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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를 위한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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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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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이 끝나고 새 대통령이 취임했다. 이번 선거의 커다란 특징은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세대와 지역을 불문하고 고른 지지를 받았다는 것이다. 특히 서울은 전통적으로 보수세력의 표밭이었던 강남 3구까지 모두 파란색이었다. 이런 결과를 보면서 한편으로 기쁘지만 다른 한편으로 걱정이 되기도 한다. 안정 대신 정권교체를 택한 이 부유한 시민들이 동의할 수 있는 변화의 수준은 어느 정도일까? '촛불 민심'을 등에 업은 문재인 정권은 과연 얼마나 이들의 저항을 뚫고 개혁을 이룰 수 있을까?

'1 대 99 사회'라는 말을 많이 하지만, 내가 보기에 한국 사회는 상위 10%가 지배하는 사회다. 한국에서 상위 10%는 '중산층'이라는 겸손한 이름으로 불린다(개인소득 기준 상위 10%의 소득 경계값은 연간 5천만원). 이들은 경제적으로 최상층이지만, 특권과는 거리가 먼 평범한 국민임을 자처하며 국민을 내세워서 자기들의 이해관계를 관철한다. 외환위기 이후 이들은 국민소득에서 자기들이 가져가는 몫을 꾸준히 늘려왔다. 2000년에 36.4%였던 상위 10%의 소득점유율은 2015년 48.5%로 늘어났다. 1%가 권력을 유지하는 것은 이 10%의 지지 덕택이다.

여론을 좌지우지하는 10%의 능력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가 바로 지난해의 전기요금 누진제를 둘러싼 논란이다. 전기요금을 13만원 이상 내는 가정이 전체의 1.4%에 불과한데도 "덥다고 에어컨 좀 틀었더니 전기세가 30만원 나왔더라"는 식의 괴담이 마구 퍼져나갔고, 결국 누진제가 여섯 단계에서 세 단계로 개편되었다. 이 개편으로 한전이 깎아주는 전기요금은 연간 1조원에 달하는데, 그 혜택의 대부분은 1.4%의 헤비유저(주상복합에 살면서 하루종일 에어컨을 트는 사람들)에게 돌아가게 된다(에너지정의행동 웹사이트 참조). 또 다른 예는 2013년의 소위 '연말정산 파동'이다. 소득공제가 세액공제로 전환되면서 갑자기 많은 세금을 내게 된 고소득층은 이것이 자기들만의 문제가 아니고 유리지갑을 가진 임금생활자 전체의 문제라고 떠들어댔고, 여론이 여기 동조하면서 증세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더 이상 불가능한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1%는 아니지만 10%에 속하는 사람들에게 '1 대 99 사회'라는 표어는 매력적이다. 자신이 아무것도 희생하거나 양보하지 않아도 -다른 누군가가, 부패하고 타락한 1%의 특권층이 제 몫의 세금을 내기만 한다면- 모두가 행복하게 잘 살 수 있다는 말처럼 들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 국민 전체가 지금 중산층이 누리는 것 같은 생활수준에 도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복지국가의 모델로 자주 거론되는 나라가 덴마크다. 그런데 덴마크의 국민소득은 5만달러가 넘는다. 우리의 두 배나 된다. 재벌개혁을 하면서 국민소득을 두 배로 높이는 게 가능할까? 게다가 우리는 성장의 절대적 한계에 대해서도 생각해야 한다. 한국에서 10% 안에 드는 사람은 전세계에서는 1% 안에 든다(글로벌 1%의 소득 하한선이 3만2400달러다). 전세계 인구가 우리처럼 살려면 지구가 하나 더 있어도 모자랄 것이다.

원전을 폐쇄하자고 외치면서 동시에 전기요금을 낮춰달라고 하는 것은 모순이다. 세금을 내기 싫어하면서 복지를 기대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정부에 대한 불평을 민주주의와 혼동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생소하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민주시민은 권력자의 입장에서 생각할 줄 알아야 한다. 민주국가에서는 시민이 바로 위정자이기 때문이다.

* 이 글은 한겨레에 게재된 글입니다.