기해야 한다. 인터넷은 의학도들에게 암기의 고통을 덜어줄 수 있을까? 그 친구는 단호하게 아니라고 대답했다. '의사들이 인터넷에서 많은 도움을 받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기본적인 것을 외우고 있지 않다면 무엇을 검색해야 할지 알 수 없을 것이다.'

심리학자 대니얼 윌링햄은 인터넷이 있으니 암기는 필요 없다는 주장이 인간의 뇌가 컴퓨터와 비슷한 방식으로 작동한다는 착각에서 비롯된다고 지적한다. 컴퓨터에 프로그램을 깔듯이 아이들에게 '사고력'을 갖추어주면 그다음에는 어떤 정보든 처리할 수 있을 거라는 것이다. 하지만 인지과학은 이런 생각이 틀렸음을 보여준다. 배경지식이 없으면 비판적이고 논리적인 사고를 할 수 없다. 창의성과 통찰력의 토대는 기억력이다(〈왜 학생들은 학교를 좋아하지 않을까?〉).

아마 "막대를 반대로 구부릴 필요성" 때문이겠지만, 한국에서는 상상력이 지식보다 중요하다고 믿는 지식인들이 압도적으로 많은 것 같다. 그들을 위해 윌링햄의 말을 인용한다. "그들이 왜 학교의 역할을 깎아내리면서 학교를 쓸모없는 암기 공장으로 폄하했는지 그 이유는 나도 모른다. 자기네는 학교에서 방대한 지식을 쌓았으면서 말이다."

* 이 글은 한겨레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